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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어머니 날 특집 맘에 두고 읽을 수필 1

2011년 팔순 잔치 때 시드니에서 노래를 부르던‘카수’영숙.


나는 미처 묻지 못한 마지막 질문을 혼잣말로 속삭인다.
‘엄마~ 천국에서도 나랑 같이 커피 마실 거죠?
내 건 모카치노, 엄마 건 카-푸-치-노.’
저 멀리 커다란 나무 사이로 그 무엇이 사라지는 게 보인다.
나도 모르게 오른손이 올라간다.
‘부디 다시 만날 때까지 잘 계세요. 사랑하는 내 엄마~.’


오랜만에 미술관에 갔다.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듯 고풍스럽게 생긴 미술관에는 멋진 카페가 있다. 유명한 화가의 우아한 그림 덕분인지 커피나 음식 맛도 더 좋을 것 같다.
그림을 둘러본 뒤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시켰다. 내가 늘 즐겨 마시는 모카치노. 대기 번호판을 받아 바깥으로 나갔다. 시원하게 펼쳐진 푸른 잔디 곳곳에 큰 나무들이 하늘을 찌르듯 위용을 뽐내고 있다. 거친 바람 소리마저 예술인 듯 다가온다. 나 홀로 커피 한 잔, 말 없는 자연만이 내 친구다.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직원이 금발을 휘날리며 다가와 식탁에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 마디.
“해브 어 굿 타임.”(Have a good time.)
순간 나도 모르게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내 식탁 주위에 삼삼오오 둘러앉은 손님들의 재잘거림이 한 몫을 더했을 거다. 대부분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들이다. 인생의 노년을 미술을 벗 삼아 즐기는 그들이 내심 부러웠다.
계산대로 가 커피 한 잔을 더 주문했다. 살아 계실 때 엄마가 즐겨 드시던 카푸치노.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원고 뭉치를 훑는다. 세 번째 읽는 원고 더미다.
“인생이 이렇게 지루한 것인 줄… 정말 몰랐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얼마 전 나와 동갑인 20년 지인이 자기가 쓴 중편 소설을 내게 건네며 한 번 봐 달라고 부탁한 작품이다.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이 작품 곳곳에 스며 있다. 주인공은 내 엄마 또래의 할머니다. 소설이라고 하기보다는 수기에 가까운 그 작품을 읽으며 나는 돌아가신 내 엄마를 떠올렸다. 가슴에 사무치도록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여직원이 카푸치노를 내 식탁으로 가지고 온다. 그의 멋쩍은 웃음이 무슨 뜻인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되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이 잠깐 흔들린다.
‘취향이 독특한 남자네~’
카푸치노를 응시한다. 가운데 하트 무늬가 새겨져 있다. 순간 하얀 김을 타고 엄마가 나타났다. 지니의 요술램프에서 나온듯 살아생전 그 모습 그대로다.
“성기야. 엄마 보고 싶었니?”
나는 애써 눈을 옆으로 돌렸다. 주위에 있는 할머니들의 눈길이 거북해서다.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나무를 한 번 본 뒤 조금은 매정하게 물었다.
“천국이 그렇게 좋으신가요?”
“….”

엄마와 카페를 자주 다녔다. 나는 늘 달달한 모카치노를, 엄마는 늘 거품이 많은 카푸치노를 시켰다.
“그 카~, 뭐라고 하는 거 시켜라.”
엄마는 ‘카푸치노’라는 네 자를 다 발음하기가 힘들어 앞글자만 말하고 대충 넘어가곤 했다. 나는 그사이 내가 먹고 싶은 케이크나 샌드위치 같은 ‘주전부리’를 추가했다. 그게 엄마가 바라는 거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여든 넘은 엄마는 쉰 넘은 아들 입에 그 무엇이라도 넣어주고 싶어 하셨다.

새천년을 한 해 앞둔 1999년 엄마는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뉴질랜드에 정착했다. 순전히 자식들과 함께 남은 생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큰 호강은 못 해도 다섯 자식의 적당한 효도를 받으며 살던 엄마는 지난해(2017년) 4월 26일 시드니에서 삶을 마쳤다.
이생에서 보낸 햇수는 여든여섯. 세상적으로 본다면 적지 않은 나이었고, 비록 암으로 돌아가시긴 했지만 엄마가 치른 고통은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다. 남들은 내게 그 정도면 호상이라며 위로했는데도 나는 그게 전혀 와 닿지 않았다. 엄마도 죽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였다.
엄마가 내 곁을 떠난 지 어느덧 한 해가 다 되어간다. 형제들이 단체 카톡을 통해 엄마 사진을 주고받고 절절한 사모곡을 전해와도 나는 묵묵부답으로 대했다. 어쩌면 그게 엄마를 잃은 슬픔을 견디는 나만의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늦은 밤 잠자리에 들어서도, 멀리 여행을 할 때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불쑥불쑥 엄마 생각이 떠오르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을 1~2초로 줄였다. 슬픔을 굳이 묵상하고 싶지 않았다.
내 몫의 모카치노가 점점 줄어든다. 엄마 몫인 카푸치노는 그대로다. 온기만 서서히 사라지고 있을 뿐이다.

“천국에도 커피가 있던가요?”
엄마는 씩 웃는다. 나는 그 웃음의 뜻을 안다.
‘커피가 뭘 그리 좋았겠니? 너랑 같이 있는 게 좋았지.’
시끌벅적하던 카페가 점점 조용해진다. 문을 닫을 시간이 다 된 것이다. 여직원이 내게 와 다소곳이 묻는다.
“우쥬 라이크 언아더 커피?”(Would you like another coffee?)
영업시간이 다 끝나가니까 커피 한 잔을 더 마시고 싶으면 빨리 주문하라는 뜻이다.
엄마를 바라봤다. 손사래를 친다. 그만해도 된다는 표시다.
“너 건강한 것 봤으니까 이제 됐다. 글 쓴다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몸 챙겨가며 해라.”
엄마와 나의 작별 시간.
주위를 둘러보니 남은 사람은 우리 둘뿐이다. 그 많던 누구의 엄마들은 다 떠나고 없다. 가슴 한쪽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허전함이 밀려온다.
나는 미처 묻지 못한 마지막 질문을 혼잣말로 속삭인다.

‘엄마~ 천국에서도 나랑 같이 커피 마실 거죠? 내 건 모카치노, 엄마 건 카-푸-치-노.’
나는 미술관을 나선다. 아니 카페를 빠져나온다. 저 멀리 커다란 나무 사이로 그 무엇이 사라지는 게 보인다. 나도 모르게 오른손이 올라간다.
‘부디 다시 만날 때까지 잘 계세요. 사랑하는 내 엄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년 뒤쯤에 쓴 글이다.

글_프리랜서 박성기

박성기는 1963년 서울 신당동에서 태어나 1995년에 뉴질랜드로 이민을 왔다. 2013년 재외동포문학상 수필 부문 대상을 탔다. 지금은 뉴질랜드스콜라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창작을 하고 있다. <뉴질랜드를 만든 사람들>, <젊은 33인 나의 일, 나의 꿈>을 펴냈다. 한솔문화원 원장 일도 맡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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