G와 L 사이

토요일, 하늘을 보니 옅은 구름으로 덮여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하는 근무 날이다. 평일보다 토요일 운전 조건은 괜찮은 편이다. 우선 도로가 덜 혼잡하다. 학생들 등하교 시켜주는 스쿨런도 없다. 운행노선도 단순하다. 버스에 시동을 켜고 운행 근무표를 보니 무난한 노선이다. 버켄헤드 와프(선착장)에서 알바니 버스 스테이션까지 두 번 왕복. 한 시간 쉬고 베이뷰에서 시내 브리토 마트까지 두 번 왕복. 한 시간 휴식 후 버켄헤드와프에서 알바니 스테이션까지 한번 반 운행이다.

오전에 버켄헤드 와프에서 알바니까지 한번 왕복하고 나니 15분가량 여유시간이 남았다. 버스를 버켄헤드 와프 종점에 세워두고 선착장, 와프 주변을 거닐었다. 바람이 일어 바다가 약간 물결을 탔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요트들도 함께 흔들거렸다. 멀리 하버브리지가 눈에 들어왔다. 스카이타워에 시내 건물들이 스카이라인을 이루며 아늑한 그럼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낚시하기 좋은 포인트에는 강태공 어부가 세상을 낚고 있었다. 평화로운 토요일의 한나절 풍경이 잔잔하게 흔들거렸다. 두 팔 벌려 시원한 바닷바람을 가슴 깊이 받아들였다.

“어~후!” 강태공의 강한 외침이 잔잔한 분위기를 깨뜨렸다. 화들짝 놀라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발길을 성급히 옮겼다. 중국 노인이 빨려 들어가는 낚싯대와 씨름하고 있었다. 온몸을 뒤로 젖혀가며 낚싯대를 들어올렸다. 고기와 팽팽한 줄다리기가 긴장감 속에 계속되었다. 아무래도 대어를 잡은 모양이었다. 바다 수면에서 와프 콘크리트 평지까지는 수직으로 3~4m터 되는 높이여서 끌어올리기에는 힘에 부쳐 보였다. 내가 낚싯대를 받아 들고 뒤로 당겼다. 노인은 장갑을 끼고 나서 릴을 감았다 풀었다 하며 낚싯줄을 끌어 올렸다. 바다가 출렁였다. 하얀 뱃살을 드러내며 엄청나게 큰 가오리가 난리를 쳤다. 조금씩, 조심스레, 천천히, 끌어올렸다. 힘이 드는지 노인의 얼굴이 벌게졌다. 나 역시 뒤에서 낚싯대를 끌어당기느라 숨이 가빴다. 드디어 하늘로 올려진 가오리가 콘크리트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거기까지. 시동을 켜고 다시 알바니로 향했다. 핸들을 잡은 손에 낚싯대에서 느껴지던 묵직한 맛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오후에 베이뷰에서 시티 브리토마트까지 갔다가 다시 베이뷰로 올라오고 있었다. 오레와 로드 맨 위쪽에서 오른편 글렌필드로 회전하던 찰나였다. 맞은편에서 같은 회사 버스가 회전하며 달려오고 있었다. 흔히 하던 대로 손을 흔들었다. 가까이 스치며 보니 G(Graham)였다. 순간, G가 팔을 들어 격하게 흔들었다. 깜짝 놀랐다. 오늘따라 웬일로 저리도 크게 팔을 휘저을까? 햇살을 받아 G 얼굴이 뻘겋게 보였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다. 지난주 만났을 때, G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 곧 은퇴하고 황가레이로 이사가 살 거야.”

오후 4시쯤 회사로 돌아와 한 시간 휴식을 가질 때였다. P(Peter)가 내게 다가왔다. G가 나에게 전해달랬단다. G가 오늘 3시까지 운전하고 회사를 떠났단다. 은퇴의 삶으로 접어든 것 같다고 했다. 프란시스에게 잘 있으라고 안부를 부탁했다고. ‘아~ 그래서 오늘 운전 중 내 손짓에 팔을 들어 온몸으로 격하게 안녕 신호를 보냈구나.’
작년, 이 회사에 입사해서 버스 운전 트레이닝을 받을 때였다. 내게 다가와 먼저 자기 이름을 대며 격려의 말을 해주었던 키위 선배 G. 버스 운전이 처음이라 서툴렀던 내가 안 돼 보였던지 자주 어깨를 토닥거려주며 격려와 위로를 해줬던 분, 맏형처럼 고마운 분이었다. 나보다 열 살 많은 나이였다. 오늘부로 은퇴의 삶으로 떠나갔다. 가는 길에 건강과 평안함이 따르길 기도하며 오후 마무리 운행을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버켄헤드와프에서 알바니까지 가면 빈 차로 회사에 돌아오는 운행. 가벼운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버켄헤드 와프에서 글렌필드 로드까지 일곱 정거장을 지나는데도 승객이 없었다.
혼자 타고 갔다. 저녁 일곱 시쯤이어서 그런가. 저만치 앞에 딸기를 파는 차와 좌판 그리고 안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3 for $5. 천천히 갓길로 들어서며 헤드라이트를 깜박거렸다.
딸기 파는 아줌마가 차에서 내렸다. 왼 손가락 다섯을 펴 보였다. 아줌마가 딸기 세 팩을 비닐봉지에 담아 내게로 달려왔다. 버스를 세우고 내렸다. $5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주며 딸기 봉지를 받아들 때였다.
뒤따라 지나가려던 버스가 멈칫하며 살짝 빵빵거렸다. 몇 달 전 입사한 동료 운전사 L(Lynn)이었다. 나보다 열 살 늦은 50줄 키위 아줌마였다. G가 그러했듯이 나도 L에게 격려와 자상한 안내를 해 줬던 사이였다. 명랑 쾌활해 분위기를 띄우는 L이 한 손으로 입을 막고 죽는다고 웃었다. 나도 따라서 덩달아 웃었다. G와 L 사이를 생각하며 종점을 향해 버스를 천천히 몰았다.*

백 동 흠 수필가
2015년 [에세이문학] 등단
2017년 [재외동포문학상 대상] 수상
BIRKENHEAD TRANSPORT 근무 중
글 카페: [뉴질랜드에세이문학]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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