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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화의 상담 이야기] 친구에게 빼앗긴 아이를 찾으려면

정인화의 상담 이야기(4)

아들이 어렸을 때는 농구공을 갖고 노는 게 너무 귀여워 넋 놓고 쳐다본 적이 많았다. 골을 넣는 게 너무 신기해 프로 농구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이 받는 연봉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저녁이나 주말은 아들의 농구 연습이나 시합에 쫓아다니는데 쓰였지만, 오랫동안 힘든 줄 모르고 살았다.

친구에게 따돌림을 받지 않기 바랐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들은 내가 아닌 친구들, 또래 지향적인 십 대가 되어가면서 방문을 닫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춘기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컴퓨터를 켜놓고 혼자서 큰소리를 치는 게 친구들과 게임을 하는 거라는 사실을 인식했을 때는 아들을 흐뭇한 얼굴로 쳐다봤다. 인터넷 공간에서 사회성을 기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게임은 될 수 있으면 다 사 줬다. 친구에게 따돌림을 받지 않고 그들과 잘 놀기를 바랐다. 이러한 내 행동이 아들을 친구와 컴퓨터에 뺏기게 하는 시초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밥 먹자.”

세 번째나 부르고 있는데 아들은 응답이 없다. 열이 조금씩 뒷골 쪽으로 올라가는 것이 느껴진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되도록 부드러운 목소리로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알린다.

일 분, 이 분, 삼 분이 지나자 눈에 뵈는 게 없다. 아들 방의 문을 열면서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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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안 먹어? 지금 몇 시간째 게임만 하는 거야?”

잔소리를 하면서도 가슴이 후련하다는 느낌은 없다. 접시 깨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만 귀에 거슬린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친구들과 오랫동안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도 식구들하고는 거의 말을 안 하는 아들이 나의 존재 자체를 무시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럴 때는 먹는 문제로 소리를 지르지만 자식 하나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나에게 화가 난다.

그뿐만 아니라, 아무리 노력해도 벌어진 간격을 좁힐 수 없다는 절망과 부모로서 실패라는 생각이 들면, 삶의 회의가 든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심이 드는 사건들이

싱가포르에서 육 년 정도 살다 뉴질랜드에 돌아온 C는 십 대 중반에 들어선 두 아들의 아버지다. 그는 싱가포르에 남아있는 칠십이 넘은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우울증 증상을 보이는 중국인 아내를 돌보느라 어린아이들은 잘 보살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부모의 도움 없이 빨리 뉴질랜드 생활에 적응하기를 바라며 여러 디지털 기기를 사 주었다. 하지만 게임과 친구에게 빠져들어가는 아이들은 보면서 뉴질랜드에 돌아온 것을 후회했다.

그는 아이들을 빼앗긴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본인의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으며 울기 시작했다. 내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역전이 현상이 일어났는지 내 가슴에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전해진다.

“왜 이렇게 되었지?”

어디서부터 나사가 풀려 이렇게 멀어져 버렸을까를 종종 생각해 봤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한 게 안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심이 드는 사건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일곱 살 때였나. 아들이 농구 시합을 하다 발을 삐었다. 절룩거리면서 나한테 오는 모습을 보니까 괜히 화가 나서 코치한테 가라고 소리쳤다. 열 살이 넘어서는 크리스마스나 방학을 맞아 놀러 갈 때는 아들의 친구들을 부르거나 꼭 게임기는 챙겨서 보냈다. 칼리지에 들어가고부터는 말을 안 듣는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가”라는 말을 종종 던졌다. 인터넷을 끊는다거나 컴퓨터를 뺏는다는 위협도 했다.

내 의도와 다르게 관계는 소원해지고

변명같이 들릴지라도 내 행동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맞는 이유는 있었다. 코치의 권위를 침범하지 않으려 아들에게 코치한테 가라고 했다거나 아들이 심심하지 않게 친구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게 하려는 배려였다고 생각했다.

그뿐만 아니라 아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큰소리로 행동을 제지하거나 책임지라는 의미에서 쫓아내는 벌을 줬다. 짧은 순간이지만 말을 듣는 것처럼 보이다 보니 소리를 지르는 횟수가 늘어났고 목소리의 강도는 올라갔다. 내 의도와 다르게 관계는 더 소원해졌다.

이러한 행동들이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안 되고 아들을 내게서 멀리 밀어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무능함과 두려움을 아들에게 투사하고 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농구 시합 중 발을 삐어 절룩거리면서 다가올 때 안아 주었어야 하는 것을 밀어냈다. 놀러 가서 아이들과 노는 방법을 몰라 친구들을 불렀다. 남들이 보면 자상한 아빠로 보였겠지만, 아들이 친구들과 노는 동안에 나는 자연스럽게 혼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이러한 행동을 통해 아들은 무의식적으로 아빠는 믿을 수 없는 사람, 그러니 위험에 빠졌을 때 아빠가 도움을 주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친구들에게 조금씩 더 다가갔던 거 같다.

내가 조금씩 아들을 내게서 밀어내고 있던 것을 모르고 아들이 멀어져 간다고 불평을 하면서 권위를 통해 아들의 행동을 제어하려 했나 보다. 이 모든 행동이 내가 정서적으로 가깝지 못해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아이가 붙잡을 수 있는 무언가를 주면서

사실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잘 커 가려면 친구들이 필요한 게 아니라 부모다. 전통적으로 부모나 윗사람을 통해서 아이들은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왔는데 정보화 시대에 들어와서 아이들은 친구를 통해서도 여러 가지 살아가는 정보를 얻을 수가 있다 보니 부모가 덜 중요해지고 부모와 친구가 서로 경쟁 관계에 놓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경쟁에서는 부모와 아이가 아주 강한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면 친구들을 이길 수 없다. 잔소리하는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보다 유튜브나 구글을 잘 아는 친구를 통해 정보를 얻는 게 더 편할 수도 있다.

C와 상담을 하면서 아이들과 애착 관계를 높이는 방법에 관해 얘기했다. 술을 마시게 되면 본인의 아픔이야 진정되겠지만 상대방과의 관계는 끊어지기가 십상이다. C는 아이들을 위해 금주를 하면서 관계를 증진하는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캐나다의 유명한 아동 심리학자인 고든 뉴펠드는 아이의 얼굴을 따뜻하게 바라보면서 아이의 의존을 끌어내라고 했다. 또한, 그는 “아이가 붙잡을 수 있도록 무엇인가를 주면서 아이의 나침반이 되라”라고 했다.

‘나침반이 되라’는 말이 C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는지 그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세상을 살아가게끔 아이들의 방향을 잡아주겠다고 말했다.

소리를 지르는 횟수가 줄어드니까 아들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들과 내 인생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아들의 인생을 걱정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을 줄여주고 싶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과 몸이 가벼워진다. 오지도 않는 미래에 대한 공포로 아들의 행동에 대해 뭔가를 말하고 싶을 때마다 내 인생이 아니라고 하니 한 발짝 뒤에 서 있어도 견딜 만하다. 소리를 지르는 횟수가 줄어드니까 아들은 방문을 열어 놓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번 봄에는 아들의 행동보다는 나하고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야겠다. 행동이 보기 싫어도 밀어내지 말고 끌어당겨 그의 행동이 뜻하는 바에 관심을 두어야겠다. 아들을 바꿀 수 없다면 아들이 속해 있는 그의 세계를 바꾸어야겠다. 아들 세계의 한 축인 내 태도를 바꾸면 그가 더 가깝게 다가오지 않을까.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봄기운을 받아서인지 뭔가 안에서 꿈틀거린다. 올해는 더 가까워질 거라는 희망이 솟는다.

정인화 _심리 치료사

021 0262 3579
junginhwa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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