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hia

‘여보, 아침 햇살이 창문을 콕콕 두드리네~”
“벌써 그리됐나? 아~ 정말 푹 잘 잤네~”
낯선 곳에서의 아침이었다. 침대에서 기지개를 켜며 아내 써니가 햇살을 맞아들였다. 베이어브 아일랜드의 파이히아가 새롭게 열렸다.
남편 앤디가 느긋한 마음으로 창문을 열어젖혔다.
3박 4일의 여정 중 이틀째를 맞는 시간, 바쁠 것도 없는 시간이 편안했다.
써니가 꼭 가보고 싶다던 뉴질랜드 북단의 파이히아! 바램은 마법을 끌어들이는가. 그날이 봄바람처럼 찾아왔다.
날씨와 계절이 딱 좋은 시간, 파이히아에 모텔 숙소를 구했다.
앤디도 함께 휴식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최근 무리한 건축일로 어깨가 저린 상태였다. 토. 일. 월. 화, 모처럼의 시간이었다.
느지막이 아침을 먹었다. 가벼운 외출 복장으로 나섰다. 써니가 카메라를 챙겼다.
선글라스에 잠자리 모자까지 쓴 모습이 중견 사진작가 같았다. 앤디는 수첩 하나에 볼펜 한 자루면 족했다.
새롭게 찍을 것과 다르게 쓸 것이 있는 곳으로의 여행. 기대와 설렘이 일렁거렸다.
숙소를 나와 바닷가로 향하는데, 사람들이 몰려 들어가는 곳이 눈에 띄었다. 교회였다.
여행 온 이들이 주일 예배를 참석하려는 참이었다. 앤디와 써니도 따라 들어갔다. 교회 강당이 꽉 찼다.
키위 목사의 설교에서 몇 마디가 귀에 딱 들어 왔다.
“Restore the mind! Re Energize the spirit!”
대자연과 하늘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몸과 마음을 맡겨보란다. 자연 에너지 충전이 바로 성령 충만처럼 은혜로울 거란다.

***

길든 일상을 벗어나면 어디라도 새롭고 다른 세상이었다. 파이히아에 숙소를 정해놓고 주변 명소들을 하나씩 둘러보는 시간이 편안했다.
어제 토요일 밤엔 워터프런트 주변 카페들이 흥청거렸다. 놀라운 일이었다.
파이히아를 조용한 읍내 정도로 생각했는데, 오클랜드 바이어 덕트 못지않았다. 여행자들이 만남과 나눔을 자유로이 즐겼다.
써니와 앤디는 바다 위에 떠 있는 Tongue & Grove 카페에서 와인을 시켜 들이켰다.
바다 한가운데에 조명이 빛나는 아파트 한 채가 떠 있는 듯 보였다. 크루즈 선이었다.
국제 관광지다웠다. Tongue & Grove! 카페 이름이 희한했다. 오목과 볼록, 음과 양, 남과 여의 만남을 상징하는 이름에 정감을 느꼈다. 채움과 비움이 교차하는 인생사를 반영한 이름이었다.
두 딸을 분가시키고 난 후부터 써니와 앤디도 조금 여유를 갖게 되었다. 생활에 작은 동기와 계기가 되면 일단은 일을 저지르기로 했다.
그 몫은 주로 써니가 담당이었다.
Something New, Something Different! 옆에서 보조만 맞춰도 앤디는 얻은 게 많았다.

***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Mimure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씩을 주문했다. 카페 이름이주는 철학적 뉘앙스가 마음에 들었다.
써니는 플랫 화이트, 앤디는 라테를 마셨다. 찰랑대는 바다 물결을 지긋이 바라다보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한가로웠다. 그때였다. 써니가 깜짝 놀랐다.
누군가 써니 등 뒤에서 두 눈을 감싸는 게 아닌가. 앤디도 덩달아 놀랐다. 앤디 등을 누군가 툭 쳤다.
“아이, 깜짝이야!”
“세상에나?”
써니와 앤디 입에서 동시에 탄성이 나왔다.
“우와 어떻게 이 시간에 이렇게?”
“글쎄, 보아하니 딱 두 콤비더구먼.”
이민 동기, 테디와 제니 부부였다. 봉고 밴을 개조해 만든 캠핑카로 여행 중이라고 했다. 테디와 제니도 파이히아에 한 이틀 머물다 갈 참이란다.
“잘됐네요. 우리도 한 이틀 더 묶다가 갈 생각이에요. 이런 인연이 어디 있어요? 우리 숙소에 방이 둘 있으니 함께 보내요. 여기선 우리가 주인이니까 쉬었다 가요.”
써니의 즐거운 환대에 제니가 손뼉을 쳤다. 합석해서 그동안 못 나눈 회포를 풀었다.
햇살이 반짝이는 바닷가 은빛 물결이 밀려왔다 스러져갔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앤디와 테디는 오클랜드에서 20년 지기 친구였다. 테디는 키위 회사에서 페인트칠을 해 왔다.
작년에 고혈압과 당뇨로 테디가 쓰러졌다. 과로로 무리한 탓이었다. 한 달간 병상에서 고생하고 나서야 건강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 후로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확 바뀌었다. 주 5일간 일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푹 쉬었다. 이번에는 일주일간 휴가를 내서 베이어브 아일랜드 일대를 여행 온 터였다.
“테디, 자네 얼굴에 혈색이 도네. 작년 병고 치른 뒤에 건강관리를 잘해 온 것 같아.”
“자주 쉬고 여행 다니다 보니, 몸을 많이 움직이게 되는구먼. 절실히 깨달았지. 건강비결, 뭐 별거 있나? 운동이나 일로 땀 흘리고, 잘 먹고 쉬는 것, 거기에 여행이 곁들여지면 금상첨화지.”
경험자의 말엔 힘이 묻어났다. 솔직 담백한 이야기에 진실이 담기니, 설득력이 있었다.
테디도 두 아들을 독립시킨 터였다. 그동안 사느라 바빴던 이유로 제니와 둘이서 제대로 여행을 못 했는데, 캠핑카를 가지면서부터 틈나는 대로 쏘다닌다고 했다.
“테디, 작년에 써니와 함께 스리랑카를 여행한 적이 있었지. 지금 우리가 머무는 카페 이름이 특이하지 않나?”
“Mimure! 무슨 뜻이라도 있나?”
스리랑카에 있는 땅 이름이네. 우리와는 인연이 깊지. 미무레라는 소도시를 방문해서 감명 깊었거든. 자연과 동화된 주민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어. 미무레 주민의 삶을 배웠지. 과거나 미래에 머물지 않고 지금 여기에 머무는 생활이 미무레 삶이라고 하더구먼.”
“그려. 우리가 그런 뜻깊은 미무레 카페에서 만나고 있구먼. 앤디 자네 말에 절대 공감이야. 진정한 행복이란 거창한 게 아니지. 부부나 가족, 친구와 어울리는 시간을 갖는 게 아닌가 싶어. 내 아프고 나서 병원비로 쓸 것 여행에다 쓰자는 게 내 모토가 됐어.”
“일상의 모든 시름을 내려놓고 훌쩍 떠나 보는 것, 거기엔 꼭 자연의 화답이 있어요.
자연의 미세한 소리도 듣고 향기도 맡는 시간은 인간 본연의 세계를 느끼게 해요.”
“써니도 앤디를 닮아 문학소녀가 다 됐어. 우리 지금 문학기행 온 것 같지 않아? 어제부터 오늘로 연결된 시간, 다시 내일로 이어지고 있는 순간. 이것도 미무레 삶이 아닐까요? 앤디씨!”
“맞습니다. 제니 씨! 굳이 무언가를 더하지 않아도 충분한 삶이지요. 좋은 만남과 나눔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는 거겠지요. 이런 모든 것이 여행의 보너스일 수도 있어요.”
넷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꽃이 파이히아에서 피어났다. 음식을 추가로 시켜서 아예 점심을 이어 나갔다. 좋은 사람들과 아름답고 낯선 곳에서 먹는 음식 맛은 별미였다. 여행의 맛이란 바로 종합선물 세트 같았다. 시간 제약 안 받지, 먹을 것 풍성하지, 나누는 담소 흥미진진하니 그만이었다.
쾌적하고 여유로운 시간과 공간 속에 통하는 인간이 있으니 세 가지 간 間이 다 모인 셈이었다. 시간, 공간, 인간!
“사이 간 間은 바로 고유의 영역을 담고 있는 게 아닐까요? 본연의 거리, 존중의 사이가 바로 공존할 수 있는 힘을 주겠지요. 자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미무레 한번 해요. 미무레!”
“미무레!”
제니의 사이 간間 철학과 미무레 제의에 모두가 목청을 돋웠다.
카페 벽에 액자 하나가 유달리 새롭게 보였다. 제니가 그걸 가리키며 물었다.
“Does it Spark Joy!”
“우~와! 저 문구에도 호기심 어린 눈길을 갖다니, 대단해요.”
“맞아. 설렘이 있는가! 우리를 두고 하는 물음 같네. 물론이지. 설렘이 있는 일상. 여행.”
써니의 맞장구에 테디가 다른 쪽 액자를 가리켰다.
“Doing Good. Being Good.’
“미무레 카페가 특이하긴 특이하네그려. 행위 속에 존재감이 살아난다고?”
앤디의 응송에 테디가 답송을 한다.
“환경이 우리를 바꾸어주는구먼. 경험은 우리에게 이야기꽃을 피워주고. 하여튼 오늘의 이런 시간도 나중에 두고두고 추억 이야기로 적립되겠지.”
뉴질랜드에 이민 와 살면서 촌철살인처럼 가슴에 영감을 주는 용어를 대하는 것도 자그마한 행복이다. 이 또한 멀리 떠나온 자들에게 주는 보너스다. 우리 나라 속담에도 인생의 깊은 맛이 우러나는데, 서양 문구에도 그네들의 문화와 정서가 숨쉬고 있다.
화통 하는 부부끼리 낯선 곳에서 즐거운 담소를 나누며 맛있는 음식까지 먹고서 바닷가를 산책했다. 저녁에는 클럽 파이히아 숙소에 들어가 뜨끈뜨끈한 스파에서 몸을 풀기로 했다.
그동안 수고한 뒤에 몸과 마음이 이렇게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었다.
“테디, 이번 파이히아의 여행은 아주 인상 깊네. 마치 에스키모들이 힘들 때 정처 없이 떠났다가 돌아오는 여정 같아. 그네들은 한없이 걷다가 평안이 찾아오면 그 지점에 멈춰 서서 막대기를 꽂아두고 되돌아선다고 해. 이번 휴식과 여행은 내 삶에 막대기를 꽂고 돌아오는 일이려니 싶어.”
“앤디, 그 말에 공감하네. 지금에 살고, 과거에 감사하고, 미래에 희망을 두자고.”
하늘을 담은 바다가 빈 가슴에 서서히 밀려들어왔다. 싱싱한 나뭇잎들이 잔잔한 바닷바람에 서걱거리고 있었다.*

백동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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