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발레계의 신데렐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무용수 강효정

세계 최고의 발레단으로 꼽히는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발레리나 강효정은 유럽 발레계에 신데렐라로, 한국 발레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은 ‘강수진’이 있는 발레단으로 국내에 더 잘 알려져 있다. 강효정은 16살이던 2002년 스위스 로잔콩쿠르에서 입상했다. 이듬해 존 크랑코 학교로 유학했다. 학교를 1년 다녔을 때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그에게 입단을 제안했다. 파격이었다.
2004년 발레단에 들어간 그는 지난 2011년 4월 입단 7년만에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승격했다. 솔리스트로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역을 처음 맡아 공연한 날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12번의 커튼콜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이 발레단의 예술감독 라이드 앤더슨은 무대 위에 직접 올라와 객석을 진정시킨 뒤 “오늘 새로운 줄리엣이 탄생했다. 이렇게 훌륭한 공연을 보여준 무용수를 어떻게 수석으로 승급 시키지 않을 수 있겠나” 라고 했다. 강효정 씨는 이렇게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무용수로 깜짝 승급했다.
입단한 지 8년, 단역부터 시작해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이 단번에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주역 데뷔 첫 공연에서 바로 수석무용수로 승급하는 것은 파격이다. 보통 솔리스트급에서 주역을 여러 차례 맡으며 가능성을 인정받은 무용수만이 수석무용수로 승급할 수 있다. 예술감독이 관객들 앞에서 무용수의 승급을 발표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유럽의 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로 발탁된 발레리나는 강수진 이후로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였던 김지영(현 국립발레단)이 두 번째, 강효정이 세 번째다.
강효정은 같은 발레단의 대선배인 강수진을 보며 힘을 얻고 있다고 했다.
워낙 까마득한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발레리나로서 본받아야 할 게 너무 많기 때문에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강 선생님은 제가 고민을 얘기하면 잘 들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평소 자기관리의 모범을 몸소 보여주셨다”면서 “강 선생님 덕분에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그동안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선생님 은퇴 이후에도 우리 발레단의 다른 레퍼토리들을 한국 관객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에서 강 선생님의 뒤를 이어 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것을 느낀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무게감이 든다”고 덧붙였다.

수줍은 소녀, 세계 정상의 발레리나가 되다

강효정은 어릴 적부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발레 천재였다. 발레를 잘하려면 타고난 재능 외에도 유연한 신체 구조를 가져야하는데 강효정은 이 두가지면에서 남달리 우수하였다.
8살 부끄럼 많은 꼬마는 엄마 손을 잡고 집 앞 무용 학원에 갔다. 초등학교 3학년 아버지를 따라 대전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발레 학원을 다니지 못하게 되자, “공부도 다하고 쉬는 시간에만 할 테니 발레를 시켜달라”고 첫 반항을 했다. 그렇게 발레와의 인연을 꼭 붙잡은 그녀다.
선화예술중학교에 수석 입학한 강 씨는 재학 중이던 1998년 미국 워싱턴의 키로프발레아카데미에 진학해 2002년 졸업했다. 같은 해 스위스 로잔발레콩쿠르에서 입상했으며 이후 슈투트가르트 소재 존 크랑코 스쿨에 입학해 2004년에 졸업했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는 2003년 연수단원으로 입단했다.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했지만 5년이라는 긴 군무 시절을 거치며 강효정은 ‘왜 나의 재능과 노력을 알아주지 않을까’라고 좌절도 많이 했다. “어떤 날은 속상해서 한국에 돌아가야 하나 수백 번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회를 얻지 못하는 그에게 발레단 선배들은 ‘넌 여기 있기 아깝다, 다른 데 가라’고 조언하곤 했다. 그는 “왜 머물렀는지 모르겠다”며 “제 100%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냥 떠나기 아쉬웠던 것 같다”고 했다.

발레 천재에서 연습벌레‘슈퍼 효’가 되기까지

그런 그가 독하게 마음을 먹은 것은 2006년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부터다. 그는 “엄마는 내 첫 번째 팬이었다. 내가 춤추는 것을 정말 좋아하셨다. 그런데 발레단에 입단한 뒤 매일 전화로 우는 소리만 했다”면서 “엄마가 돌아가신 뒤 당시 내 모습이 후회스러워 발레에만 몰두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은 단원 70여명 가운데 독일 국적 단원이 2명에 불과할 만큼 다양한 국적과 인종으로 구성돼 전통적인 명문 발레단 특유의 순혈주의가 없다. 대신 혹독한 자기 연마를 통해 기량을 증명해야만 한다.
그녀는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일 년에 70켤레의 발레 슈즈를 신을 정도로 연습하는 그녀를 사람들은
‘연습벌레’, ‘슈퍼 효’라고 불렀다.
그리고 점점 내가 발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노력은 점점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2011년 마침내 수석 무용수로 승급했다.

견딜 수 없는 고통 뒤에 따르는 희열

그에게 최고 자리에 오른 비결을 묻자 “같은 동작을 해도 제가 추는 움직임은 좀 다르다. 굉장히 음악적이라는 얘기를 듣는 편”이라고 했다. 자연스러운 연기도 그의 강점이다. 그는 책, 영화를 찾아보며 역할을 완벽히 이해한 뒤 자연스럽게 연기하듯 춤 춘다.
“무대에서 사랑에 빠진 역할이면 닭살이 돋을 정도로 100% 느끼는 걸 좋아해요. 공연이 잘 끝나도 내가 100% 느끼지 못하면 아쉬움이 많아요. 연습할 때도 100% 몰입하며 훈련해요. 연습이라고 여기기보다 몰입하는 게 더 행복하고, 힐링돼요.”
얼핏 들으면 매일 행복하게 춤추며 지내는 같다.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 저도 사람이니 가족·친구 문제가 다 있고 힘든 날도 많다”며 “몸이 너무 아파 쉬고 싶어도 이걸 이겨내야만 돌아오는 행복이 있는 걸 알기에 노력한다”고 했다. 그는 발레를 “무대에서의 즐거움 2%를 위해 98%의 아픔과 고통을 견디며 자기와 싸우는 것”이라 여긴다. 그를 따라다니는 98%의 고통 중에는 아킬레스건 부상도 있다.
예전에 강수진씨의 못생긴 발이 화제와 감동을 주었는데, 강효정씨도 몸에서 아픈 곳을 찾기보다 안 아픈 곳을 찾는 것이 더 쉬울 정도라고 했다.
“아킬레스건이 많이 찢어진 상태에요. 지금도 공연, 총 리허설 전에 아픔을 잊고 싶으면 진통제를 먹어요. 안 아프면 춤추는 것도 더 재밌고 날아갈 것 같은데, 이제 그런 날이 없을 것 같아요. 골반, 발목도 아파요. 연습 도중 ‘집에 어떻게 가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못 걸을 것 같아서요. 가끔 선배들을 보며, 나도 큰 수술을 하게 될까 두렵기는 해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려고요. 무용 인생은 짧고 지금은 즐겨야죠. 막상 무대에 오르면 아픈 건 생각도 안 나요. 다음 날 기어 다니더라도 무대에 서는 게 즐거워요.”

“저에게 발레란 사랑하는 연인인 거 같아요.
저를 힘들게도 하고 울게도 하고 지치게도 하지만 그만큼 큰 열정과 사랑이 있고 또 싫다고 힘들다고 떼어놓지 못하고 항상 제 옆에 있는 정말 미워도 그만큼 사랑하는 연인 같아요.”

강효정의 성공 키워드

강효정은 세계적인 무용수들이 모여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발레단에서 어린 나이에 수석 무용수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5가지 비결을 밝혔다.

1.최고가 되려면 좋아하는 일을 해라.
2.더 넓은 무대로 나가라.
3.노력이 실력을 만든다.
4.뜨거운 열정이 성공을 부른다.
5.시련 앞에 단단해져라.

강효정은 “제가 춤추면서 배운 게 생각보다 많아서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작은 상자 속에 자신을 가두지 말고 남들이 따라할 수 없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자리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강수진 선생님을 비롯해 주역 무용수들이 많이 나가니, 저를 바라보는 후배들이 굉장히 많은 거예요. 제 행동 하나에 금방 반응하니, 모범을 보이고 싶기도 했어요. 하지만 욕심을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갔어요. 그랬더니 춤도, 단원들과의 소통도 훨씬 좋아졌어요.”
그는 한국 후배들을 위한 응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외국 나와서 주눅 들 필요가 없다”며 “요즘 어린 한국 학생들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실력이나 체격 조건, 한국에서의 훈련이 잘돼 있다”고 격려했다.
“한국인이 발레를 추면 섬세한 선, 손끝, 분위기가 있어요. 외국인이 갖지 못한 거죠. 이를 잘 살려 나만의 색과 움직임을 갖는 게 중요해요. 또 나를 존중하고 필요로 하는 발레단에 들어가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유명 발레단도 좋지만, 내 쓰임새가 있는 무용단에 들어가 춤출 기회를 많이 갖는 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한국 공연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주역으로 전막 무대를 보여드리고 싶은데, 기회가 많지 않아 아쉬워요.”
수석무용수가 된 후 그 전에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배역도 많이 맡게 됐다. 하지만 그만큼 책임감을 더욱 크게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예전에는 내가 고전에 어울리는 무용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춤을 출수록 모던이나 컨템포러리도 재밌다. 수석무용수로서 좋은 모던과 컨템포러리 작품에 출연하면서 그동안 내 자신은 몰랐던 또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발레계의 신데렐라, 발레 여왕을 꿈꾸다

강효정은 앞으로 어떤 무용수가 되고 싶을까? “어린 무용수들이 봤을 때 우러러볼 수 있는, 항상 꾸준한 무용수가 되고 싶어요.
“천개의 다른 가면이 있는 그런 매력적인 무용수가 되고 싶어요. 항상 봐도 지겹지 않고 새로운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 그리고 관객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는 그런 무용수가 되고 싶어요.”
아름다운 무용수 보다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는 강효정. 세계 20여 개국에서 온 70여명의 무용수들 사이에서 바늘 구명을 뚫고 수석 무용수가 될 수 있었지만 그녀의 연습은 끝이 없다. 독일 발레계의 신데렐라에 머물지 않고, 모두가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가 되기까지 그녀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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