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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당당하게’ 패거리 문화를 만들자

1.5세대 정체성 혼란이 문제…1세대 지나친 정체성 고집이 문제
뉴질랜드에서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한인의 정체성으로 보여주자


나는 지난번 이 지면을 통해 뉴질랜드 선배 세대에게 이제 한인 젊은 세대가 활약할 수 있도록 자리를 물려 달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 최근에 한인 1.5세대가 주축이 되어 후배들을 위한 ‘진로 정보의 날’을 비롯하여 젊은 한인 변호사와 회계사 등이 한인을 위한 법률 세미나 등의 행사가 열렸다. 젊은 한인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어 참 고무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한인 1.5세대는 그들이 살아온 대한민국과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뉴질랜드에 적응하여 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도대체 나는 뉴질랜드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그 정체성(아이덴티티, identity)에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경계인’으로서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다.  

‘경계인’이라는 용어는 쿠르트 레빈이라는 심리학 박사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그는 “경계인은 문화를 달리하는 복수의 사회에 속해 이질적인 문화와 집단생활의 영향을 동시에 받지만, 그 어느 쪽에도 완전하게 소속되지 못하는 존재”라고 했다.

쉽게 말해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해서 어정쩡한 상태인 사람을 말한다. 다중 문화를 소유한다는 것은 언어나 교육 등을 경험할 수 있는 특권일 수 있으나, 심한 내적 갈등, 정서적 불안정, 열등감 등에 시달리는 일도 적지 않다.

성장기에 이민 온 한인 1.5세대는 언어와 문화의 변화에서 오는 충격과 정체성의 혼란을 누구보다 심하게 겪는다고 한다. 생계에 바쁜 부모가 아이들과 대화하기도 쉽지 않은 게 이민 사회의 현실이다. 유명 학교, 좋은 직업 등 외적인 성공만을 추구하는 한국의 성공 잣대가 고스란히 이민 사회에 이식되면서, 많은 젊은 한인이 정신적 중압감을 겪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한인 1.5세대가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다면, 뉴질랜드 한인 1세대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나치게 고집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7월 20일(토) 제15대 오클랜드한인회 출범식이 있었다. 많은 한인과 다민족 대표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하지만 정작 참석해야 할 단체장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새롭게 출범하는 오클랜드한인회가 자신들의 정체성(노선)과 다르다는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한국인은 범주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편 가르기, 패거리를 이루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말이다. 한국인은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상대방의 고향, 나이, 출신 학교 등을 매우 궁금해하며 물어본다. 이런 정보로 상대방을 자신과 같은 어떤 범주에 귀속시키지 않으면 불편해한다.

이런 한국인 기질에는 장단점이 있다. 어떤 일을 진행하거나 인간관계를 발전시키는 데에서는 더없이 좋은 도구이지만, 상대방에 대한 편견과 ‘편 가르기’를 통해 ‘패거리 문화’로 변질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

세계 어느 곳이나 사람이 모이는 곳에 편(그룹), 패거리가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다. 또한 ‘편’이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기적, 배타적으로 변하는 순간 예외 없이 그 조직은 부패하기 시작한다.

패거리 문화의 가장 큰 해악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진입 장벽을 높이는 폐쇄성과 배타성이다. 나는 무조건 선이고 상대는 무조건 악이다.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지배한다.

한인 사회에서 그 어느 범주(편 또는 패거리)에도 속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당당하게 패거리를 만들자. 자신과 다른 ‘편’이었던 사람을 배척하지 않고, 모든 한인을 품고, 보듬어 패거리의 범위를 무한정으로 넓히면 긍정적인 패거리가 된다.

이것을 뉴질랜드에서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한인의 정체성으로 보여주자. 그렇게 해야 우리 후손들이 한인의 문화적 위상을 유지하고, 그것을 존중하여 뉴질랜드에서 한인으로서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임채원_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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