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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키위 코리안

“나는 누구인가” 1.5세대와 2세대는 평생 고민할 수 있는 질문
NZ 포용력·한국 열정과 기술 겸비한 ‘키위 코리안’으로 살아야


뉴질랜드의 본격적인 이민 역사가 어느덧 30년이 흘렀다. 나는 부모님을 따라온 이민 1.5세대로서 1992년부터 뉴질랜드에서 자랐다. 이민 1세대에 비할 수는 없어도 때로는 슬프고 힘겨웠던 시간도 있었지만 즐거웠던 추억이 더 많았다. 외국 생활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 당시 인기 그룹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카세트테이프를 주문하고 몇 주를 기다려서 받았다. 시내에 있는 미디어 플라자에서 지난 드라마도 자주 빌려봤다. 나름 한국을 잊지 않으려고 한국 문화를 애써 즐긴 셈이다.

교회 주일예배가 끝나면 시내 앨버트 스트리트 푸드코트에 짜장면을 먹으러 우르르 몰려갔고, 친구들과 챔피언 노래방에도 가 목청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인터넷이 보급된 뒤부터는 한국의 최신 유행, 게임, 문화를 쫓아가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동포 한인들을 만나기만 해도 반가웠던 이민 초창기의 따스함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가게들처럼 우리 곁을 오래 전에 떠났다.

그 어린 나이부터 한국의 문화, 한국의 음식, 한국의 정서를 집요하게 붙잡고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태어난 곳, 부모님 그리고 나의 생김새를 통해 ‘나는 한국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이 뚜렷했던 이유 때문일 것 같다. 이민을 온지 얼마 안 되다 보니 영어도 못 했고, 학교에 한국 사람이라고는 우리 형제밖에 없어서 더더욱 ‘우리는 한국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도드라지게 내보이며 살았다. 그래서 한인 교회, 한글 학교, 한인 공동체에 힘을 쓰며 자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1.5세대 자녀들이 “나는 한국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한국 친구들보다는 키위 친구들을 더 많이 사귀어 자연스럽게 영어만 쓰고 한국어가 어눌해진 친구들도 있었다. 그 가운데 더러는 자기가 한국 사람인지 키위인지 혼란스럽다며 고민했던 이들도 있었다.

이러한 정체성 고민을 발전적으로 함께 나누기 위해  ‘코위아나’ 학생 단체가 10년 전에 생기기도 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누구든 한번은 고민해 볼 수 있지만 1.5세대, 2세대에게는 평생 고민할 수도 있는 질문이다. 1세대와는 다른 차원의 고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과연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있을까. 그 어떤 것이 정말로 “나는 키위이다” 혹은 “나는 한국 사람이다”라고 증명할 잣대가 되어줄까.

럭비를 좋아해야 키위일까? 김치를 잘 먹어야만 한국 사람일까? 영어를 잘하고, 뉴질랜드에 오래 살았다면 무조건 키위라 불러도 될까? 반대로 한국에 30년 거주한 백인이 8년 거주한 나보다 더 한국 사람인 걸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뉴질랜드에 사는 한국 사람이라면 ‘100% 키위와 100% 한국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뉴질랜드의 언어, 문화, 사회, 경제, 정서를 이해하여 키위 주류 사회에서도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한국인의 언어, 문화, 사회, 경제, 정서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공식은 내가 자라면서 정체성 고민을 해결해주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덧붙여 뉴질랜드에서 자라는 학생들도 같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꼭 럭비를 사랑하지 않아도, 크리켓을 좋아하지 않아도, 파블로바를 즐겨 먹지 않아도 키위가 될 수 있다. 청국장을 즐겨 하지 않고, 축구와 야구를 좋아하지 않아도 한국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키위 코리안’이다. 우리는 해외 한인 디아스포라 740만 명 중 한 명이고,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3만 명 중 한 명이다.

우리가 키위 코리안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키위 문화의 장점, 한국 사람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살아간다면, 뉴질랜드든 한국이든 본인이 몸담은 그곳을 분명히 발전시키는 훌륭한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뉴질랜드의 포용력과 한국의 열정과 기술을 겸비한 키위 코리안들이 이 세계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기대된다.

이준영_1.5세 변호사

◼︎외부 필자의 글은 뉴질랜드타임즈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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