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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명균 칼럼] 강가에 서서

[나명균 칼럼] 강, 그리고 사람들(1) Waikato River


강하지는 않지만 제법 스산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늦은 오후 강가의 풍경은 거기 서 있는 사람들과 함께 모두 아름답다.
추억이 구름 따라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강물 따라 흐르고’로 기억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강가에 서 있을 때부터인가 보다.

♬으흠~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강물 따라 흐르고/ 친구여~

제목도 가사도 잘 모르고 혼잣말로 흥얼거리는 순간 “아니 웬일이세요! 조용필 노래도 부르시고. 그런데 가사가 좀 이상하네요.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아닌가요?”

하긴 내가 대중가요 중에서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몇 곡이나 될까 싶지만, 갑작스레 조용필의 노래를 흥얼거린 이유는 강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 자연스레 ‘추억은 강물 따라 흐르고-’ 노래가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구름 따라 흐르고 라니?

아무튼, 강물 따라 흐르든 구름 따라 흐르든 결국 나의 오랜 기억 속의 강이 생각난다.

나는 어릴 적, 금강 물이 부여의 낙화암을 돌아 강경의 황산벌을 흘러나가는 곳 가까이에 살았다. 집 앞 작은 개울에 까지도 서쪽 바다의 물때에 따라 하루 두 차례 물이 들어오고 나가곤 했다. 물이 빠진 개울의 갯벌에는 작은 칠게들이 가득 거품을 내고 있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게가 점심밥을 짓는다고 했었다. 마치 밥을 짓는 가마솥에서 하얗게 밥물이 흘러넘치는 것과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작은 개울을 지나면 아버지, 어머니가 땀 흘리며 일구던 넓은 논이 있었다. 서울로 올라와서는 안양천 옆에서 살았다. 어릴 적의 안양천 물은 그야말로 옥수와 같이 맑았다. 그 어릴 적의 친구들과 물장구를 치고 고기도 잡고, 은빛 모래밭에 모래성을 쌓기도 하고- 강이 그리운 것인지, 친구들이 그리운 것인지. 이제 그런 옛 기억 속에서의 강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데 오클랜드와 로토루아에서 어언 20년을 살면서 두 곳을 오가며 자주 만나는 한 줄기의 강물은 자꾸 그 어릴 적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뉴질랜드에 살면서 마오리어를 조금 접하다 보면,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단어 하나 속에서 그 특징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Waikato의 뜻이 ‘흐르는 물’이기에 river를 굳이 붙이지 않아도 Waikato 그 자체가 강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느 시인은 ‘흐르지 않으면 강이 아니다’고 했다. 흐르는 것이 곧 강이요, 마오리 말로 하면 Waikato다. 마오리어는 그래서 참 재미있다. 강 이름의 유래를 보면, 먼 옛날 폴리네시아로부터 카누를 타고 온 사람들이 이 강의 하구에서 겪은 일과 연관된다. 강물이 바다로 힘차게 흘러나가는 것을 보고, 마치 바다가 강력한 힘으로 물을 끌어낸다고 생각했다. 이 표현 역시 참 재미있지 않은가? 마오리어의 Kato는 이처럼 ‘흐른다’, ‘끌어낸다’는 동사로 사용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425km라는 길이로 알고 있는 와이카토강의 시작을 타우포호수 북쪽 끝자락으로 안다. 그러나 실제는 타우포호수 남쪽 Turangi로 유입되는 Tongariro River 역시 와이카토강의 일부다. 이 두 강을 연결하면 Port Waikato까지 그 길이는 600km를 넘게 된다. 해발 2,797m 루아페후산(Mt. Ruapehu)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동쪽으로 흘러 통가리로강을 이뤄 투랑이에서 타우포호수에 유입되고, 이 물은 타우포호수를 가로질러 와이카토강을 이루게 된다.

강은 단순히 흐르는 물 그 이상이다. 흐르는 물은 생명이 같이 흐르고 많은 세월의 역사 속에서 멋진 풍광들을 만들어낸다. 숲이 강줄기를 시작하게 하기도 하지만, 또 그 강은 숲을 더욱 풍성하게도 하고, 사람들을 모아 마을을 만들어내며, 크고 작은 도시를 만들어낸다.

루아페후산에서 시작한 강은 타우포호수의 남쪽 통가리로강의 삼각주에 작은 도시 투랑이를 만들었다. 먼 옛날에는 동쪽 Kawerau에서 온 마오리 부족들이 살기 시작하다가 19세기 말 유럽인들이 선교기지를 만들었고, 도시다운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수력발전소 건설과 함께 그 직원들과 가족들이 정착하면서다.

오늘날의 투랑이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뉴질랜드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Tongariro National Park 때문이다. Tongariro Crossing을 비롯한 많은 등반로가 있고, 겨울에는 스키, 여름에는 산악자전거, 카약, 래프팅, 송어낚시 등 즐길 것이 많다. 특히 통가리로강에는 뉴질랜드의 어느 곳보다 송어의 서식 밀도가 많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강줄기에는 으레 송어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이 많다.

강가에 잠시 차를 세워놓고 통가리로강에서 낚싯줄을 던졌다 감았다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 영화의 한 장면이 기억 속에 떠 오른다.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 유난히 낚시를 좋아했던 장로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시카고 대학교수 출신, 노만 맥린이 자신의 유년 시절을 배경으로 썼던 한 편의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어린 두 형제가 자신의 키보다 훨씬 큰 낚싯대를 들춰 메고 강가에 나가서 어설픈 손놀림을 하는 모습, 그리고 나중에는 아버지보다 더 훌륭한 낚시꾼이 되어가는 모습들. 영화를 그다지 즐길 여유가 없던 나였지만, 이 영화 한 편은 내 기억의 한 곁에 고스란히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 플라이낚시 하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차를 멈추게 된다. 해가 서쪽으로 모습을 감추기엔 아직 조금의 시간이 남아 있을 때, 강물은 유난히 더 반짝이고 그 강물에 비추는 초록의 숲의 그림자 속에서 즐기는 저 여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강하지는 않지만 제법 스산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늦은 오후 강가의 풍경은 거기 서 있는 사람들과 함께 모두 아름답다. 추억이 구름 따라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강물 따라 흐르고’로 기억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강가에 서 있을 때부터인가 보다.

나명균_조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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