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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한번 떠나 보세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나이 든 소녀’의 1박 2일 여행기] 웰링턴 행 기차는 7시 45분에 떠나네

12시간 달리는 풍경 감상 열차…창밖에는 영화의 한 컷 두 컷이 스쳐 가

지난주에 웰링턴에 다녀왔다. 아주 멀리, 아주 오래 걸리는 기차를 타고. 전부터 한 번은 해보고 싶었던 북섬 종단 열차 여행, 노선 익스플로어(Northern Explorer). 한국으로 치면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인 셈이다. 무려 11시간 30분이 걸려야 종착역에 도착한다. 그야말로 풍경 감상 열차이다. 빨리 달리면 볼 수 없는 풍경을 커다란 창 너머 영화처럼 보여주는 긴 여행을 시작한다. 한 컷, 두 컷 그렇게 말이다.

매주 월, 목, 토 출발…파넬 Strand Station에서

열차는 매주 월, 목, 토요일 3회 운행을 한다. 아침 7시 45분 파넬 Strand Station에서 출발한다. 객차가 3칸, 식당칸 1칸, 짐을 싣는 짐칸 이렇다. 밖에서 바로 경치를 볼 수 있는 아웃도어 뷰잉 캐리지(Outdoor Viewing Carriages)는 아쉽게도 안전상의 이유로 이용할 수 없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경험해 보고 싶다. 거기서는 좀 더 나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 텐데….

워낙 창문도 크고 높은 데다가 내가 앉은 자리 중간에 있는 창과 창 사이의 벽도 없어서 시야는 더없이 시원했지만 사진을 찍을 때는 그 두꺼운 유리가 갑갑하게 다가왔다.

온종일 걸리는 기차에서 무얼 하면 좋을까. 내 나름대로 이것저것 챙겼다. 숙소를 정하고 다음 날 웰링턴 일정을 잡았다. 저녁에 다시 오클랜드로 돌아오는 항공권을 샀다. 그러면서 나 혼자의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 도서관에서 책도 빌리고, 수도쿠 책도 챙겼다. 아들한테 헤드폰도 빌리고(이어폰은 귀가 아파), 남편이 배드민턴 시합 때 동영상을 찍던 조그만 카메라도 충전했다.

여행 날 아침, 빗방울이 조금씩 내렸다. 아직은 어둑한 7시에 역에 도착해 온라인으로 산 예매 확인 사진을 보여줬다. 좌석표가 적혀 있는 표와 음식 교환권(음식과 음료도 예매 가능, 물론 현장에서도 구매 가능)을 받아 기차에 올랐다. 벌써 와서 앉아 있는 손님들이 제법 많다. 약 80%는 다 채워진 듯하다.

기차는 예쁘게 달린다, 칙칙폭폭~~

바로 뒤 칸이 식당칸. 널찍한 의자 아래쪽에는 전기 콘센트가 두 개가 마련되어 있다. 카페는 이미 영업 중. 출발하기도 전에 커피를 사오는 손님들 때문에 기차 안에 커피 향이 확 퍼진다. 나 혼자 앉아 가게 되어서 훨씬 편하고 넉넉했다. 자리에 돋보기, 선글라스, 책, 카메라, 헤드폰, 핸드폰 등을 늘어놓는다.

기차가 출발했다. 미션 베이 쪽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바닷가를 끼고 돌아가는데 벌써 예쁘다. 기차는 천천히 달린다. 정해진 길로 정해진 곳으로.

건널목 차단기 앞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든다. 그들도 기차에 탄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왜 우린 서로 손을 흔들까?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스치는 인연이라서, 어쩌면 부러움과 안타까움을 서로 잘 알아서 그러는지도 모른다. 나도 기차가 지나가는 건널목에 서서 어디론가 떠나는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너무 부러워해 봤으니 말이다. 그 마음을 아는 내가 이번에는 기차에서 다른 마음으로 손을 흔든다.

‘다음에는 꼭 한 번 떠나 보세요. 그러길 바라요.’

미리 주문한 샌드위치와 커피를 받아 의자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좌석 앞에 잡아당겨서 내리는 간이 테이블과는 견줄 수 없다. 테이블에 음식을 놓고 앉으니 전망이 좋은 카페에 와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좋다. 각종 샌드위치와 머핀, 커피와 음료수. 와인 그리고 따뜻한 도시락 스타일의 음식도 있다. 가격도 적당해 꼭 경험해봐야 하는 서비스다.

우리 열차 칸에는 몹시 시끄러운 아시안 손님들이 한팀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 옆자리에 앉은 커플은 식당칸에 오래 있다 오곤 했다. 그래도 될만큼 쾌적한 공간이다.

기차는 일곱 시간, 여덟 시간을 달려 남쪽으로 내려가지만 아쉽게도 단풍이 보이지 않는다.

오클랜드에 바다가 없어 여기 왔단 말인가

지난해 4월 남섬에 갔을 때 단풍이 너무 예뻤던 추억이 있어 5월 말에 가는 이번 여행에서 더 깊은 가을을 보게 될 거라고 기대했다. 울긋불긋한 화려한 단풍은 끝내 기차 창문으로는 보지 못했다. 대신 짐승의 털 같은 회색에 가까운 갈색의 긴 풀들, 억새, 드문드문 보이는 좁지만 출렁이는 시내들, 얼마쯤은 비슷하고 조금씩은 다른 풍경을 보면서 그동안 뭔가를 열심히 보느라 피곤한 눈을 쉰다.

등이 배길 때쯤 되니 날은 어두워지고 종착역도 가까워져 온다. 지도에서처럼 웰링턴은 땅끝이고, 그 끝에는 바다가 있다. 기차는 그 바다를 먼저 보여주고 역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동행해준 지인의 안내로 웰링턴 하버가 보이는 워터 프런트 지역을 걸었다. 오클랜드에 바다가 없어서 여기에 왔더란 말인가.

이보다도 훨씬 멀리 있는 바다에 가보는 게 늘 꿈이었던지라 나는 웰링턴 바다가 금방 좋아졌다.

다음 날 아침 숙소에서 가까운 M café에 들렀다. 스콘과 커피로 아침을 먹으러 들어갔다.

“와~ 줄이 너무 길다.”

길거리에는 나처럼 여행 가방을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보였다. 어젯밤에 조용하고 한가하던 도시가 아침에는 몹시 바빴다. 복잡하고 무척 활기가 느껴지는 큰 도시의 면모를 보여준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성공회 성당 올드 세인트 폴(Old St. Paul) 건물은 공사 중이라 들어가 보지 못했다. 좀 서운했지만 비하이브(Beehive)라고 불리는 국회의사당 건물로 대신했다. 뉴질랜드의 의회 민주주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떻게 법안이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얼마나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홍보 영상물을 보고 의사당을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뿌듯한 마음이 든다.

보타닉 가든에서 모네의 ‘수련’을 떠올려

조금 걸어서 램톤 키(Lambton Quay)로 가면 케이블카를 타는 입구가 나온다. 공중에 매달려서 움직이는 게 아니고 줄을 따라 움직이는 트램이다. 언덕 위로 올라가서 유명해진 모양이다.

꽤 높은 언덕에서 내렸다. 바로 거기서부터 보타닉 가든(Botanic Garden)이 시작된다. 작은 동산에 꾸며져 있어서 그런지 위에서 내려다보는 멋이 있는 예쁜 공원이다. 장미 정원을 찾아 한참을 걸어서 갔다. 많은 꽃이 쌀쌀한 날씨에도 꽃을 피워 주었다. 좀 따뜻한 계절에 왔다면 훨씬 풍성하고 화려한 장미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안쪽 온실 건물에서는 다양한 베고니아들과 작은 연못에 핀 수련이 나그네를 맞아 주었다. 그게 또 눈길을 끌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화가 모네의 수련을 그려보며.

한참을 걸어 박물관 테 파파 통가레와에 들어갔다. 뉴질랜드의 역사를 화산 폭발부터 마오리와 유럽 사람들의 정착 과정과 목초지 개간 작업, 세계대전 참전 상황, 그리고 자연을 보호 관리하는 친환경적인 국가 이미지까지 보여주는 정말 잘 꾸며진 여러 전시장을 구경했다. 어젯밤에 가보고 반한 웰링턴 하버가 보이는 워터 프런트로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저녁 8시 비행기로 오클랜드에 돌아오는 일정이라 마음이 좀 급해졌다. 워터 프런트는 박물관 바로 옆에서부터 시작한다. 모래가 있는 그런 바닷가가 아니라 조정이나 카약 같은 배를 내리고 타는 곳이다. 데크처럼 만들어져 있고 방파제가 있는 처음부터 깊은 바다다. 그런데 얼마나 바람이 부는지 목에 두른 스카프로 입을 가리고 잔뜩 움츠리고 걷는데 어깨가 아플 지경이다. 바람 부는 날씨를 진짜 좋아하는데 여기 바람은 못 잊을 것 같다.

비록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조금은 무겁고 조금은 지친 일상에서 물리적으로 멀어지는 것, 그저 나에게 집중하는 것, 나를 토닥이는 그 시간이 충분히 근사했다.

“난 내가 후진 걸 알지만 또 그래서 짠해”

어느 드라마 대사가 생각났다.

“난 내가 후진 걸 알지만 또 그래서 짠해.”

내가 되고 싶었던 멋진 사람은 되지 못했다. 살고 싶은 모양으로 살지 못했다. 천성이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라 포기도 빨랐다. 그런 모습으로 사는 내가 후지지만, 또 그만큼 안쓰럽고 대견하기도 하다. 상처럼 주어진 이 짧은 여행으로도 충분히 길고 근사했다. 내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젠.

오클랜드로 돌아와 집에 도착하는 거로 일정은 끝이 났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단어를 고르고, 사진을 지우거나 남기고 추억하는 동안은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궁소영_늘 여행을 꿈꾸는 생활인. 오클랜드 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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