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매료시킨 성공철학 F.U.N.경영 창시자 진수테리

진수 테리. 한국에선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최소한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풍부한 얼굴 표정,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말솜씨…
펀(Fun) 경영 컨설턴트이자 미국연설가협회의 첫 한국인 정회원인 진수테리 (62.여.한국명 김진수)씨는 `영어 연설의 달인’으로 통한다.
동양인 특유의 억양을 숨길 수는 없지만 그의 강연을 듣는 미국인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강한 흡인력을 지녔다.
테리씨도 스스로를 “글로벌 사회의 장벽을 없애기 위한 다문화 사업전문가이자 국제적 연설가”라고 소개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는 2001년 7월 10일을 ‘진수 테리의 날’로 선포하고 그가 사회 저변의 다민족과 흑인들을 대상으로 성공적인 교화 운동을 펼친 것을 크게 기념했다. 미국 연방정부는 2003년 소수민족 비즈니스 리더에게 주는 MBA(Minority Business Advocate)상, 2004년에 수출공로상을 수여했다.
스피치클럽을 통한 강연 활동과 의류기업 컷루스의 부사장으로 회사 매출을 3배로 올린 공적을 평가한 것이다. 2005년 미국 ABC-TV는 아시아 지도자 11인에 선정했고, 미국 상무부도 미국을 대표하는 소수민족 비즈니스 지도자 100대 여성 기업인에 진수 테리의 이름을 올렸다. 2007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미국에서 가장 창의적인 중소기업인 6인에 그를 포함시켰다.

웃다가 성공한 여자, 진수 테리

“성공한 삶이요? 더 재미있게, 행복하게 사는 거죠”
서툰 영어로 미국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진수 테리는 안 그래도 작은 눈을 더욱 가늘게 만들며 “하하하하~” 웃어 보인다. 그녀가 말하는 자신의 성공 비결은 바로 이 ‘웃음’. 그는 그렇게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웃음’으로 미국을, 세계를 손에 쥐었다.
진수 테리 여사는 지금 미국과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 지역을 순회하며 글로벌 리더십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F.U.N이라는 글로벌 리더십 철학은 그가 앉아서 머리로 만들어낸 용어가 아니다. 회사원으로 근무하던 시절에 웃음을 잃어서 실패했던 자신의 뼈저린 체험에서 찾아냈고, 그것을 교본 삼아 그는 글로벌 리더로 성공했다.
그가 창조한 성공 철학이며 글로벌 리더십의 슬로건이 ‘FUN(재미, 즐거움)을 잡아라’이다. 그 한 개의 단어를 다시 세분해서 F(Fun 즐거운 리더), U(Unique 창의적인 리더), N(Nurturing 배려하는 리더)의 뜻으로도 표현하고 있다.
서른 살에 남편을 따라 건너간 미국에서 접시닦이로 시작해 지금은 경영전문회사 CEO가 되었다. 열정적인 마인드로 세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여자, 진수 테리가 전하는 행복과 성공의 키워드. “동양 여자, 게다가 영어까지 서툰 제가 해냈으면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If Jinsoo can do it, you can do it, too)”는 말은 자신을 패자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던져 준 것으로 유명하다.”

Success Point 1 시야를 넓혀라

1남2녀 중 맏딸로 태어난 그는 `이공계를 나와야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일념에 부산대 섬유기계학과에 입학, 신입생 40명 가운데 홍일점으로 대학을 다녔다. 성공하겠다’는 일념 하에 거친 남자들과 어깨를 겨루며 어렵사리 학업까지 마쳤으나 그녀를 받아주겠다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부모와 함께 살던 부산의 집을 떠나 서울로 상경,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역시나’로 끝이 났다. 고생 끝에 낙이 온 건 정확히 150번째 이력서를 우체통에 넣었을 때. 박사 과정을 밟던 중 자그마한 방직회사로부터 입사 통지서를 받게 된 것이다. 물론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그녀의 첫 직장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흔히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들 한다. 그녀에게 첫 번째 기회는 서른을 바라보던 어느 날 찾아 들었다. 우연히 길에서 알게 된 뉴질랜드 또래 친구 미스 앤. 그녀와의 만남은 진수 태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1984년 일본에 출장 다녀오는 길에 그는 우연히 세계일주 중인 뉴질랜드 여성 앤과 친구가 되면서 또 다른 세상에 호기심을 느꼈고, 그녀로부터 미래의 남편인 미국인 배낭 여행가 샘 테리를 소개 받고서는 더 넓은 세상을 꿈꾸게 됐다.
새로운 길을 가보자고 결단을 내린 테리씨는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결혼식을 올린 뒤 1986년 한 해 동안 대만, 홍콩, 태국을 거쳐 인도, 네팔, 미얀마,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이집트, 케냐, 모로코를 여행했다.

Success Point 2 스스로 변신하라

새로운 사회에 도전장을 낸 진수 테리. 처음엔 그녀도 여느 이민자들처럼 접시 닦이, 서빙 등 막일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미국서 제대로 된 직장에 터를 잡은 건 1987년의 일. 가죽 벨트 공급업체인 사커에 프로덕션 매니저로 입사한 그녀는 정말이지 혼신의 힘을 다해 회삿일에 매달렸다. 열정을 다한 만큼 성과도 좋았다. 공장의 생산라인을 감독하며 매출을 세배 이상 올려놓았던 것. 성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나도 5년이 지나도 승진 대상자 명단에서 그녀의 이름은 늘 빠져 있었다.
미국 학교를 나오면 좀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낮에는 공장 일을, 밤에는 샌프란시스코 주립대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공부하며 바쁜 시간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입사 7년차에 권고 사직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7년을 몸 바쳐온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됐다고 생각해보세요. 충격이 엄청났죠. 부사장을 찾아가 회사에 해고 사유를 물었더니 “일도 잘하고 학벌도 좋지만, 너무 잘하려고 늘 긴장해 있기 때문에 당신의 얼굴엔 미소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랫사람이 당신을 따르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그 말을 듣자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것 같았지만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유능한 직원이 되기 위해서만 급급했지 동료들과의 우애나 화합을 위해 노력하기는 커녕 변변한 웃음조차 웃어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수 테리는 자신의 문제점을 개선 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날부터 얼굴 표정을 부드럽게 바꾸려고 노력했고 거울을 보면서 다양한 표정과 웃는 연습을 했다. 그녀는 웃는 얼굴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자꾸 웃고 또 웃었다.
그녀는 그 즉시 MBA 과정을 중단하고 영어 스피치 클럽에 들어갔다. 미국인이 한 번 들으면 되는 코스를 그녀는 세 번, 네 번을 들었다. 영어로 또박또박 말하며 끈기 있고 기분 좋게 설명하는 습관을 기르려고 온 힘을 다했다. 영어로 리더십을 개발하는 세미나도 들었고, 세일즈 일을 할 것도 아니면서 미국 세일즈맨과 경쟁하는 코스도 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수 테리는 웃음의 가치도 재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웃기 시작한 다음부터 거짓말처럼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취직도, 승진도 순조로웠다. 마인드가 바뀌니 더욱 큰 세상이 그녀 앞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

Success Point 3 내게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을 찾아라

낙담과 분노를 거친 뒤 그녀가 깨달은 것은 ‘나의 성공을 방해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점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성공이라는 두 글자를 품에 안기까지 그녀는 두 배로 힘이 들었다. 누군가는 일깨워줘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라이노 스피치 클럽. “처음에는 ‘미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웃기는 여자’라며 다들 절 비웃더군요. 하지만 지금은 어떤 줄 아십니까? 지난 8년간 저희 스피치 클럽을 거쳐간 미국 젊은이들만 800명이 넘습니다. 영어를 못해 고민이라고 말하는 분들 많으시잖아요. 하지만 정작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저도 미국에 처음 왔을 땐 영어를 잘 못했어요. 그래서 입을 닫고 살았죠. 하지만 마인드를 달리한 후부터는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어요. 미국인이 영어로 말을 걸어 올 때면 무조건 ‘Wow~’ ‘It’s amazing! you are the best’라며 맞받아쳤어요.
풍부한 표정에 손짓 발짓까지 다 동원해가며 말이죠. 그랬더니 미국인들이 신이 나서 그럽디다. ‘너 영어 정말 잘하는구나’ 라구요. 그런 식으로 사람들과 대화의 기회를 넓혀가고, 나의 장점을 찾아내 개발하며 대화의 기술을 익혔더니 어느 순간 전문연설가가 되어 있더군요.”
진수 테리는 1993년 의류업체인 (주)컷루스로 자리를 옮긴 뒤 회사를 업계 정상에 올려놓으며 작년에는 부사장 직함까지 달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전문연설가’로 소개한다. 그녀의 최종 목표는 바로 오프라 윈프리를 능가하는 토크쇼의 진행자가 되는 것. 그녀의 영어에 한국인 악센트가 있어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진수 테리는 자신의 약점조차도 장점으로 탈바꿈 시켜 놓는 묘한 재주가 있다.
“미국에선 강연료로 5천 달러를 받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7천 달러를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이렇게 말하죠. ‘당신은 미국 사람도 아니고 한국인 특유의 액센트까지 있는데 어떻게 강연료가 더 비쌀 수가 있습니까?’라구요. 그러면 제가 대답합니다. ‘저는 저만의 개성 강한 액센트가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서 살고 있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동양의 문화에 서양의 문화까지도 잘 알죠. 장점이 두 배로 크니, 출연료도 그만큼 높을 수밖에요’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게 웃으며 ‘그럴 듯 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합니다. 이렇듯 자신의 장점을 개발했으면, 제대로 포장을 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성공은 나를 파는 일이기 때문이죠.”
테리씨는 “연단에 올라 최선을 다하고 나서 청중들이 바뀌었다고 느낄 때 가장 행복하다”며 “평소 활력이 넘치지만 가끔 지칠 때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책을 읽거나 남편과 함께 네바다에 있는 사막으로 여행을 다녀온다”고 말했다.
영어 연설 비법을 묻자 ▲하고 싶은 말을 써서 외우기▲완벽한 영어보다 감정 섞인 영어▲짧고 간결하게 말하기▲상대방 말을 잘 들어 주기라고 답했다.
그는 요즘 힙합 삼매경에 빠져 산다. 얼마전 귀국해 한국의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강연회를 가졌을 때에도 진수 테리는 미국의 흑인 래퍼 한 명을 서울까지 동행케 했다. 그는 강연 도중 빨간 두건을 머리에 쓰고 랩송을 선보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로 인해 오락적인 요소를 곁들인 새로운 장르의 강연이 생겨난 것이다. 웃다 보니 인생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고, 또 웃다 보니 성공했다는 ‘웃음 예찬론자’다운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그가 항상 강조해 말하는 것이 있다. “서른 넘어 시작한 진수가 해냈으니 여러분 누구도 해낼 수 있다” 성공한 CEO이자 경영 컨설턴트인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빨간 두건을 쓰고 랩을 흥얼거리며 ‘웃음’을 팔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If jinsoo can do it, You can do it, too!”를 외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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