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NZ교민뉴스 교민뉴스 “농사는 생물을 피워내는 창조,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창작이죠”

“농사는 생물을 피워내는 창조,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창작이죠”

특별 인터뷰_이인순 농부 겸 아동문학가

거의 한 달 내내 비를 뿌렸던 하늘이 모처럼 맑은 낯을 드러낸 늦은 오후, 1번 국도를 북쪽으로 달렸다. 동화작가로 널리 알려진 농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여러 곳에서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고, 작품을 읽어보기는 했지만 대면을 하기는 처음이었다.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고,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역시 궁금했다.

농장은 예상보다 외진 곳이었다. 진입로를 따라 깊숙이 들어갔다. 크고 작은 비닐하우스 옆에는 농기계들이 서 있었고, 아담한 집 너머에는 푸르른 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작가를 만난 것은 커다란 비닐하우스 안에서였다. 넓은 비닐하우스에는 골을 따라 배추들이 빼곡하게 심겨 있었고, 오이를 잡아매기 위한 줄들이 늘어져 있었다. 비닐하우스의 가장 깊은 곳, 작물들 사이에서 이쪽을 향해 흔드는 손을 발견했다.

그는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서야 일손을 놓은 작가가 허리를 폈고, 이쪽으로 걸어 나왔다. 한껏 부푼 배추를 상하지 않도록 발아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밭고랑 사이를 걸어오는, 밭고랑을 벗어나서야 보이지도 않는 먼지를 터는 시늉을 하며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작가이자 농부이며, 농부이며 작가인 이인순 씨였다.

가까이에서 보니 듣던 것보다 훨씬 젊어 보였고, 훨씬 밝아 보였다. 인사를 했을 뿐인데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 야구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넉넉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 봄인데 어떻게 지내시는지, 안부부터 물었다.

“늘 바쁘지요. 주문량이 많든 적든 날마다 채소를 뽑고, 씻고, 다듬고, 분류해서 트럭에 실어 보내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니까요. 또 점심 먹고, 씨 뿌리고, 모종 만들고, 밭 갈고, 잡초 뽑으며 작물과 대화하고, 벌레와 대화하고….”

팔십육 에이커의 밭과 비닐하우스에는 배추, 무, 알타리, 파, 오이 등 한국식품점의 채소 코너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작물이 심어져 있었고, 뽑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이 트면 나가고 해가 져서 돌아오는

통상 삼사 개월에서 육 개월 전부터 다음 계절에 대한 준비가 마쳐야 하는 농부에게 계절의 변화는 그리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걸어서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랄 넓은 농장에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어 가꾸고, 거두어들이는 것이 가능할까. 그런 일들을 하루에 다 할까, 아니 해낼 수가 있기나 할까. 잠시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동이 트면 들에 나가고 해가 져서야 돌아오는,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그대로 맞아야 하는, 그야말로 농부의 일상이었다.

농장은 치열한 삶의 현장이라고, 약을 모르고 산다는 그가 힘주어 말했다. 이십 년의 경험을 가진 그에게도 실패는 이제는 덤덤해진 다반사가 되었다. 시기를 놓쳐서도 안 되고, 품종을 잘못 심어서도 안 되었다. 경사진 땅에는 겨울작물을 심어야 하고, 평지에는 여름작물을 심어야 했다. 아무리 신경을 써도 아직도 뭔가가 잘못되었고, 해마다 내년에는 더 잘해야지 하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이십여 년 전, 농장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럴 줄은 몰랐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하나요. 비닐하우스에서 오이만 키우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모두가 아니었어요. 땅을 보는 이상 땅을 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어요. 그렇게 시작한 땅파기가 어느덧 이십 년이에요. 어쩌다 바람이라도 불면 내 마음에는 태풍이 몰아쳤어요.”

이민을 올 때부터 막연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고무신을 준비해 오긴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장화를 신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제가 여기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니까 한국에서 조카들이 놀러 왔어요. 깜짝 놀라는 거예요. 일은 기계들이 다 하고 고모는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유유자적하게 돌아다니는 줄 알았다는 거예요. 절대 낭만적이거나 목가적이지 않아요.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니까 낭만적인 겁니다.”

농사일이란 거칠기 한이 없는, 농장을 둘러싼 모든 환경과 싸워서 익숙해지는 전쟁과 다름없었다. 꽃도 한 송이 피우지 못했던 사람에게 채소 수십 가지를 가꾸는 일이란 그야말로 흙과의 전쟁이었다. 아무리 파헤쳐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땅과의 전쟁이었고,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은 자연과의 전쟁이기도 했다.

땅과의 전쟁, 자연과의 전쟁을 치르며

한편, 시장과의 전쟁이기도 했고, 거래처와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기도 했다. 가격이 맞지 않거나 판로를 찾지 못해서 결국 농작물이 심어진 밭을 스스로 갈아엎을 수밖에 없는 농부의 심정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 농장은 도전이었다. 농장을 시작한 것도 도전이었고, 교민들이 많은 남쪽으로 가지 않고 북쪽으로 오게 된 것 역시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해보겠다는 그의 도전이었다. 비닐하우스 몇 동 밖에 없던 황량하고 척박한 땅을 일구고 넓혀 가면서 농장을 만들었고, 그때와 같은 막막한 걱정은 덜었지만 아직 이 정도면 됐다 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스스로 만족한다고 여길 기준은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놓치지 않으려고 그토록 애를 써 왔는데, 세월이 가면 절로 더해가는 나이에 밀리듯 물러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욕심이 아니고 꿈이며, 일흔 가까운 나이에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꿈을 버리는 순간, 삶의 욕구조차 사라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욕심과 꿈 사이를 갈등하고 싶지 않은 것이 그의 욕심이라면 욕심이었다. 아직은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비닐하우스 배추밭. 농부의 땀과 눈물로 만든 피조물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놓치지 않으려고 그토록 애를 써 왔는데,
세월이 가면 절로 더해가는 나이에 밀리듯 물러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욕심이 아니고 꿈이며,
일흔 가까운 나이에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새장에 갇힌 독수리가 되어

주변에는 은퇴를 하거나 일손을 놓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욕심이 너무 많다고, 이제 그만 농장을 정리하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충분히 했으니 유럽 여행도 다니면서 자기 시간을 가질 때라는 것이었다.

서울에 살면서 남산도 가보지 못한다고 했던가. 이십여 년이 넘은 기간 동안 남들이 모두 다녀왔다는 남섬 여행조차 해보지 않은 그였다. 꼭 한 번, 남섬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크라이스트처치에 사는 딸의 산후조리를 돕기 위해서였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밥을 해주었을 뿐인데 앞으로 이 주일을 어떻게 견디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사람들에게 지시할 일들이, 농장에 관리할 일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면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새장에 갇힌 독수리가 아마 그랬을 것이다.

“일이 좋아서 일을 찾아왔잖아요. 이런 생활이 좋아요.”

그가 종종 도시에 사는 교민들의 집으로 초대받아 갈 때가 있었다. 차 한 잔을 마시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깔끔하게 정돈된 집이 왠지 잘 꾸며진 연극무대처럼 보였고, 그들은 넓다고 여기겠지만 이웃집과 붙어 있는 마당을 보노라면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마치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리고 자꾸만 일거리가 잔뜩 널려 있지만 드넓은 농장이 떠올랐고, 거칠 것 없이 탁 트인 하늘이 보고 싶어졌다.

문학 열정을 농장에 쏟아

창밖, 나무들에 오렌지와 자몽이 가지가 늘어지도록 매달려 있었다. 성격이 까칠해서 ‘까치’라는 고양이가 식탁 위를 어슬렁거렸다. 그의 눈길이 한가할 때 보시라고 가져간 책자에 닿았다. 그의 손이 자연스럽게 책갈피를 넘겼다.

이제야 치열한 농부의 삶에 밀려 꺼내지 못했던 질문을 내놓을 기회라고 여겨졌다. 글은 많이 쓰느냐는 물음에 그는 수줍은 그러나 환하게 웃었다.

“왜 그렇지 않겠어요. 농장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글은 쓸 수 있겠지, 늦어도 육십이 되면 글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농사를 짓다 보니까 글을 쓸 여유가 그리 쉽지 않아요.”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참 많지만 이십여 년 동안 글판과 떨어져 지내는 생활을 하니까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세상과 단절되고, 사람들에게 잊혀서 궤도에서 벗어난, 본의 아니게 생활을 빌미로 이탈된 삶을 살고 있지만, 문학이 생활이 될 수는 없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생활을 택했다. 문학에 대한 열정을 농사에 쏟아붓기로 한 것이었다. 드넓은 들판 한가운데에서 비를 만난다면, 비를 맞을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생활에 전념하는 그것 또한 도전이라고 생각한 그는 농장에 매달려 살았다.

온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했으면서도 다음날 그 시간이 되면 절로 눈이 떠지고 멀쩡하게 들로 나가는 것은, 일 그 자체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일 자체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을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 그것만으로 어떤 면에서는 그의 인생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Someday(언젠가)

한때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글을 쓰곤 했었다. 그것이 작품집 두 권으로 엮이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

“농사도 한편으로는 생물을 피워내는 창조이자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창작이지 않겠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보람 또한 못지않아요. 아들은 늘 이제 창작의 시간을 가져보라고 말해요.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 얼마나 달콤하고 행복한 일이에요? 하지만 일 더미에 빠져서 작물들을 돌보는 일 또한 의외로 재미가 많아요. 보람도 있고요. 육신이 편하다고 해서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행복인가요?”

그는 책의 제목을 정해두고 있었다. 그것은 ‘Someday’(언젠가)였다. 농장을 정리하고픈 마음이 생기고 글을 쓸 여유가 되면 평생의 버팀목인 남편과 함께, 힘들었거나 가슴 아팠거나 고마웠던 기억을 되살려 책으로 엮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강아지가 숲속에서 물고 온 고양이부터, 그에게 글감은 무궁무진했다. 눈을 뜨면 보이는 모두가 글감이었고,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것들 또한 글감이었다. 그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가슴에 새겨두고 있었다. 언젠가 문장으로 옮겨질 그날까지.

일주일에 한 번 성당에 가는 것은 발바닥 신자인 그에게 큰 나들이였고, 세상 구경이었다. 마트에 가는 것조차 그에게는 백화점에 가는 듯한 설렘으로 채워지곤 했다. 촌스러워졌다고 해도, 문명을 거스른다고 해도, 당장 내일부터 다시 가없는 일 더미 속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세상은 즐겁고 재미있는 곳이라고, 농부이면서 작가이기도 한 그가 말했다.

허은_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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