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레나데

아내가 여행을 떠났다. 친구들과 국립공원, Tongariro와 Turangi를 다녀오는 며칠간. 트램핑도 하고 사진도 찍을 거라고. 여러 날 전부터 이야기한 터라 흔쾌한 응원을 보냈다. Turangi엔 나도 아직 가보지 않았던 코스인데. 다녀와서 좋으면 다음엔 같이 가자고. 그동안 아내가 집을 지켰다면, 며칠간은 내 차례다. 일하며 혼자서 보내게 됐다. 나 나름대로도 생활 리듬이 다른 날. 잔잔한 낯설기와 새롭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내를 친구 집에 태워다 줬다. 등반 짐 꾸러미를 내려놓고 바로 회사로 행했다. 거리엔 많은 사람이 오고 갔다. 사람들이 달리 보였다. 의례 그러려니 했던 시선이 낯 설게 들어왔다. 내가 겪어봐야 남의 속도 알 수 있다고.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 처음’이란 문구가 종일 내 머리에서 뱅뱅 돌았다. 그날이 그날이 아니라고. 언제나 오늘 처음이라고. 특히나 오늘은 더 진하게 공감이 됐다.

저녁 늦게 퇴근해 집 앞에 도착했다. 2층 창가 테이블에 뭔가 웅크리고 있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차에서 개라지 도어 리모컨을 눌렀다. 개라지 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때였다. 쏜살같이 달려오는 검은 물체? 아이 깜짝이야! 강아지 도니였다. 펄쩍펄쩍 뛰며 내게 치대었다. 반갑다는 세리모니가 한참이나 이어졌다. 강아지도 하루 내내 혼자였다. 도니와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가정마다 저녁 불빛이 다 달랐다. 은색 빛, 붉은 빛, 잔잔한 빛, 깊은 빛, 따뜻한 빛 그리고 은은한 빛으로 다가왔다. 다시 집 골목에 이르면서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여행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그런 기분, 동네 팜스가 리조트처럼 나를 맞이했다. 한참을 서서 멀거니 집을 바라봤다.
조촐한 저녁 식사를 마쳤다. 이번 주 신문에 실릴 원고를 끼적거렸다. 잔잔한 유튜브 음악이 분위기를 돋웠다. 옛 시절 즐겨 듣던 음악이 감흥을 일으켰다. 목로주점, 그 중에서도 ~월말에는 월급 타서 로프를 사고, 연말이면 적금 타서 낙타를 사자~ 그래 그렇게 산엘 오르고, 그래 그렇게 사막엘 가자~ 지금보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에도 낭만이 있었다. ~가장 멋진 내 친구야 빠뜨리지마, 한 다스의 연필과 노트 한 권도~

밤이 깊어갔다. 아내가 트램핑 여행을 떠나간 자리에서 난 시간여행을 하고 있었다. 안방에 퀸 침대가 유난히 크게만 보였다. 거실로 나왔다. 뉴질랜드의 1월은 한 여름이라 밤에도 창문을 열어두었다. 시원한 꽃 바람이 들어왔다. 재스민 향기였다. 거실 바닥에 깔아둔 대나무 돗자리에 요를 하나 깔았다. 위에는 홑이불 하나면 족했다. 잠옷이 아니라 입던 채로 누웠다. 반소매에 반바지. 옛 시절, 등산 가서 텐트 치고 자는 기분이 새록새록 올라왔다. 오늘 마무리도 ‘오늘 처음’ 코드였다.

다음 날은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오후 근무가 있는 날은 아침이 선물 같았다. 바쁠 것도 없이 게으름에 몸을 맡겼다. 빈둥거린 시간도 한 가지씩 밀려둔 일을 해나갔다. 은행도 가고, 도서관도 들르고, 마트에 들러 수박도 두통 사 왔다. 한 통을 뒷 데크에 나가 잘랐다. 속이 꽉 여문 설탕 수박이었다. 강아지와 함께 먹었다. 배가 두둑한 느낌이었다. 간만에 몸이 하자는 대로 했다. 낮잠도 달게 잤다. 모든 게 새로웠다. 이번 여행의 화두처럼 ‘오늘 처음’ 맛을 즐겼다. 오후 출근길이 가벼웠다.
저녁 식사 시간 후부터 버스 승객이 뜸해졌다. 봄비 같은 가랑비가 바람에 날렸다. 재스민 향기가 버스 안으로 들어왔다. 뒤 축이 더블인 대형 버스(13.5m)에 한두 명 승객밖에 없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운전대가 가벼웠다. 저녁 늦게 버스 운행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는 중이었다. 비가 계속 내려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하루 일이 고단했지만, 끝마치는 시간이라 마음이 여유로웠다.

입에서 허밍으로 노래가 나왔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마오리 ‘연가’였다.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내가 허밍으로 두 소절까지 불렀을 때였다. 그 노래가 계속 이어져 나오는 게 아닌가?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세상에나?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부른 거였는데. 내 운전석 바로 뒤에 탄 마오리 아줌마가 이어서 부른 거였다. 깜짝 놀랐다. 마오리 아줌마가 내리며 내 어깨를 툭 쳤다.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가슴이 쿵~했다. 아닌 밤중에 여성 승객과 세레나데를 나누다니~!

집에 와서 하루를 매듭지으려다 눈에 카톡이 들어왔다. 카톡에 아내의 트램핑 풍경이 올라와 있었다. Turangi 산장 숙소 벽에 쓰여있는 문구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Live your Dreams. Don’t dream your life. 꿈만 꾸지 말고, 생활에서 꿈을 찾으란다.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다. 오늘은 항상 처음이다. 오늘은 세레나데 운치가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를 꽃 피웠다.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

백 동 흠 수필가
2017년 19회 재외동포 문학상 대상수상
BIRKENHEAD TRANSPORT 근무
글 카페: 뉴질랜드 에세이문학 운영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