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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 시그널(Signal)

“Dad! 저 테드 왔어요.”

“Oh! 아들, 어서 들어와.”

누추한 원룸 문을 열고 60대 아들이 들어섰다. 뉴질랜드의 7월, 겨울 날씨는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오클랜드의 북쪽, 버크데일 로드 모서리에 자리한 정부 주택. 노인의 머리처럼 퇴색한 입간판, ‘Haumarau Housing’.

80대 중반의 앤디가 몸을 일으켰다. 눅눅한 곰팡내가 훅 끼쳐 나왔다. 테디가 한 손에서 지팡이를 내려놓고, 작은 배낭을 벗었다. 배낭에서 큼지막한 은박지 봉투를 꺼냈다. 뉴월드에서 산 티겔 통닭이었다. 아직도 따뜻한 기운과 양념 통닭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Dad! 좋아하는 통닭 드셔요.”

“Oh! 아들, 함께 들자꾸나.”

테디가 통닭을 포크로 발라서 앤디 접시에 올려놓았다. 부실한 치아 때문에 앤디가 오물오물하다 삼켰다. 아버지와 아들의 점심시간이 그림자처럼 흘러갔다. 매주 일요일, 성당에서 함께하는 성찬례 같았다. 앤디는 아들 목소리를 가슴에 담았다. 아들 거동도 눈으로 챙겼다. 테디는 아버지 음성에 몸을 낮췄다. 아버지 안색도 살폈다. 부자간 상봉은 잔디 깎는 냄새처럼 풋풋했다. 파란불 시그널을 동시에 느꼈다.

미사 시간만큼 시간이 지났을까. 테디가 갈 채비를 하고 일어섰다. 테디가 발을 절룩거리며 앞장섰다. 앤디가 그 뒤를 따라나섰다. 아버지는 연로한 사제의 모습이었다. 아들은 평신도로 보였다. 50여 m 거리에 있는 버스 정거장까지 걸었다. 여태껏 붙어있던 단풍잎이 바람에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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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가 테디 목에서 흘러내린 목도리를 주웠다. 테디 목에 둘둘 감아주었다. 테디가 어린아이처럼 싱긋 웃었다. 앤디가 테디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다시 발을 옮겼다. 길 건너편에 버스 정거장이 보였다. 테디가 길을 건너며 앤디 더러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아들이 탈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테디가 오르자 앤디가 손을 흔들었다. 멀어져 가는 버스 뒷자락을 망연히 쳐다봤다.

버스가 왼쪽 모퉁이를 꺾어 돌아갔다. 꽁무니가 사라지자 좀 설핏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앤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가만히 서 있다가 버스가 지나가면 그때서야 손을 흔드는 중국 노파가 안쓰러웠다. 그냥 가만히 서 있으면 버스가 서 줄 거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벌써 두 번이나 버스를 보내고 세 번째 맞이하는 노파한테 다가갔다. 탈 버스가 오면 손을 흔들라고 했다. 노파가 앤디를 멀뚱하게 쳐다보았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앤디가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끄적거렸다. 노파가 눈을 찡그리며 쪽지를 응시했다. 그때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안 되겠다 싶어 앤디가 손을 흔들었다. 노파가 안도의 숨을 쉬며 겨우 버스를 탔다. 앤디가 흐뭇한 얼굴로 떠나는 버스를 지켜봤다. 앤디도 집으로 돌아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주춤했다. 노파에게 준 쪽지가 휴지처럼 땅에 떨어져 있었다. 물끄러미 쪽지를 바라다봤다.

Signal driver to stop.

신호는 무슨? 운전자는 누군데? 정지는 왜 해?

지나간 추억이 피어올랐다. 인생, 굽이마다 어떤 시그널이 반짝거렸다. 아내가 3년 전 세상을 뜰 때도 그랬다. 손도 못 쓰고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회한이 가슴을 짓눌렀다.

어느 날, 아내가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속이 안 좋다고 했다. 음식을 먹다가 중간에 먼저 숟갈을 놓았다. 정말 속이 안 좋은 줄로만 알았다. 생각해준다고 앤디는 소화제처럼 콜라를 따라 주었다. 미리 보여준 시그널을 놓쳤다.

몸 상태가 악화하고서야 병원을 찾았다. 여러 진료와 검사 끝에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폐암 말기였다. 아내는 석 달을 못 채우고 눈을 감았다. 장례식에 찾아온 손님들이 떠난 후, 앤디는 비로소 광야에 홀로 서 있음을 깨달았다. 입술을 깨물었다. 하루를 살아도 그날의 시그널을 놓치지 않고 살리라 다짐했다.

앤디가 타임머신을 타고 반백 년 앞으로 훌쩍 날아갔다. 앤디의 고향 피지 난디 부근 시골이 바싹 말라비틀어진 강아지풀처럼 흔들거렸다.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앤디는 아내와 테디를 부모님 집에 두고 뉴질랜드로 떠나왔다. 허름한 왜건을 은신처로 삼았다. 외딴 섬에 갇혀 사는 느낌이었다.

파트타임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학교, 피트니스 헬스클럽, 집 청소에 쉴 새 없이 땀을 흘렸다. 3년 만에 아내와 아들을 뉴질랜드에 데려왔다. 학교 청소권을 사서 아내와 함께 일에 푹 빠졌다. 몇 년 후, 조그마한 보금자리도 구했다.

테디는 초중고를 잘 마치고 오클랜드대학에 입학했다. 2학년 첫 학기 시험을 마치고 친구들과 트래킹을 떠났다. 뉴질랜드 남섬 밀포드 사운드 트랙. 젊은 꿈을 펼치고 인생의 지도를 그릴 거라던 열망에 부모는 물심양면으로 응원을 보냈다.

젊은 날, 여행과 등산이야말로 인생에 소중한 자산이라고 격려해 주었다. 허용된 환희의 신비는 딱 거기까지였다. 아들은 트래킹 도중에 실족해 계곡아래로 추락했다. 구조 헬기까지 떠서 간신히 응급 병원으로 옮겼다.

몇 달에 걸쳐 수술과 치료를 받았다. 뇌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인 공부가 불가능했다. 척추 손상으로 걸음걸이도 뒤뚱거렸다. 지난한 오랜 세월이 가뭇없이 흘러갔다. 앤디와 아내 그리고 테디에게는 먹구름이 휘몰아치는 세상이었다.

테디는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한 칸짜리 정부 보조 주택이 배정되었다. 어린 아이 지능 상태에 머물러 사회생활이 어려웠다. 재활 훈련, 파트타임 목공일, 장애 수당 등이 제공되었다. 성인 나이가 되어도 혼자 독립이 어렵게 되자 국가에서 주거 시설 마련, 간병 지원, 지속적인 의료 서비스로 도와주었다. 지금 거주하고 있는 노스코트 재활 요양 시설에서 파트타임 일을 하며 지내게 되었다.

테디가 어릴 때부터 온 식구는 성공회 성당에 다녔다. 테디가 사고를 당하고 어려운 세월을 거치며 성당 가는 일이 뜸해졌다. 아내가 세상을 뜨면서는 1년에 두세 번 정도 가는 정도였다. 새해 초, 부활절 그리고 크리스마스 시기였다. 그 나머지 주일은 테디가 앤디를 찾아 들러보는 시간으로 대체되었다. 크리스천이 주일에 성경책을 들고 교회에 가듯, 테디는 주일날 통닭을 사 들고 앤디 집으로 갔다. 서로 살가운 말은 없어도 나눔의 깊이는 진했다.

세상에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순수한 Ritual이 잠재되어 있었다. 낮에는 하늘과 땅이, 밤에는 달과 별들이 무언의 신호를 보내주었다. 남녀노소 누구든, 잘살든 못살든, 건강하든 불편하든, 잘 배웠든 못 배웠든 똑같이 대해 주었다. 내가 필요할 때는 손들어 신호를 보내야 했다. 저쪽에서 신호를 보내올 땐 놓치지 말고 바로 반응을 보여야 했다. 버스와 노파의 시그널이 다시 앤디의 머리에 스쳐 갔다.

Signal driver to stop! *

<끝>

백동흠<수필가>
2017년 제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대상 수상
Birkenhead Transport 근무
글 카페: 뉴질랜드 에세이문학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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