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s to 2019!

2019년! 기해년, 황금 돼지의 새해 아침이 밝아왔다. 2층 창가에서 바깥을 바라보며 아침을 먹는다. 내 접시엔 토스트 세 쪽, 옆에 앉은 아내 접시엔 한 쪽, 두 접시 사이엔 커피 라떼 잔 하나가 놓여있다. 함께 먹고 마신다. 뉴질랜드의 크리스마스트리, 포후투카와 꽃들이 일제히 만개했다. 새들이 포후투카와 꽃에 코를 박고 콕콕 쪼아댄다. 아무려면 어떻나. 함께 먹는 새해 첫날 조반이 가볍다.
365일 한 해의 항해를 향한 첫 시작. 온 세상이 푹 쉬는 날이다. 학교, 관공서, 은행, 회사, 상가도 함께 문을 닫고 비워둔 날이다. 2018년 한 해를 잘 갈무리 하고, 밝아온 2019년 새해 첫날을 집에서 보내고 있다.

성당과 회사에서 받은 2019년 달력을 테이블에 펼쳐놓는다. 여러 날짜 아래 할 일을 적어본다. 볼펜과 형광펜으로 동그라미를 하고 색깔을 칠한다. 생일, 결혼기념일, 공모전, 수필집과 소설책 출간, 휴가 일정, 여행 계획 등등. 희망의 씨앗을 뿌리자 처음엔 비었던 달력이 충만함으로 살아 움직인다. 아내는 강아지를 데리고 뒤뜰에 나가서 머위를 심고 있다. 어제 지인이 캐서 가져온 머위 뿌리들, 한 바구니다. 혈관 건강에 좋다는 머위 뿌리와 잎줄기. 잘 자라서 퍼지는 풍경도 함께 심고 있을까.

창밖으로 보이는 데크가 산뜻하다. 지난 연말에 시간을 내서 새로 칠한 페인트 색이 선명하다. Totem Colour. 포후투카와의 빨간 크리스마스 꽃 색이다. 며칠 걸쳐서 마무리한 페인트 작업이 새 세상을 만들었다. 그때 과정이 눈에 아른거린다.
모서리가 썩은 데크 부분은 잘라낸 뒤 새로운 나무로 바꿔 붙였다. 이끼와 때가 낀 데크위에 물을 뿌려 불렸다. 이끼 제거제를 뿌린 뒤 기다렸다. 워터블러스팅, 물청소로 깨끗이 싹 싹 씻어냈다. 이틀을 햇볕에 잘 말렸다. 페인트 준비작업만 해도 손이 꽤 갔다.
본격적인 페인트 작업은 바닥에 깔린 큰 화폭에 대형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 박싱데이에 사 두었던 데크용 페인트. 개라지에서 들고나와 2층 데크로 올라왔다. 햇빛 가리개 모자 작업복 장갑으로 단단한 준비를 했다. 나눠 담은 작은 페인트 통을 들고 데크에 앉았다. 통에 붓을 조심스레 담갔다. 흥건하게 적신 붓으로 조심스레 데크에 칠했다. 새색시 얼굴에 화장을 칠하는 느낌이었다. 한 칸씩 한 줄씩 천천히 칠해나갔다. 시간이 바람처럼 지나갔다. 초벌 칠에서 재벌 칠까지 하는 동안 햇볕과 바람도 거들어 주었다. 합작품을 보는 느낌이 뿌듯했다.

데크 페인트 작품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단색의 그림 위에서 생각이 자유롭게 뛰어다닌다.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본다. 차분하고 명료해진다. 내 삶의 한 지점에서 내 속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하얀 A4 종이를 대하는 느낌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나씩 챙겨보라는 주문이 떠오른다. 마음을 성가시게 했던 일에서 조용히 떨어진다. 여러 일에서 한 발짝씩 물러선다. 관심과 호의와 다가섬도 줄인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여러 번 해본다. 신경 쓰는 일이 사라진다. 집요한 잡념이 날아간다. 중요하다고 여겼던 일이 하찮아 보인다. 정작 내게 필요한 것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일에 마음 쏟는 일이다. 세상이 새롭게 다가온다. 생각이 바뀌니 세상이 달리 보인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노스쇼어, 더 팜스, 집, 창가. 21세기 문명의 한복판에서 조용히 나의 내면을 응시한다. 홀로 갖는 시간. 모처럼 말이 없는 날, 회사나 모임도 안 나가고 쉬니 자연스레 입도 휴가다. 입이 쉬니 귀도 따라서 편안해한다. 말 수만 줄여도 잡념이 사라지고 고요한 시간이 흘러들어온다. 하루가 여유롭고 알뜰하다. 소소한 자유를 느낀다. 밖에서 분주히 찾아다녔던 해방감을 바로 내 앞에서 만난다. 나 있는 곳에서 넓혀가는 해방과 자유를 느낀다. 침묵하다 보니 좀 알 것 같다. 영혼도 조용한 시간을 원한다는 사실을. 새 얼굴로 단장된 데크나 뒤뜰에 심어지는 머위나 텃밭도 다 자연의 일부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들려준다.

2019년, 올해 중요한 일을 헤아려 일렬로 쫙 줄을 세워본다. 꼭 필요한 것인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인지 골라낸다. 일을 털어내는 것과 만남을 정리하는 것은 사실 어렵다. 하찮은 것들로 인해 소중한 것들이 뒤로 밀렸던 걸 발견한다. 옥석을 가리듯 소중한 일과 귀한 사람 관계를 앞세운다. 때로 한 번씩 필요한 게 과감한 정리다. 데크에 페인트칠하는 것과 똑 같다. 타성에 젖은 때를 벗겨내고 생채기 난 아픔을 말린다. 밖에 실버펀, 고사리 나무가 흔들린다. 새 한 마리가 앉아있다. 하늘 바람 나무, 태고 시대가 따로 없다. 나직이 되뇌어본다. Here’s to 2019! *

 

백 동 흠 수필가
2017년 재외동포 문학상 대상수상
BIRKENHEAD TRANSPORT 근무
글 카페: 뉴질랜드 에세이문학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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