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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 기자, 두 발로 걷다] 콘월공원에 수선화꽃이 피었습니다


‘오직 몸뚱어리 하나로만’ 박성기 기자, 두 발로 걷다 (1)

오클랜드 콘월공원(Cornwall Park)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콘월공원(Cornwall Park)이 있다. 오클랜드를 찾아오는 손님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곳이다. 내심 ‘나 이런 도시에 사는 사람이야’하는 자긍심을 품고 산다. 오클랜드를, 아니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공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쌍둥이 참나무길 곳곳에 수선화 피어나

팔 월의 마지막 날, 콘월공원을 걸었다. 겨울옷을 벗고 봄옷을 입은 기분이다. 마침 공원은 ‘수선화 주간’(Daffodil Week) 행사가 한창이다.

‘수선화’하면 본능적으로 정호승의 시 ‘수선화에게’가 떠오른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로 시작해서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로 끝나는, 12행으로 된 시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나는 이 문장에 꽂혔다. 맞다. 외로우니까, 사람인 것이다.

콘월공원 봄날은 수선화로 봉오리를 피운다. 공원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쌍둥이 참나무길(Twin Oak Drive)부터 걷는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아름드리 참나무들이 두 줄로 줄지어 늘어서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삶의 기운이 쑥쑥 북돋는다. 나무가 뱉은 숨은 내 심장에 들어와 삶이 된다.

뒷발에 힘을 줘 속도를 줄인다. 시속 1km. 걷는다기보다는 어슬렁거린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지나치기에 너무 아까운 길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수선화 주간을 맞아 차량 통행도 막았다. 오로지 사람의 걸음과 자전거 바퀴의 회전만 허락될 뿐이다.

봄의 새싹 같은 어린아이들이 숲길을 재잘거리며 걷는다. 아직 겨울을 머금은 내 몸도 덩달아 움직여진다. 새봄이 온 것이 분명하다. 연인들도, 노부부들도 손을 잡고 걸으며 봄을 맞는다. 살아 있음이 진정 축복일 수밖에 없다.

쌍둥이 참나무길은 1935년에 만들어졌다. 길이는 550m, 나무는 145그루. 포르투갈과 영국산이다. 차를 위한 포장길 두 길과 사람을 위한 흙길 하나로 되어 있다. ‘콘월공원의 진주’다. 책 표지 사진으로 삼기에 딱 좋다. 어떤 모양으로 찍어도 ‘예술’이 되는,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절대 섭섭하지 않은 길이다.

숲길 건너 파란 잔디밭에는 또 다른 생명이 봄을 즐기고 있다. 엄마 양(ewi)과 새끼 양(lamb)들이다. 새끼는 제 어미 젖을 힘을 내 빤다. 생명의 끈을 잇고 싶은 본능이다.

뉴질랜드는 해마다 8월 마지막 금요일을 ‘수선화의 날’(Daffodil Day)로 지킨다. 한 은행은 인조 수선화를 팔아 모은 돈으로 유방암 환자를 돕는다. 키위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이 행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나는 젖은 봄이라고 생각한다. 젖줄은 생명줄임이 분명하다. 새끼 양에게도, 어린아이에게도. 물론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사람을 만들어 낸, 모든 여성에게도 해당한다. 여성은, 여성의 젖은 그래서 위대하다.

산 정상 오벨리스크 밑에 캠벨 경 묻혀

쌍둥이 참나무길을 벗어나 오른쪽으로(왼쪽일 수도 있다) 고개를 조금만 들면 큰 탑(오벨리스크,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신의 상징으로 세운 기념비 같은 것)이 보인다. 흔히들 ‘원 트리 힐’(One Tree Hill, 182m)이라고 하는 곳이다.

정상까지는 걸어서 10여 분이 걸린다. 이곳은 원래 마오리 요새(pa)로 세워졌다. 지금까지도 마오리들 사이에서는 ‘성지’(聖地)로 여겨진다.

오벨리스크 밑에는 한 사람이 묻혀 있다. 존 로건 캠벨(John Logan Campbell, 1817~1912)이다.

캠벨 경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오클랜드의 아버지’(The Father of Auckland)로 불렸다. 1817년 영국 에든버러에서 태어난 그는 1840년 뉴질랜드로 이민을 왔다. 영국과 마오리들 사이에 와이탕이 조약(The Treaty of Waitangi)이 체결된 해였다. 뉴질랜드 정착민 1세대였다.

콘월공원은 1901년 6월 10일 캠벨이 갖고 있던 땅을 기증해 만들어졌다. 이름은 그해 뉴질랜드를 방문한 콘월 공작(The Duke of Cornwall)을 기리는 마음으로 지어졌다.

오클랜드 시장 출신에다 사업가이자 자선사업가이기도 했던 캠벨은 모든 뉴질랜드 사람을 위해 그 넓은 땅을 국가에 내놓았다. 그가 말한 조건은 이랬다.

“입장료는 영원히 받지 말 것. 모든 사람에게 기쁨(joy)을 제공하는 공간이 될 것.”

산 정상에 서면 오클랜드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 밑에는 양과 소들이, 그 너머에는 파란 잔디를 두른 집들이, 그리고 그 너머너머에는 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오클랜드의 역사와 문화를 오롯이 품고 있다.


콘월공원은 1901년 6월 10일 캠벨이 갖고 있던 땅을 기증해 만들어졌다.
이름은 그해 뉴질랜드를 방문한 콘월 공작(The Duke of Cornwall)을 기리는 마음으로 지어졌다.
캠벨은 모든 뉴질랜드 사람을 위해 그 넓은 땅을 국가에 내놓았다. 그가 말한 조건은 이랬다.
“입장료는 영원히 받지 말 것. 모든 사람에게 기쁨(joy)을 제공하는 공간이 될 것.”


아카시아 코티지와 디스커버리 허브 꼭 찾길

다시 발걸음을 잇는다.

아카시아 코티지.(Acacia Cottage)

이 오두막은 캠벨이 살았던 집이다. 방 두 칸, 거실과 부엌으로 꾸며져 있다. 다른 동네에 있던 집을 공원 안으로 옮겨왔다. 1841년에 지어졌는데 목조 집으로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오래됐다. 그 많은 것을 내놓은 사람이, 왜 그렇게 검소하게 살았는지를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오두막집 건너편에는 후이아 로지 디스커버리 허브(Huia Lodge Discovery Hub)가 있다. 콘월공원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어린이는 물론 어른을 위한 학습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커다란 텔레비전 모니터에서 마오리 중년 여성이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있다. 뜻은 모르지만 한 맺힌, 그러면서도 희망적인 울부짖음이다. 영상을 한동안 지켜본다. 도보 여행자는 잠시 숨이 막힌다.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들의 애환이 자연스럽게 피부로 전해져서다.

이 허브는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문을 연다. 콘월공원 방문자라면 예의상이라도 한 번은 들러야 할 곳이다. 10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외면해서야 되겠는가. 캠벨 경이 우리를 위해 돈 한 푼 안 받고 쉴 공간으로 내줬는데도 말이다.

면적 670에이커, 루프 로드는 40분 정도 걸려

콘월공원과 원 트리 힐 공원을 합치면 670에이커에 이른다. 82만 평이나 되는 넓은 공원이다. 여의도공원(7만 평)에 열 배가 넘는다. 참고로 영국 런던을 대표하는 하이드공원은 620에이커, 뉴질랜드 남섬 공원의 대명사라는 크라이스트처치의 해글리공원은 407에이커다.

그런 만큼 걷는 길도 다양하다. 그중 대표적인 건 루프 로드(Loop Road), 산 정상을 중심으로 해서 한 바퀴 도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길이는 2.9km, 시간은 40분 정도. 여유롭게 걷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자분자분 움직이는 게 성에 안 차는 사람들은 두 팔을 힘차게 저어 달리거나 두 발 자전거로 억세게 공기를 가르기도 한다. 제 멋과 제 능력에 맞게 움직이면 그게 참 기쁨이다.

“길은 만드는 사람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콘월공원은 자기만의 길 만들기에 딱 좋다. 그 어디로 가든 내 길이 된다. 올리브 나무길도, 은행 나무길도, 카우리 나무길도 내 맘대로 짤 수 있다. 걷다 힘들면 그냥 벌렁 누워 쉬거나 코를 골며 자면 된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가 썩는다고 누가 뭐랄 것인가.

350종, 8000그루가 넘는 나무숲을 자랑하는 콘월공원은 그 밖의 소소한 즐거움도 내준다. 오클랜드시에서 늘 준비해 두는 장작을 태워 고기를 구워 먹는 기쁨을 누리거나, 팔각정 아래에서 공원의 악사들이 펼치는 얼치기 공연도 더러 맛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이 공원을 만든 존 캠벨의 참 마음일 것이다.

두 시간 반 걸어 8km…10000 걸음, 530칼로리

두 시간 반을 두 발로만 이어갔다. 8km, 10000 걸음, 530칼로리.

어쩌면 올봄은 더 신나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로지 내 몸, 내 발로만 버텨내겠다는 다짐을 한다. 가장 정직한 내 몸으로 말이다.

오클랜드를 대표하는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당연히 콘월공원이지요.”

다시 한번 힘주어 외친다.

“나 이래 봬도 콘월공원을 즐겨 찾는 오클랜드 시민이라고요.”


“걷는다는 것은 잠깐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산문집 『걷기예찬』에서)



글과 사진_박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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