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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화의 상담 이야기] 상처, 숨기지 말고 드러내라

정인화의 상담 이야기(2)

관계에서 오는 마음의 상처가 곪지 않고
수치감으로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처를 숨기는 게 아니라 드러내야 한다.
드러내지 않으면 상대방은 상처에 대해 상상을 하더라도
그 상처의 깊이는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관계를 중요시한다. 더불어 같이 살아야 생존이 더 쉬웠던 환경에서 나온 습성일지도 모른다. 관계 때문에 웃고 울기도 하며,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거나, 너무 말을 많이 해 따돌림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상처를 받는다.

좋지 않은 관계가 많은 문제의 원인

관계의 종류도 많다. 부부 관계, 가족 관계, 친척 관계, 연인 관계, 친구 관계, 동문 관계, 동료 관계와 같이 수도 없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타고난 천성 때문인지, 아니면 자라온 환경이 좋아서 인지는 몰라도 어떤 이들은 훨씬 쉽게 관계를 유지한다. 물론 그렇지 못한 사람도 부지기수이다.

중독에 관한 상담을 하면서 많은 사람이 관계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을 봐 왔다. 어떤 이들은 나쁜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피하고자 술과 마약을 찾고, 호기심에서 시작한 술과 마약 때문에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도 있다.

또한 술과 마약을 멀리하기 시작하다가도, 가족에게서 받는 의심의 눈초리를 처리하기가 너무 힘들어 회복단계에서 다시 술과 마약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한마디로 좋지 않은 관계가 많은 문제의 원인이다.

하지만 상담을 하면서 부부들의 문제를 들여다보면, 진짜로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싸운 경우도 많다. 웃자고 던진 말을 가지고 싸우자고 덤비는 격이라고 할까.

오래전에 만났던 유럽에서 이민을 와서 열심히 사는 A와 B란 부부가 생각난다. 그들은 사소한 문제로 싸우다가 일주일이 넘게 냉전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에 속이 상한다고 하면서, 누가 잘못한 건지 따지기 시작했다.

“부부 싸움은 정서 단절과 안전감 부재에서…”

정서중심부부치료를 개발한 심리 임상학자 수잔 존슨은 “부부가 싸우는 원인은 정서적 단절과 안전감의 부재에서 온다”고 했다. 그럴 때는 본인이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말을 한다고 했다.

그는 대화 방식이 보통 세 가지의 형태를 보인다 했다. ▷나쁜 사람 찾기 ▷항의하기 ▷담쌓기와 비슷한 냉담과 회피하기이다.

A와 B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A가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먹었냐고 물었을 때, B가 아이들을 대신해서 먹었다고 대답했다. 아무 문제도 없는 자연스러운 장면 같았는데, A는 B한테 왜 끼어들었냐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B는 한심하다는 듯이 A를 쳐다보며, 아무 의도도 없이 그냥 본대로 얘기했는데 뭘 그걸 가지고 화를 내느냐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이들 부부는 나쁜 사람 찾기에서 시작해 회피하는 형태의 싸움을 하면서, 상대방이 틀렸다고 말해 달라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재판관이 되어서 누가 맞고 틀렸다고 선고를 내렸으면 좋으련만, 내 편이 되어달라는 듯한 두 사람의 눈을 보니 가슴이 아파진다. 양쪽에서 잡아끌어 당긴다는 느낌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의자의 팔걸이를 꽉 잡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호기심을 가지고 이것저것을 물어봤다.

‘혼자’라는 느낌 들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화나

시간이 지나면서 A가 속마음을 이야기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물어봤는데 당신이 대답하니까, 순간적으로 아버지의 권위가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외로워졌다고 털어놓는다.

B는 전혀 남편의 권위를 무시할 의도가 없었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냐고 얘기하면서도, 남편에게 얼굴을 돌리면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A는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난다고 했다.

그러다가 상대에게 보복하듯이 거리를 두며 피하기 시작한다고 털어놓았다. 어릴 때부터 가졌던 버려지는 공포에서 자유스러워지고 싶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중얼거렸다. 근육으로 똘똘 뭉친 A가 눈물을 보이자, B는 팔을 펼쳐 A의 손을 잡는다. A는 수줍은 듯이 B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맙다고 한다.

A는 아마도 바쁜 부모의 생활에서 오는 조금은 소홀했던 순간들을 어른들이 자기가 보기 싫어서 관심을 두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 혼자 있을 때마다 버려진다는 공포에서 허우적거렸고, 나이가 들어서 조금이라도 자신을 무시하거나 빼놓을 때마다 그 아픔을 방어하기 위해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부정적인 부부관계의 사이클을 확실히 봤다고 고마워한다. 주먹을 불끈 쥐며 꼭 부정적인 패턴을 깨 버리겠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A는 상대방에게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 감정이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대해서는 무지했는지도 모른다.

결혼 실패 원인, 감정 무뎌지거나 줄어든 탓

심리학자이자 결혼 연구 전문가인 존 고트만과 마찬가지로 존슨도 부부들이 결혼에 실패하는 이유가 큰 문제로 생긴 갈등이 아니라, 감정과 감정적 반응이 무디어지거나 줄어든 탓이라고 한다.

한 사람이 힘들어서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내도 상대방이 그 신호를 못 보거나 반응을 안 보일 때 정서적 단절 속에 일어나는 두려움을 방어하고자, 생각 없이 말을 막 던지나 보다.

고트만은 부부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부정적인 감정이라도 그 감정이 말하는 것을 생각해보고, 누가 맞거나 틀렸다고 우기지 말고, 상대방을 받아들이면서, 좋은 점을 찾아보라고 한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할 때, 관심 없다는 듯이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면서 아무 말도 안 하거나, 등을 칼로 찌르는 듯한 말을 하는 대신에 고개를 돌려 한두 마디라도 던지라고 한다. 그런 행위를 통해 서로에 대한 우호감이 쌓이게 되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문제에 또는 웃자고 한 말에 죽고 살기로 싸우지는 않을 것이다.

수잔은 『나를 꼭 안아줘』란 책을 통해 상대방을 인정하면서 꼭 안아주라고 했다. 엄마나 아빠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무서움에 질려 달려오는 아이를 꼭 안아주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를 위한답시고 큰소리로 무서워 말라고 하면서 아이의 경험을 부인할 때 오는 혼돈을 주지 말라고 한다.

상처는 숨기게 되면 곪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과거의 상처를 숨길 때 쉽게 좌절하고 화를 내며, 희망을 잃어버리기 쉽다. 사회복지사이면서 교육가인 버네 브라운은 치욕과 수치심은 비밀, 침묵과 남을 판단하는 마음에서 잘 자란다고 했다.

드러내지 않으면 상상은 하지만 깊이는 몰라

관계에서 오는 마음의 상처가 곪지 않고 수치감으로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처를 숨기는 게 아니라 드러내야 한다. 드러내지 않으면 상대방은 상처에 대해 상상을 하더라도 그 상처의 깊이는 알지 못한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걱정하지만, 상처를 계속 드러내다 보면 치유가 된다. 누군가가 마음의 상처를 드러내면 그 상처를 받아들이면서 꼭 안아 주자. 그런 경험을 통해 세상이 더 안전해져 나한테 더 가깝게 다가올지, 누가 알까.

정인화 _심리 치료사

021 0262 3579
junginhwa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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