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언어 자산

“다른 언어 습득 방법은 모국어 습득을 먼저 열심히 하는 것”
모국어로 한국어 배우면 2중 언어 소유자 충분히 될 수 있어


한국말을 잘하는 세계 각국 사람들이 나오는 방송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와 <비정상회담>이 처음 방송되었을 때 많은 한국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한국에 대한 여러 나라 사람의 생각을 한국말로 듣는 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그중에 미국인 타일러 라쉬의 한국어 실력은 제2국어의 경지를 넘어 모국어에 가까운 수준이라 많은 사람이 경탄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4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져 더 부러워하기도 했다.

다른 나라 말을 여러 개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큰 자산이다. 그러나 어떠한 의미에서 자산인지, 어떻게 하면 2중 언어 소유자가 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오늘은 매우 개인적인 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언어를 여러 개 구사하면 취직이 잘 될 것이라고 들었다. 내가 학창 시절 영어와 씨름을 하면서도 일본어와 중국어를 배웠던 이유도 막연하게 나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언어 습득은 진정 취직만을 위한 하나의 방편인가? 대학 진학을 영문학과로 하게 되면서 언어가 왜 자산이 되는지를 깨달았다. 현지 학생들보다 언어적으로 뒤떨어지고 문화적으로 모르는 부분이 많았지만, 대신 영어와 한국어로 조사를 하며 공부하는 작품에 대해 더 다양한 시각과 견해를 접할 수 있었다.

내가 일본어와 중국어로 된 논문까지 읽어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더 다양한 해석을 접할 수 있었을까? 여러 언어를 구사함으로써 열리는 다양한 습득의 기회와 장(場)–얼마나 가슴이 뛰는 일인가? 또 그만큼 여러 나라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배움의 창과 소통의 창이 여러 개 열린다는 것이 큰 자산이 아닐까?

지금은 영어도 한국어도 마음 편하게 사용하지만, 학창 시절 내내 내가 자신 있게 구사할 수 있는 모국어라고 할 수 있는 언어가 없다는 것이 부끄럽고 속상했다. 나는 늘 ‘외국에 오래 산 아이 치고 한국어를 잘하는 아이’였고, ‘뉴질랜드에 얼마 살지 않은 아이 치고 영어를 잘하는 아이’였을 뿐, 두 가지 언어 모두 모국어 수준에 이르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제3국어, 제4국어를 배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현명한 부모님과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난 덕분으로 한국어를 꾸준히 공부했다. 신기하게도 한국어를 공부하는 만큼 영어도 함께 늘었다. 유아기에 2중 언어 습득을 동시에 하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단 하나의 모국어가 정해진 이후에는 그 첫 번째 모국어가 확실히 확립되기 전에 다른 언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습득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결국 다른 언어를 뛰어나게 습득하는 방법은 바로 나의 모국어 습득을 먼저 열심히 하는 것이다.

얼마 전 내년 과목 선택을 앞두고 한국 학생 한 명이 찾아왔다. 줄곧 외국에서만 공부를 해서 한국어로 문학 공부를 해 본적이 없지만, 시도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모국어 과목에 영문학, 중국문학, 한국문학이 지원이 된다.)

왜 어려운 길을 택하려 하는지 물었다. 학생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공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잡고 싶다고 했다. 다른 언어를 제2국어 수준으로 배우면 언어 구사에 한계가 있지만 한국어를 모국어로 배우면 2중 언어 소유자가 충분히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과와는 무관하게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힘들고 먼 길이 되겠지만, 언젠가 그 학생은 2중 언어 소유자가 되리라 믿는다.


김민정_한인 1.5세대 교사(크리스틴 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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