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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운의 동유럽 여행] ‘부다페스트’,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던 그 이름

석운의 동유럽 여행(6)_부다페스트

비엔나에서 버스를 타고 부다페스트로 왔다. 유럽을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작은 기쁨은 나라와 나라를 이동하는 것이 마치 이웃 동네에 사는 친구 집에 마실 가는 것같이 자유롭다는 사실이다.

출입국 신고나 여권 검사도 없이 보이지 않는 국경을 넘나드는 홀가분함은 유럽 여행이 주는 보너스다. 버스는 동유럽 여행자가 많이 이용하는 플릭스 버스(Flix Bus). 가격도 착하고 좌석도 편안하며 화장실도 구비돼 있어 아주 좋았다. 2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버스 여행은 무척 쾌적했고 차창으로 넘나드는 풍경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부다페스트 카드, 대중교통과 박물관 무료

아주 오래전이지만 맨 처음 부다페스트라는 도시의 이름을 들었을 때 까닭 없이 가슴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어쩌면 부다페스트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어감 때문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이상하게 이국적이며 신비로움까지 느껴지는 부다페스트라는 이름이 그냥 좋았고 그런 이름의 도시는 무척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했고 언젠가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부다페스트에 도착했을 때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도착한 곳은 네플리겟 정거장. 버스에서 내리자 곧장 여행안내소를 찾아가 부다페스트 카드를 샀다. 이 카드를 갖고 있으면 모든 대중교통이 무료이고 대부분의 갤러리와 박물관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지하철을 탔다. 처음 가는 도시에서 택시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는 그렇게 쉽지 않다. 게다가 숙소가 유명 호텔이 아닌 에어비앤비(Airbnb)를 통해 빌린 개인 집이기에 더욱더 그렇다.

하지만 조금 고생스럽더라도 그렇게 해야 방문하는 곳의 민낯과 속살을 볼 수 있고 여행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 아내와 나는 그런 여행을 즐긴다. 고생하는 만큼 여행은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해준다.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지하철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자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숙소까지 멀지 않았기에 우리는 비 오는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찾아간 숙소는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숙소를 둘러보고 대충 짐을 정리한 뒤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숙소를 나왔다. 한시라도 빨리 다뉴브강(Danube–독어로는 Donau)을 보고 싶었다. 동유럽 여행을 떠나면서 부다페스트를 일정에 넣는 순간부터 맨 처음 떠오른 곳이 다뉴브강이었다.

대학교 2학년 때인가. 김춘수 시인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다음 구절에서 더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비여운 네 영혼(靈魂)은
감시(監視)의 일만(一萬)의 눈초리도 미칠 수 없는
다뉴브강(江) 푸른 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이 울었다.
다뉴브강(江)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요한·슈트라우스의 그대로의 선율(旋律)일까,


이 시를 읽은 뒤로 부다페스트는 나에게 쏘련제(製) 탄환(彈丸)에 맞아 죽은 13살 소녀였다. 내 마음속의 부다페스트에는 언제나 그 소녀의 영혼이 찾아와 소리 높이 울었던 다뉴브강이 출렁이고 있었다.

대학 시절 내내 대학가에서는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데모가 벌어졌다. 경찰과 대치하다 최루탄 가스를 피하여 눈물을 흘리며 학교 안으로 쫓겨 들어올 때마다 나는 부다페스트의 소녀가 떠올랐다.

그리고 대학로를 따라 학교 옆을 흐르는 대학천은 다뉴브강이라고 생각했다. 잘못하다 언젠가는 최루탄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힐 때는 13살 소녀가 죽어 소리 높이 울었던 다뉴브강은 결코 푸르지도 맑고 잔잔하지도 않으리라 생각했다.

군사독재와 암울한 현실 아래 기껏 데모나 하다가 쫓겨 돌아오는 우리를 맞는 대학천의 물처럼 검고 탁할 것이라고 생각했디. 그렇기에 부다페스트에 가면 꼭 먼저 다뉴브강을 보리라 몇 번이고 다짐했다.

2번 트램을 탔다. 2번 트램은 다뉴브 강변을 따라 운행하기에 바깥 경치도 좋고 또 주요 관광지에 쉽게 갈 수 있는 역에 내려주기에 관광객들에게 아주 편리한 트램이다. 원래는 부다와 페스트가 다뉴브강을 중심으로 나누어진 별도의 도시였으나 1873년에 합쳐져 오늘날의 부다페스트가 되었다.

강을 가운데 두고 페스트 지구에서 바라다보는 부다 지구의 왕궁과 어부의 요새도 아름답고 부다 지구에서 강 건너로 내려다보는 페스트 지구의 국회의사당과 성 이슈트반 교회의 모습도 아름답기 그지없다고 정평이 나있다.

두세 역을 지나자 왼쪽으로 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다뉴브강이구나’라고 속으로 탄식하며 나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출렁이며 흐르는 다뉴브의 강물은 푸르지도 맑지도 않았다. 대학 시절 내내 생각했던 것처럼 검고 탁한 물이었다.

강 위로는 많은 배가 떠다녔다. 적당한 구비를 갖추고 흐르는 다뉴브강은 강변 양쪽의 풍경과 잘 어울려 꽤 아름다웠다. 그러나 요한 슈트라우스가 노래한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강’은 거기 없었다. 그리고 내겐 다시 13살 죽은 소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오르간 소리가 터져 나왔다. 첫 곡 바흐의 토카타였다.
강렬하게 아래로 내뻗는 이 곡의 인상적인 도입부는 유명한 것이지만
나는 이날 들은 오르간 소리만큼 웅장한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그 큰 성당의 허공을 꽉 채우고 내부 벽에 걸린 모든 장식물을 다 진동시키는 그런 소리였다.
오르간 소리가 터져 나왔다. 첫 곡 바흐의 토카타였다.
강렬하게 아래로 내뻗는 이 곡의 인상적인 도입부는 유명한 것이지만
나는 이날 들은 오르간 소리만큼 웅장한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그 큰 성당의 허공을 꽉 채우고 내부 벽에 걸린 모든 장식물을 다 진동시키는 그런 소리였다.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강’은 거기 없었다

세체니 다리(Szechenyi Lanchid) 가까이 왔을 때 우리는 트램에서 내렸다. 다리를 걸어서 건너면서 다뉴브강을 제대로 보고 싶어서였다. 지금은 다뉴브강에 여러 개의 다리가 있지만 1849년에 이 다리가 처음으로 놓이기 전에는 강을 건너는 방법이 배밖에 없었다. 이런 불편을 없애기 위하여 헝가리의 국민적 영웅인 세체니 이슈트반이 다리를 건설할 것을 제안했고 후원하여서 탄생한 다리이기에 그의 이름을 따서 세체니 다리라고 부른다.

지금은 부다페스트의 상징과도 같은 이 다리는 그 모습도 아름답고 밤이면 다리 위에 설치된 수천 개의 전등이 다뉴브강의 수면을 비추는 모습이 장관이어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우산을 받고 천천히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면서 계속 강물만 내려다보았다. 이십 분밖에 안 걸렸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다뉴브강의 검은 물결은 내 가슴 속에 담긴 긴 세월을 향해 끝없이 몰려왔다.

그리고 그 물결 따라 수많은 추억이 떠올랐다. 세월도 추억도 강물 위로 떠나보내면서 나는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왔던 다뉴브강도 같이 흘려보냈다. 아쉽기도 했지만 오래된 체증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가슴이 가뿐해졌다.

다시 김춘수의 시구절이 떠올랐다.

‘다뉴브강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요한·슈트라우스의 그대로의 선율일까.’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왜 시인이 반어법으로 이 구절을 썼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어느덧 다리가 끝났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단 위에 여유롭게 앉아있는 사자를 보았다. 달관한 모습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뉴브강을 건넌 뒤 우리는 온천을 했다. 부다페스트는 100개 이상의 온천이 있는 유럽 최대의 온천 도시이다. 가장 유명한 온천 중 하나가 루카치(Lukacs) 온천인데 부다페스트 카드 소지자는 무료였다.

성 이슈트반 성당, 짓는 데만 54년 걸려

다음 날 아침 부다페스트시(市)의 가이드가 인솔하는 도보여행에 합류했다.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부다 지구와 페스트 지구에서 출발했는데 부다페스트 카드가 있으면 무료였다. 주요관광지를 돌며 가이드가 영어로 자세한 설명을 해줘서 아주 유익했다.

그냥 우리끼리 돌아다니면 찾기도 힘들고 가서도 겉만 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데 설명을 들으면서 관람하니 헝가리와 부다페스트의 역사와 문화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왕궁, 어부의 요새, 겔레르트 언덕, 국회의사당 등등 부다페스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을 모두 잘 보았다.

페스트 지구의 워킹 투어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이 성 이슈트반 성당(Szent István-bazilika)이었다. 헝가리의 초대 국왕이며 성인(聖人)인 성 이슈트반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이 성당은 짓는 데만 54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 규모와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놀라서 투어가 끝난 뒤에도 아내와 같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입구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았다.

무언가 하고 자세히 보니 놀랍게도 5월 매주 화요일 저녁에 성당에서 오르간 연주회가 있다는 광고였다. 바로 그날이 5월의 마지막 화요일 28일이었다. 나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곧장 포스터 하단에 나와 있는 예약전화로 전화를 했다. 나는 2장을 예약했다. 30분 전까지 와서 돈을 내고 표를 찾으면 된다고 했다.

아 그때의 기쁨이란! 한 번에 8,000명이 넘게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유럽 최대의 성당, 그리고 성당 내부에 헝가리의 저명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그득하다는 이 아름다운 곳에서 바흐의 토카타와 헨델의 메시아를 비롯한 주옥같은 오르간 음악을 들을 수 있다니 꿈만 같았다.

유럽 최대 성당에서의 오르간 콘서트

표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내부는 생각보다 웅장하며 화려했다. 특히 중앙 천장의 돔의 색유리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내부 어딘가에 성 이슈트반의 오른손이 미라 상태로 안치되어 있다고 들었지만 음악회가 곧 시작될 예정이고 사람들이 모두 앉아 있어 아쉽지만 포기하고 그냥 자리에 앉았다.

시간이 되자 불이 꺼졌고 잠시 뒤 오르간 소리가 터져 나왔다. 첫 곡 바흐의 토카타(Tocata)였다. 강렬하게 아래로 내뻗는 이 곡의 인상적인 도입부는 유명한 것이지만 나는 이날 들은 오르간 소리만큼 웅장한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그 큰 성당의 허공을 꽉 채우고 내부 벽에 걸린 모든 장식물을 다 진동시키는 그런 소리였다.

독주자의 연주도 훌륭했지만 거대한 규모의 성당 내부가 만든 울림통이 소리를 그렇게 웅장하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에 이어진 구노의 아베 마리아도, 마스네의 타이스의 명상곡도,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도, 그리고 다른 곡도 모두 많이 들었던 곡들이었지만 그날 유럽 제일의 성당에서 들으니 훨씬 감동적이었다.

테너와 소프라노가 합세한 마지막 곡 모차르트의 엑슬타테 유빌라테(Exsultate Jubilate,환호하라, 기뻐하라)의 알렐루야가 끝났을 때 천국 잔치에 초대받은 양 그 자리에서 일어서기가 싫었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그치고 환하게 불이 다시 들어왔을 때 아내가 내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날 저녁 출연자는 모두 다섯 명이었다. 그 다섯 명이 수많은 관객의 가슴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채운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작은(?) 음악회가 매일 저녁 시내 곳곳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을 때 나는 부다페스트의 시민들의 높은 문화 의식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성당에서 나온 우리는 콘서트의 여운을 가슴에 담은 채 숙소를 향해 걸었다. 초여름 부다페스트의 밤이 차츰 깊어가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글과 사진_석운
화요음악회 운영자, 오클랜드 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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