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칼럼 기획칼럼 1000호 특별 인터뷰-‘강철 남자(Iron Man)’ 진정진의 심장 소리를 듣다

1000호 특별 인터뷰-‘강철 남자(Iron Man)’ 진정진의 심장 소리를 듣다

나와 싸워서, 나의 한계를 깼다…쉽지 않은 경기 완주에 자부심 느껴”

한의사로 일하면서 시간 날 때마다 운동, 지적장애인 자원봉사에 관심 많아


“철인삼종경기는 이변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날씨나 컨디션 따위는 핑계에 불과합니다. 그동안의 노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정직한 경기라는 것이지요. 땀이 곧 결과라는 점에서 가장 정의로운 경기이기도 하고요.
매일 자신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고, 기록을 단축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언젠가부터 겸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곤경에 빠졌을 때 당황하는 것도 줄어들고요.”

지난 3월 2일, 타우포에서는 제35회 뉴질랜드 철인삼종경기대회가 열렸다. 전 세계에서 18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한 국제 규모의 경기였다. 세계에서 두 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뉴질랜드 대회는 매년 타우포에서 열리고 있다. 올해는 협회 창립 35주년 기념 대회였다. 그 경기에 참가해 완주한 한국인이 있었다.

대회 참가 번호판(633)에는 태극기와 KOR 새겨져
번호판에는 태극기와 KOR이 새겨져 있었다. 선수 번호 633.
나는 새까만 얼굴에 깡마른 체격, 그리고 반짝이는 눈빛을 예상했다. 비타500 한 상자를 들고 나타난 사람은 너무나 평범한 청년이었다. 얼굴이 하얗고 보통 체격인, 눈빛 또한 순진하게 보일 정도였다. 악수를 할 때의 눈웃음은 차라리 귀엽게 보였다. 그의 어디에도 바다 수영 십 리(3.8km)를 하고 자전거로 오백여 리(180km)를 달린 후에 마라톤(42.195km)을 뛴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한의사이기도 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진(陳正辰)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어떻게 그리 힘든 운동을 하게 되었는지부터 물었다.
“어릴 때부터 달리기에 소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내 체육대회에서 여러 번 입상을 했으니까요.”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뼈가 여물기도 전에 보였던 소질이나 체육대회에서 받았던 상장 몇 장이 계기가 될 수 있을까.
“뉴질랜드에 와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어디든 뛰어다닐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운동을 접하게 되었고,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랬을 거야. 생활의 반이 운동이고 온통 뛰어다니는 사람들이니까. 철인삼종경기의 어떤 점에 마음이 끌렸을까.
“철인삼종경기는 이변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날씨나 컨디션 따위는 핑계에 불과합니다. 그동안의 노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정직한 경기라는 것이지요. 땀이 곧 결과라는 점에서 가장 정의로운 경기이기도 하고요. 매일 자신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고, 기록을 단축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언젠가부터 겸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곤경에 빠졌을 때 당황하는 것도 줄어들고요.”

철인삼종경기(Triathlon)는 바다 수영(3.8km), 사이클(180km), 그리고 마라톤(42.195km)의 세 종목을 쉬지 않고 연달아 치르며 인간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경기다. 1978년 미국 하와이에서 최초의 국제대회가 열렸으며,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제한 시간(17시간) 안에 완주를 하는 선수에게는 ‘철인’(Iron Man)이라는 칭호가 주어진다.


하루 3시간 수영과 달리기, 주말에는 자전거 타
평소에 훈련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훈련을 시작합니다. 평일에는 3시간 정도 수영과 달리기를 하고, 시간이 많은 주말에는 자전거를 탑니다. 힘이 많이 들지만 그런 이유로 그만둔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진정진은 2010년 뉴질랜드에 왔다. 오클랜드에는 유학 중인 여동생이 살고 있었고, 넓은 세상을 경험해보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서였다.
정진은 조용하고 깨끗한 나라에서 살고 싶었다. 여기서 살려면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영어에 매달렸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닌 20대 중반인 정진에게 영어는 쉽지 않았다.
기초부터 다시 시작했다. 이듬해 IELTS를 거쳐 요양복지(Diploma Health Care)에 들어갔고, 과정을 마친 후 사회복지사(Community Social Worker)로서 주로 지적장애인들을 돌보는 일에 종사했다.
2014년, 영주권을 취득했다.
“지적장애인들을 보면서 안타까웠습니다. 누군가 조금만 도움을 준다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도움을 주는 그 누군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정진은 그들에게 꼭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 생각했고, 그 방법을 생각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말이나 동정이 어린 눈길이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을 원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몸으로 전달되는 일을 했다.
정진은 2014년 중의학교(New Zealand College of Chinese Medicine)에 입학해 3년 과정을 마치고 한의사가 되었다.
“지금은 호익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제 병원(클리닉)을 열게 되면 좀 더 봉사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정진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뛰어야 할 거리를 많이 남겨둔 철인의 눈빛이 저렇지 않을까. 이룬 것보다는 이루어야 할 일이 많은 젊은이의 눈빛이기도 했다.


아내 덕분에 운동에 집중할 수 있어, 맞춤 음식도
정진은 1988년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이 한 가족이었다. 교직에서 은퇴한 아버지는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선교센터에서 봉사하고 있다. 1958년생인 그의 아버지가 자식들을 걱정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가끔 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워낙 말씀이 없으신데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 많이 보고 싶으신가 봅니다. 부모님을 초청하려고 합니다. 매일 이민부 홈페이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아내도 동의했습니다.”
그랬다. 정진은 유부남이었다.
“결혼은 2017년 겨울에 했습니다. 아빠가 되기보다 외삼촌이 된다니까 이상합니다.”
자신이 장남이듯이 자기 아들이 부모님에게 첫 손자이기를 바라는 모양이었다. 그래야 장남의 도리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괜찮습니다. 남동생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여동생인데 어떻습니까.”
“그럴까요?”
“아내는 어떻게 만났습니까?”
쑥스러워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그녀는 유학생이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고, 대학을 마친 후였다. 두 사람은 자주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금방 친해졌다. 그리고 사랑에 빠졌다.
판에 박힌 듯한 말이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외국에서의 외로움을 알고 있었고, 생활과 공부를 하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장래가 있었고, 꿈이 있었다. 조용하고 깨끗한 나라에서 평범하게 살면서 행복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보다는 힘을 합치는 것이 맞는 방법이었다.
정진은 마음먹은 일을 미루는 성격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서로의 직장의 중간지점인 힐스보르(Hillsborough)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아내는 뉴마켓이었고, 정진은 호익으로 출근했다.
“아내가 아니었으면 운동을 계속할 수 없었을 겁니다. 제게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혹시 혼자 운동을 하는 남편을 이해합니까?”
우문(愚問)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운동을 좋아하겠는가. 기껏 공을 똑딱거리는 탁구나 레일 밖으로 굴려놓고 팔짝팔짝 뛰는 볼링 정도가 아닐까.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제 운동에는 여간 신경을 많이 써주지 않습니다. 식단도 개발했고요. 운동 스케줄도 짜주곤 합니다. 이제는 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아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습니다.”


해병 1063기, 백령도에서 소총수로 근무
관례상 국제경기에 참가하려면 최소한 이틀 전까지는 현지에 도착해야 한다. 선수등록 후 숙소를 배정받고, 장비가 국제규칙에 맞는지 확인을 받아야 하고, 선수 번호를 받아야 한다. 현지 적응과 컨디션 조절을 위해서다. “기어코 따라나서더군요. 꼭 붙어서 잔소리를 했습니다. 그 잔소리가 고마웠습니다. 늘 그랬지만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요. 경기 당일에는 새벽 세 시에 일어나서 한국식 밥상을 차렸어요. 저는 경기에 나가기 전에 꼭 밥을 먹거든요. 준비를 하는 동안 경기 중에 섭취할 음식까지 꼼꼼하게 챙겨두었고요.
사실은 제가 자전거를 타다가 30km 지점에서 넘어졌습니다. 무릎이 찢어지고 왼 손목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중간에 그만두려고 참가한 경기가 아니었거든요. 그동안의 노력과 땀들이 물거품이 된다니요.
그때 고글 너머로 출발선에서 두 손을 모아 쥐고 있는 아내의 모습과 수영을 마치고 물 밖으로 뛰어나오는 저를 향해 두 손을 활짝 펴서 흔드는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아내에게 미안해서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몸을 돌리는데 다리가 움직여지는 겁니다. 골절은 아니었던 거지요. 자전거에 올라탔습니다. 한 손으로 달렸습니다. 마라톤도 그렇게 뛰었고 완주를 했습니다.”
부어오른 손목을 늘어뜨린 채 피를 흘리며 완주해내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잘했다고, 장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참았다.
“군 복무는 어디서 했습니까?”
남자들에게 군대 이야기는 보물창고이기 마련이었다.
“해병 1063기입니다. 백령도에서 소총수로 근무했습니다.”
“그래요? 해병대는 지원 아닙니까?”
“네, 그렇습니다.”
“많이 힘들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왜 지원했습니까?”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멋있잖습니까?”
나는 젊은이를 상대로 어리석은 질문만 계속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젊은이에게 그것 말고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하겠는가. 문득 남들은 힘들다고 피해 가는 길을 스스로 찾아 걸어온, 그 배경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해병대가 그렇고, 해외 생활이 그렇고, 철인삼종경기가 그랬다.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저희에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뭐든지 해보라고, 단, 허락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릴 적 꿈 “소방구조대원 되고 싶었다”
정진은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기숙사 생활을 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성적 우수반에 들어서였고, 집에서 먼 대학을 다녔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십 대 중반부터 인내력과 독립심을 익혀 온 것이었다.
“소방구조대원이 되고 싶었습니다. 화재 현장에서 가장 먼저 불 속으로 뛰어드는 구조대 말입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저도 아마 그들 중의 하나가 되었을 겁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다. 바를 정(正), 별 진(辰), ‘바른 별이 돼라’는 이름 또한 아버지가 지어주었다. 아들은 온 가족이 함께 살날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있었다. 바쁜 사람을 마냥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꼭 묻고 싶었다. 철인삼종경기야말로 재미는 하나도 없고 힘들기만 한 운동인데, 남들이 모르는 그것만의 매력이 있지 않을까.
“성취감이라고 해야겠지요.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 자신과 싸워서 자신의 한계를 깨는, 자신을 이겨가는 싸움이니까요. 남들이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종목이라는 자부심도 약간은 있습니다.”
신장 175cm, 체중 73kg, 혈액형 O형인 정진은 웃었다.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그런 웃음이었다. 재미없고 고단한 삶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만이 지을 수 있는 웃음이 아닐까.
“이런 말씀 드려도 되나요?”
“얼마든지.”
“주말이면 키위들이 무리를 이루어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굉장히 부러웠습니다. 우리 교민들도 건강한 취미활동을 통해서 하나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거기에 제가 할 일이 있으면 아끼지 않겠습니다.”
정진의 말이 놀랍고 한편 부끄럽게 느껴졌다. 뉴질랜드타임즈 1000호에 실릴 인물로서 전혀 부족함이 없는 젊은이였다. 철인이자 한의사인 그는 비타500을 사 들고 올 줄 아는 청년이기도 했다. 무릎에는 아직 피딱지가 붙어 있었다.

글_프리랜서 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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