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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운의 동유럽 여행] 예쁜 여자와 산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겠다

석운의 동유럽 여행(5)_다시 찾은 비엔나(3)
오페라 하우스, 벨베데레, 그리고 음악협회 황금홀


비엔나에서의 마지막 날 일정

오늘은 다른 날보다도 더 서둘러 숙소를 나왔다. 5박6일의 비엔나 일정이 어느덧 끝나가 내일이면 떠나야 하는 날이기에 공연히 마음이 바빴다.

오늘의 첫 행선지는 벨베데레 궁전(Schloss Belvedere)이었다. 전에도 갔었지만 오늘은 일찍 가서 좋아하는 화가들의 그림을 여유 있게 감상하고 싶었다. 트램을 타기 위해 정거장으로 걸어가면서 아내가 어젯밤 오페라 하우스 갔던 이야기를 하며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좋은 경험했지요, 뭐,’하면서 웃었다. 그렇다. 좋은 경험이었다.

오페라 하우스 입석표(Standing ticket)를 체험하다

비엔나 오페라 하우스는 파리와 밀라노의 오페라 하우스와 더불어 세계 3대 오페라 하우스의 하나이다. 그런 만큼 입장료가 만만치 않다. 주머니 형편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이나 학생들을 위해 당일 날 공연시간 전에 입석표(Standing ticket)를 판다. 미리 가서 기다려야 하지만 운이 좋으면 아주 싼 값에 구경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도 어젯밤 한번 시도를 해봤다. 저녁 7시에 발레 공연이 있기에 일찍 간다고 5시 반에 갔지만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서 줄을 서있었다. 줄 맨 뒤에 가서 섰다. 마침 앞에 나이 지긋한 부부가 서있기에 말을 걸었더니 최소한 3시간 전에는 와야 하는데 자기들도 늦었다고 했다.

입석표는 두 가지가 있는데 4유로짜리는 1층 정면 뒤쪽이라 무대가 잘 보이는데 100장만 팔기에 우리 차례가 되기는 이미 틀렸고 3유로짜리는 위층 발코니라 무대가 잘 안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만 살 수 있어도 다행일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기왕 왔으니 좀 기다려 보기로 했다. 30분쯤 지나니 줄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3유로 표를 겨우 살 수 있었다. 우리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며 기분이 좋아서 안으로 들어갔다.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위층 발코니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그래도 3유로로 오페라하우스에서 발레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기대에 차서 기다렸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자 우리들의 기대는 어그러졌다.

우리 자리에서는 무대가 반 밖에 안 보였다. 음악회였다면 그런대로 참고 들었겠지만 발레공연을 무대가 잘 안 보이는 자리에 서서 관람하는 것은 그냥 고난이었다. 1막이 끝났을 때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자리를 빠져 나왔다. 그리고 발레 대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오페라 하우스의 내부를 천천히 구경하다 나왔다.

그 화려함과 웅장함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훌륭한 오페라 하우스를 갖고 있는 비엔나가 부러웠다.

집으로 오면서 우리는 입을 모았다. 4유로짜리든 3유로짜리든 입석표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우리는 앞으로 제값 내고 관람을 하자고 했다. 그렇기에 아내가 오늘 좋은 경험했다고 말하며 웃은 것이다.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아마도 비엔나를 생각할 때마다 평생 못 잊을 경험일 것이다.

벨베데레 궁전에 가다

어느 사이 트램이 벨베데레 정거장(Quartier Belvedere)에 도착해서 우린 내려서 걸었다. 사람들이 매표소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다행히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벨베데레라는 말의 뜻이 ‘아름다운 전망’이듯이 입구 앞에 펼쳐진 정원의 전망이 너무 아름다워 카메라를 꺼내 한 컷 찍었다.

벨베데레 궁전은 상궁(Oberes), 하궁(Unteres), 벨베데레 21의 세 전시관으로 나뉘어 있지만 우리는 클림트의 그림이 있는 상궁만 보기로 했다.

안으로 들어오자 오히려 바깥에서 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역시 클림트의 인기는 상당하였다. 19세기 말 비엔나의 화단(畵壇)에 돌풍을 일으켰던 빈 분리파(Vienne Secession)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클림트(Gustav Klimt)의 그림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키스(Kiss)와 유디트(Judith)를 보기 위해서 사람들은 이곳을 찾아 든다.

전시장에는 클림트의 그림 말고도 모네와 고흐 같은 유명 화가의 그림도 있었다.

그리고 클림트와 같은 빈 분리파에 속했던 에곤 실레와 오스카 코코슈카의 그림도 보였다. 클림트의 ‘키스’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몰려있었다.

10년 전 이곳에 왔을 때 이 그림의 프린트를 사서 집에 갖고가 표구를 해서 걸어놓기도 했지만 원화가 주는 색채의 아름다움은 새삼 새로운 감동을 주었다.

아내와 같이 한참을 그림 앞에 서서 보다가 카메라를 꺼내 겨우 한 컷을 찍은 뒤 사람들 틈에서 빠져 나왔다.

오스카 코코슈카(Osker Kokoschka)의 ‘바람의 신부’

옆 방으로 가자 오스카 코코슈카(Osker Kokoschka)의 그림이 몇 점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해서 그의 그림 중 유명한 ‘바람의 신부’가 있나 찾았지만 아쉽게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그림은 스위스 바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내가 ‘바람의 신부’를 찾았던 이유는 그 그림의 신부가 ‘알마 말러(Alma Mahler)’이고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지성과 재능과 미모를 아울러 갖췄던 그녀는 세기의 전환점에 비엔나의 사교계를 뒤흔들어 놓았던 바람둥이 여인이었다.

알마와 첫 키스를 나누었던 남자가 화가 클림트였고 거의 20살 연하의 아내를 지키려고 전전긍긍하다 51살의 나이로 남편 말러가 심장병으로 죽자 기다렸다는 듯이 알마의 연인이 된 남자가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였다.

오늘 벨베데레 궁전에서 알마의 연인이었던 두 화가를 만나자 나는 음악가로서는 성공했지만 남편으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던 불행한 남자 말러가 생각났던 것이다. 언젠가 어느 책에서 ‘말러에게는 아내 알마가 전부였지만 알마에게는 남편 말러가 일부에 불과했다’라고 쓴 구절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알마와 사귀던 코코슈카도 언제 그의 곁을 떠날지 모르는 알마에게 항시 불안을 느꼈었나 보다. 그가 그린 ‘바람의 신부’를 보면 편안히 잠들어 있는 알마에 비해 코코슈카는 불안한 눈초리로 알마의 손을 꼭 잡고 있다. 그의 예감은 맞아서 이 그림을 그린 뒤 불과 일년 도 안 지나 알마는 당대의 유명한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재혼을 했다.

예쁜 여자와 산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옆에 있던 아내의 손을 찾아 꼭 잡았다. 좀 있다 전시관을 나오는 내 머릿속으로 코코슈카의 그림 ‘바람의 신부’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연주자들이 무대를 떠나고 곧이어 관객도 모두 빠져나갔다.
텅 빈 무대와 빈 좌석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연주장 밖의 비엔나에는 달빛이 교교하였다.
달빛을 받고 아내와 같이 걸으며 나는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쓴 분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비엔나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브람스를 찾아서

벨베데레 궁전에서 나온 우리는 브람스(Johannes Brahms)를 찾아 나섰다. 브람스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활동무대가 비엔나였기에 당시 사람들은 브람스를 비엔나 최고의 음악가로 사랑하였다. 이런 비엔나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브람스는 죽을 때 그의 유산을 비엔나 음악협회(무지크페라인 Musikverein)에 기증했다. 그래선지 음악협회 건물 안에는 브람스 홀(Brahmssaal)이라 명명한 실내악 연주회장이 만들어졌고 음악협회 맞은 편 길 건너 레셀공원(Resselpark)에는 브람스의 동상이 세워졌다.  

지하철 칼스플라츠 역에서 내리자 금방 브람스의 동상을 찾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과묵한 브람스는 초연한 눈초리로 나를 맞았다. 대학교 2학년때인가 그의 이중협주곡을 들은 뒤부터 나는 급속도로 그를 좋아하게 됐다.

스승 슈만(Robert Schumann)의 아내 클라라 슈만을 지고지순의 사랑으로 사모하며 슈만이 죽은 뒤 끝까지 그녀를 보살피다 그녀가 죽자 일년 뒤에 책임을 다했다는 듯이 따라 죽은 그의 삶을 나는 그의 음악만큼이나 좋아한다. 그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협주곡을 들으며 나는 즐겨 바이올린은 클라라이고 첼로는 브람스라는 상상을 한다.

1악장 짧은 총주 뒤에 나오는 묵직한 첼로 독주는 바로 브람스의 사랑의 고백이고 그 뒤에 나오는 가녀린 바이올린의 연주는 클라라의 화답이라고 나는 느낀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브람스의 동상을 보다가 나는 그의 좌대 밑에 수금을 켜는 여인의 모습을 보았다.

조각가는 그녀가 음악의 여신 에우테르페(Euterpe)라고 할지 몰라도 나는 그녀가 클라라 슈만이라고 단정하였다. 살아 생전 브람스의 숭상을 받았던 그녀가 하늘나라에선 그의 발치에서 수금을 켜며 보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브람스는 여전히 묵묵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를 클라라에게 맡기고 나는 돌아섰다.

그런 그를 클라라에게 맡기고 나는 돌아섰다.

음악회 표를 파는 아가씨

브람스의 동상을 뒤로 하고 우리는 바로 길 건너에 있는 음악협회 건물을 향했다. 그런데 몇 걸음 못 가 길거리 한가운데서 음악회 표를 파는 아가씨를 만났다.

비엔나의 길거리에서 흔히 보는 광경이라 그냥 지나치려 하다 그녀의 옷차림이 마치 모차르트의 복장과 같아 잠깐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그녀가 내게 다가와 음악회 프로그램을 주었고 그걸 본 나는 가슴이 뛰었다. 음악회가 열리는 장소가 음악협회의 황금 홀(Musikverein Goldener Saal)이었다.

여기가 어딘가! 비엔나 최고의 콘서트 홀일뿐더러 매년 1월1일 그 유명한 비엔나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가 열리는 곳이 아닌가?

그곳에서 바로 그날 저녁에 비엔나 모차르트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들이 모차르트 당시의 의상과 가발을 착용하고 연주를 한다고 프로그램에 적혀 있었다.

음악협회의 황금 홀(Musikverein Goldener Saal)

마음을 가다듬고 좀더 자세히 프로그램을 보니 연주곡목도 아주 알찼다. 모차르트의 교향곡,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오페라 아리아를 발췌해서 연주하고 마지막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와 라데츠키 행진곡(Radetzky Marsch)으로 끝나게 되어있었다.

몇 번을 프로그램을 확인한 뒤 나는 표 파는 아가씨에게 어떤 좌석이 남아있느냐고 물었다. 아가씨는 표가 거의 다 팔리고 이층 중앙의 50유로짜리 표가 몇 장 남아있는데 아주 좋은 자리라며 좌석배치도를 보여주었다. 더 볼 것도 없이 나는 빨리 두 장을 샀다.

표를 받은 뒤 나의 기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매년 1월이면 비엔나 신년음악회가 열리는 무지크페라인 황금 홀에서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니 꿈만 같았다. 아내도 덩달아 기뻐하며 나보고 빨리 표 파는 아가씨와 포즈를 잡으라고 해서 한껏 포즈를 잡았다.

무지크페라인 황금 홀에서 모차르트의 음악을

그날 저녁이 되자 우리는 시간에 늦지 않게 음악협회 건물(Musikverein)로 왔다.

밤에 보는 음악협회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속속 몰려왔다. 우리도 안으로 들어갔다.

‘건축의 환상적인 조화’라는 평을 듣는 건물답게 내부의 아름다움은 우아하고도 웅장했다.

비엔나 필하모닉 관현악단의 본거지인 황금 홀은 거의 2,000명을 수용한다고 했는데 그날 저녁 좌석은 만석이었다.

연주가 시작되자 웅성거리던 모든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고 첫 곡으로 흘러나온 모차르트의 소야곡(Eine kleine nachtmusik)은 맑고 밝은 소리로 홀을 채웠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음악의 향연이 계속되었고 마지막 곡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할 때가 되자 지휘자가 관객을 향해 돌아섰다.

그때부터 지휘자의 익살스런 제스처에 따라 관객 모두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연주자와 관객이 혼연일체가 되어 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음악회가 끝났다.

연주자들이 무대를 떠나고 곧 이어 관객도 모두 빠져나갔다. 텅 빈 무대와 빈 좌석을 뒤로 하고 우리도 밖으로 나왔다. 연주장 밖의 비엔나에는 달빛이 교교하였다.

달빛을 받고 아내와 같이 걸으며 나는 문득 오래 전에 읽었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쓴 분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비엔나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글과 사진_석운
화요음악회 운영자, 오클랜드 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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