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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멋지게 나이 먹는 기술

젊은 세대 한인 행사에 안 나타나는 이유 생각해 볼 필요 있어
이제 차세대에 ‘미래’ 곳간 열쇠 넘겨줄 때…상담 상대가 돼야


장자(莊子)는 “먹는 나이는 거절할 수 없고, 흐르는 시간은 멈출 수 없다”고 했다.

살면서 내가 나이를 먹고 있구나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큰 충격으로 왔던 노화의 첫 신호는 노안(老眼)이었다.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아빠, 안경 벗고 책 보는 모습이 할아버지랑 똑같네!” 나도 모르게 안경을 벗고 멀찌감치 책을 떨어뜨려 보고 있었다.

두 번째로 온 노화는 기억력 감퇴다. “그거 있잖아, 그거.” 사물을 대명사로 칭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래 나도 이제 내일모레면 반백 살이 되는구나. 늙어가는 걸 인정하자고 마음먹었다.

한국에서는 나이 오십은 다니던 직장을 언제 그만둬야 할지 눈치 보는 나이이다. 그런데 뉴질랜드에 왔는데, 내가 갑자기 젊어졌다. 공기가 좋고 자연이 좋아 몸이 건강해진 것도 한몫했겠지만, 한국에서는 중년으로 불리는 나이가 뉴질랜드에 오니 청년의 나이가 됐다.

여기 어르신들께 “제 나이가 조금 있으면 오십이 됩니다”라고 말씀드리면, 한결같이 “젊네, 한 참 일할 나이지”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비록 노안이 오고 기억력에 자신 없어지지만,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갔다고 감사해하고 있다. 또한, 여기 계신 어르신들이 정정하게 한인회 관련하여 활동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오클랜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서 마냥 내가 젊어졌다고, 어르신들이 한인 사회 일을 많이 하신다고 좋아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한인회 선거를 비롯해 여러 행사에 다녀보면 유난히 한인 1.5세대나 젊은 세대는 없고 어르신만 눈에 띄었다. 물론 어르신들이 한인회 행사에 관심이 높아 많이 참석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왜 젊은 세대가 한인 사회 행사에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차세대가 우리 한인 사회의 주역이 돼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정작 선배 세대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말로만 이제는 차세대가 나설 때라고 말하고 있다.

얼마 전 끝난 오클랜드한인회 선거만 봐도 그렇다. 말이 많았던 선관위원 선발 기준이 60세 이상이었다. 물론 나이가 많다고 일을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젊은 세대가 참여할 기회 자체를 나이로 막은 것이 문제이다. 또한, 어떤 언쟁이 있을 때면 나이로 밀어붙이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어떤 싸움이든 마지막에 꺼내는 가장 비열한 무기가 ‘나이’이다.

한 수필가는 밉게 늙는 사람들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했다. △평소 잘난 체, 있는 체, 아는 체를 하면서 거드름 부리기를 잘한다 △마음이 옹졸하여 너그럽지 못하고 쉽게 화를 낸다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한다 △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물론 뉴질랜드 한인 어르신들이 모두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한인 차세대는 법조계, 의료계, 정치계 등을 비롯해 뉴질랜드의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지식과 열정이 진정으로 필요한 뉴질랜드 한인 사회에서는 그들이 무대에 올라 그들의 기량을 펼칠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이제는 차세대에 ‘미래’라는 곳간 열쇠를 넘겨줄 때가 되었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호기롭게 젊은 세대에게 자리를 내주면 좋겠다. 우리의 뒤를 이어받는 차세대가 나아갈 길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롤 모델로 살아가는 기술이 필요하다. 차세대의 경쟁 상대가 아닌 상담 상대로 살아가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대신 젊은 세대들은 우리 어르신들을 뒷방 늙은이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 젊은이에게 부족한 삶의 지혜와 경험을 그들에게 배워야 한다. 젊은 세대도 멋지게 나이 먹는 기술을 터득하는데 시간을 아낌없이 써야 한다.

임채원_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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