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NZ칼럼 기획칼럼 그 남자의 6.25(3회, 마지막) “그대의 영전에 꽃보다 화려한 무공훈장을 바칩니다”

그 남자의 6.25(3회, 마지막) “그대의 영전에 꽃보다 화려한 무공훈장을 바칩니다”

어느 날부턴가 밖으로 나온 삼촌의 모습은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허울이란 육신만 있을 뿐 이미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같이 변해 있었다. 누나들 집을 차례로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의안(공갈 눈)을 빼서 아무 데나 탕탕 두드리며 “내 눈 내놓으라”고 울부짖었다.

사람 목숨을 파리 잡듯 했던 전쟁터에서 그는 눈만 잃은 게 아니었다. 인간이란 감성을 송두리째 잃은 것 같았다. 스스로 사람이기를 포기한 듯 갈기를 세운 한 마리 짐승처럼 나날이 거칠어져만 갔다.

어느 날 아버지와 오빠가 없는 빈틈을 용케 알고 어진의 집에 와서 행패를 부렸다. 불이 벌건 화롯가에 의안을 두드리며 포악을 떨었다. 어머니는 어린 자식을 언 땅에 묻고 아직도 그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계셨다. 동생의 횡포에 어찌할 줄을 모르고 울음을 터뜨렸다. 더 참고 볼 수가 없던 어진은 삼촌을 잡아 끌어냈다. 무슨 힘으로 그랬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그의 등을 주먹으로 마구 두드리며 대문 밖으로 밀쳐냈다

“다신 우리 집에 오지 마. 이젠 삼촌도 아니야.”

어진은 소리를 지르며 발악을 했다. 대문 빗장을 굳게 걸어 잠그며 털썩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청춘이 꽃피는 이십 대 청년이다. 생각하면 얼마나 불쌍한가.’ 그렇게 동정하던 가족들도 서서히 지쳐갔다.

아들의 패악질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할머니가 마침내 몸져누웠다. 추악하게 추락해가는 아들 모습을 보는 게 죽음보다 더 힘드셨을까. 할머니는 며칠을 앓다가 눈을 감았다.

얼마 안 있어 5.16이란 태풍이 지나갔다.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상이군인들의 모습이 거리에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구걸하는 전쟁고아들도 드물어졌다.

막내둥이로 사랑만 받던 어머니에게 얼마간은 응석도 있었던 걸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삼촌의 광기가 조금씩 나아졌다. 인간다움이란 쥐꼬리만큼도 없는 줄 알았는데 가끔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걸 보았다.

- Advertisement -

“어머니 죄송합니다. 용서하세요.”

술이 들어가면 어머니를 부르며 처절하게 울었다. 어느 날 새 정부에서 막내 삼촌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제발 마음잡고 살아주기를 모두가 빌었다. 삼촌은 곧 어느 지방 도시로 간다며 떠났다. 집안의 골칫덩어리를 보내고 누구도 그다음 안부가 궁금한 사람이 없었다. 어진은 삼촌을 거의 잊고 살았다. 어머니는 아기를 또 낳았다. 남동생이었다. 이제 딸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난 것 같아 다행이었다.


너나없이 살기에 바빴다. 세월이 가는 것도 못 느끼고 사는 것 같았다.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는 나른한 봄날이었다. 목련이 지나 했더니 어느새 길가에 벚꽃이 발갛게 입술을 내밀고 있었다. 빨랫줄에 앉은 까치가 안쪽을 보고 깍깍 소리를 질렀다.

“반가운 손님이 오려나 보다.”

혼잣소리하면서 어머니는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밖에서 갑자기 강아지가 캥캥 다급하게 짖어댔다.

“누님! 저 왔습니다.”

너무도 의젓하게 들어오는 사람은 삼촌이었다. 잠시 어색함이 흘렀다.

“어서 이리 올라와.”

어머니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는 것 같았다. 모두 아무 말 없이 머쓱하니 바라만 보았다. 그는 젖 먹는 어린 조카를 한참이나 무심히 내려다보더니 불쑥 말을 꺼냈다.

“유진이가 죽었다면서요.”

말끝이 잦아들었다. 대답 없는 침묵이 흘러갔다.

“삼촌한테 뭐 좀 갖다 줘라.”

어머니가 얼른 말꼬리를 돌렸다.

“누님. 나 장가갈래요.”

불쑥 한마디를 해놓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틀림없는 어렸을 때 개구쟁이 삼촌의 모습이었다.

“사귀는 여자라도 있는 게야?”

오가는 이야기가 재미있어 얼른 삼촌의 표정을 살폈다. 왠지 ‘있어요’ 할 것만 같았다.

“그냥요.”

대답이 어정쩡했다. 어머니는 삼촌을 돌봐줄 사람도 없으니 빨리 결혼을 시켜야 한다고 이모들과 합의를 했다. 급하게 색시를 물색해 맞선도 보면서 서둘렀다. 그런데 막상 본인은 늑장을 부렸다. 선을 볼 때마다 가차 없이 퇴짜를 놓았다. ‘혹시 사귀는 여자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에 이르렀다.

그건 사실이었다. 떳떳하게 드러내지 못할 이유가 있는 여자였다. 한 번 결혼에 실패한 연상의 여인이었다. 삼촌 성격에 예전 같았으면 밀어붙일 만도 한데 참으로 순진했다. 총각이 어떻게 과부를 만나 살겠느냐는 누님들 설득에 순순히 따랐다.

조건 때문에 사랑을 버린다면 그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고 어진은 생각했다.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삼촌은 양심이 없는 남자’라고 대들고 싶었다. 그는 얼마 뒤 맞선을 본 여자와 결혼했다. 보통 인물의 평범한 아가씨였다. 신랑이 의안으로 사는 장애인이라는 걸 알고 시집을 왔다. 마음씨가 괜찮은 여자 같아 다들 만족했다.

한데 그들 부부의 운명이 얄궂었다. 신혼 첫날밤에 신랑은 신방에서 도망을 나왔다.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도망친 신랑을 찾는 동안 신붓집에서는 사기 결혼이었다며 고소를 했다. 신랑이 도망가 있는 집이 애인의 집이었다는 걸 신부 쪽에서 먼저 알아냈다. 삼촌은 사실을 인정하고 순순히 수갑을 찼다. 법대로 하라며 당당했다. 가족들은 어처구니없는 일에 망연자실했다.

의안을 한 신랑을 조건 없이 받아들인 이유가 밝혀졌다. 신부는 심한 피부병을 앓고 있어 온몸이 진물투성이였다. 삼촌은 차라리 잘 되었다며 체념을 한 듯했다. 누님들이 지어서 감옥에 디민 솜바지 저고리를 두둑하게 입고 느긋하게 옥살이를 했다.


전화위복의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몰래 면회 오는 여인을 조건 없이 받아주었으니 더 바랄 게 없었다. 본의 아니게 죄수가 되어 옥고를 치렀지만 그들은 그 순간이 행복했다. 사랑을 위한 혹독한 고초였다. 그러기에 더욱 단단하게 결속이 되었던 두 사람이었다

‘자기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자책의 고통으로 삼촌은 날마다 술로 살았다. 그는 일찍이 결핵을 앓았다. 그 고충을 아무도 모르게 어머니 혼자서 떠안고 살았다. 좋다는 약도 많이 해 주었다. 뱀탕도 먹여주었다. 형이 동생을 편애한다며 투정할 만큼 어머니의 보살핌이 특별한 이유였다. 삼촌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을 퍼마신 건 죽음을 그런 식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이 보세요. 정신 차리세요.”

길거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삼촌을 술집에서 일하던 여자가 발견했다. 인사불성인 삼촌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지극정성으로 간호한 끝에 살려냈다. 군대에 갔다가 행방불명자가 된 남편을 기다리며 사는 가엾은 여자였다. 삼촌은 인민군으로 끌려갔던 때를 떠올리며 그녀의 남편도 아마 그리됐으리라 생각했다. 서로의 불쌍한 처지를 털어놓으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몸도 좋지 않은데 술 마시면 안 돼요.”

가족들도 삼촌을 두려워해 피하기만 했다. 정을 붙이고 기댈 그 누구도 없다. 여자의 따뜻한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음속에 박혔다. 그때부터 사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리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취직이 되어 지방으로 갈 때 삼촌은 그에게 청혼했다. 같이 가서 마음 편히 살고 싶었다.

“아니에요. 난 한 번 결혼했던 사람이에요. 총각이 나를 어떻게.”

“나중에 누님들이 허락해 주면 그 때 봐요.”

두 사람은 그렇게 가까운 사이로 여태껏 지내온 모양이었다. 그런 사이를 어떻게 갈라놓는단 말인가. 삼촌이 출소하자마자 가족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치렀다. 이제 그들에게는 행복만이 남아있어 보였다.

막내 이모가 남동생 부부를 향해 깨가 쏟아지게 잘 산다고 질투처럼 투덜댔다. 어머니와 큰이모까지 세 시누이가 모여 앉으면 그 집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남자를 다루는 솜씨가 대단하다느니, 마누라가 이쁘다고 궁둥이 두드리는 걸 봤다며 박장대소를 했다.

사춘기 소녀였던 어진은 남녀 간에 정분 나는 이야기가 아주 재미있었다. 방에서 공부하는 척해도 그 소리는 왜 그리 귀에 잘 들어오는지 몰랐다. 이모들보다 더 신이 나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웃곤 했다.

우리는 가까이 사는 큰삼촌과는 자주 만났지만 작은 삼촌은 거의 잊고 지냈다. 그동안 아들도 낳고 딸도 낳았다고 들었다. 이제 두 남매의 아빠가 되어 행복하게 잘 살아간다고 했다. ‘할머니가 살아계셔서 저런 행복한 모습을 보셔야 하는데….’ 어진은 그런 아쉬운 생각을 가끔 했다.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여든여섯. 대한민국 무공훈장이 가슴에 빛날 텐데….
그가 죽어서 어디에 묻혔는지 알 길이 없다.
살아생전에 그리도 외면을 당하더니 죽어서도 찾아줄 사람이 없다.
넋인들 얼마나 쓸쓸하고 적적할까. 너무도 불쌍한 영혼이다.

어느 날 전혀 예상치 않은 숙모의 부음이 날아들었다. 청천벽력이었다. 아직도 살 날이 청청한 젊은 여인이 갑자기 죽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왜 그리도 그는 박복한 삶을 타고 났을까. 너무 재미있게 사니 질투의 화신이 심술을 부렸을까.

삼촌의 행복은 거기서 끝이 났다. 숙모가 세 번째 아이를 낳다가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세상에 어찌 그런 날벼락이 있을까.

삼촌 가슴에 박힌 광기가 다시 도졌다. 술이 아니면 살아낼 수 없는 슬픔을 얼마간 버텨냈다. 그나마 아이들을 위한 버팀이었다. 병약한 그가 아내 없이 오래 버틴다는 건 무리였다. 오래가지 않아 그도 아내의 뒤를 따라가고 말았다. 그는 전생에 무슨 업보를 지고 태어났기에 짧은 인생을 그리도 험하게 살았을까. 참으로 안타깝기 한이 없다.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여든여섯. 대한민국 무공훈장이 가슴에 빛날 텐데…. 그가 죽어서 어디에 묻혔는지 알 길이 없다. 살아생전에 그리도 외면을 당하더니 죽어서도 찾아줄 사람이 없다. 넋인들 얼마나 쓸쓸하고 적적할까. 너무도 불쌍한 영혼이다.

고아로 남겨진 두 애는 어느 하늘 밑에서 살고 있을까. 제 아버지의 무공을 알고나 있을까. 조국에 몸을 바친 용감하고 훌륭한 군인이 너희들 아버지였다고 소리쳐 알리고 싶다.

어렸을 때 무엇이든 같이 나눠 먹고 살던 피붙이, 삼촌 조카 사이가 아니었던가. 한때는 등을 떠밀어 내쫓으며 미워했던 조카였다. 이제 다 늙은 조카딸이 그 시절의 미안함을 세상에 고한다.

“우리에게는 죄가 없어요. 시대를 잘못 만난 전쟁 탓이었습니다.”

삼촌에게 진 마음의 빚을 이제라도 조금 갚는 것 같아 홀가분하다. 임이여! 늦었지만 반겨주소서. 그대의 영전에 꽃보다 화려한 조국의 무공훈장을 마음으로 바칩니다.

<끝>

오소영은 1937년 서울 마포에서 태어나 1998년에 뉴질랜드로 이민을 왔다. 1997년 회갑 나이에 <한맥문학> 수필 부문에 당선되어 늦깎이 수필가로 등단했다. 현재 여든 넘은 나이에도 교민 신문과 잡지에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수필집 <13월의 바람꽃>, <언니가 오셨네>를 펴냈다. 무지개 시니어 중창단 총무 일도 맡아 하고 있다.


저작권자 © ‘뉴질랜드 정통교민신문’ 뉴질랜드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Advertisement -

타임즈 인기글

‘투표가 최고의 심판’…여권 들고 투표장으로

말 많고 탈 많은 오클랜드한인회, 지금 이대로는 안 돼 타임즈의 눈 제15대 오클랜드한인회 선거가...

“김우식 선관위, 한인회 돈이 그렇게 우스웠나”

◉ 타임즈의 눈 ‘15대 선거 비용 정산서 내부 감사 보고서’를 읽고 14대보다 $15067 더...

“이제까지 뉴질랜드에 이런 선거관리위원장은 없었다”

◉ 타임즈의 눈 선관위 운영 미숙으로 오클랜드한인회장•감사 선거 연기돼 제15대 오클랜드한인회장과 감사 선거가 6월...

리디아 고, 2019년 공로 훈장 받았다

리디아 고 특별 인터뷰 5월 15일 총독 관저에서 럭비 선수 대니얼 카터 등과 함께 뉴질랜드 한인 1.5세대 리디아 고(고보경)가 2019년 새해 공로 훈장을 받았다....

“하노이 정상회담은 2막…여러 막 거쳐야 대서사시에”

북한‘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에서‘완전히’에는 거부감 있어 지난 3월 17일(일) 뉴질랜드타임즈 도언태 발행인은 문재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를 맡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