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NZ라이프 여행 해 뜨는 동해에서 해 지는 서해까지, 노란 화살표를 따라 40리(16km) 길을

[박성기 기자, 두 발로 걷다] 해 뜨는 동해에서 해 지는 서해까지, 노란 화살표를 따라 40리(16km) 길을


박성기 기자, 두 발로 걷다 (4)

코스트 투 코스트 워크웨이(Coast to Coast Walkway)

노란 화살표를 따라 40리(16km) 길을

20대 초반 서울 청량리역에서 서울역까지 걸은 적이 있다. ‘지하철’ 1호선 노선을 발로 따라갔다. 땅 아래로는 걸을 수 없어 경적을 들으며 한 발 두 발 서울 중심으로 내디뎠다. 내 딴에는 멋진 계획이 있어서였다.

나는 세계 일주를 꿈꿨다. 열 권으로 된 김찬삼(경희대 지리학과 교수, 1926~2003)의 여행기를 읽고 난 뒤였다. 한 달에 6천 원씩 열 달 할부로 산 전집이다. 세 차례나 세계 일주를 한 그는 동양의 ‘마르코 폴로’로 불렸다. ‘지하철 1호선 걷기’는 내가 그린 지상의 철로로 펼친 나만의 도보여행이었다. 아마 10km 정도쯤 걸었을 것이다.

꿈은 몇 년 뒤 이뤄졌다. 봄 여름 가을과 겨울을 거쳐 1년간 40여 나라를 다녔다. 프랑스 파리의 음산한 뒷골목을, 네팔 히말라야의 황홀한 산길을, 케냐 마사이족의 우거진 숲길을 걸었다. 평생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내 젊은 날의 기쁨이었다.

출발지 해양박물관 앞에서.

해양박물관에서 출발, 16km 대장정에 들어서

30여 년 뒤 어느 날, 나는 태평양 어귀에서 출발해 태즈먼 바다에 이르렀다. 해 뜨는 동해(강릉)에서 해 지는 서해(인천)까지 도보여행을 했다고 보면 된다. 단, 시간이 없어 그걸 1/10로 줄여서 했다.

오클랜드에서 내로라하는 도보 여행지는 수십 곳이 넘는다. 그 가운데 조금은 하기 힘들고 귀찮은 여행이 코스트 투 코스트 워크웨이(Coast to Coast Walkway, 앞으로는  ‘코투코’로 함)라고 하는 곳이다.

오클랜드 시내 끝 뉴질랜드 해양박물관(NZ Maritime Museum, Viaduct 옆) 바로 앞에서 시작해 서쪽 끝 오니헝아만(Onehunga Bay)까지 걷는 길이다. 표지판에 나온 거리는 16km, 예상 시간은 약 5시간.

오클랜드는 1840년대 뉴질랜드 초대 총독 윌리엄 홉슨이 시내 중심 지역인 퀸 스트리트 인근의 땅을 마오리에게 인계(?)받으면서 시작됐다.

원래 이름은 타마키 마카우라우(Tamaki Makaurau), ‘백 사람의 사랑을 받는 배우자’라는 뜻이다. 그만큼 매력적인 사람(지역)이라는 뜻일 게다. 땅이 비옥하고, 강수량도 적당하고. 게다가 남북으로 9km, 동서로 2km가 넘는 곳이 없어 초창기 마오리들이 카누를 타고 모험을 하기에도 딱 알맞았다.

오클랜드와 그 인근(하우라키만, Hauraki Bay)의 섬 65개를 다 합친 면적은 1억9110만 평. 서울(1억 8330만 평)과 거의 비슷하다.

600년 세월 거슬러…화산 지대 다섯 곳 거쳐

코투코는 화산 지대 다섯 곳을 거쳐 간다. 그 사이사이 600년이 넘는 마오리 원주민과 19세기 초기 백인들의 역사가 도보 여행자를 과거의 시간으로 안내한다.

처음은 앨버트공원(Albert Park).

오클랜드대학(1883년에 설립)의 캠퍼스라고 해도 무방하다. 학생들의 쉼터는 물론 오클랜드 시민들의 놀이 공간으로도 쓰인다. 원래 마오리 거주 지역이자 초창기 파케하(백인)들의 상업지역이었다.

공원 한복판에는 조지 그레이 경(Sir George Grey 1812~1898)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레이 경은 군인, 탐험가, 정치가(총리 출신), 작가 등 다양한 경력을 보여줬다. 오클랜드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카와우 섬(Kawau Island)에 그가 살던 집이 박물관 형태로 보관되어 있다. 훌륭한 도보 여행지 가운데 한 곳이기도 하다.

대학을 가로질러 상경대 건물(OGGB) 아래쪽으로 쭉 내려가다 보면 오클랜드 도메인(Auckland Domain)이 나온다. 사철 푸른 자연의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야시시한 숲길이 보인다. 이정표에 러버스 워크(Lovers Walk)라는 ‘사랑스러운’ 글자가 쓰여 있다. ‘연인들의 길.’

호기심이 발동했다. 내 옆에 ‘연’(戀)은 없었지만, 잊지 못할 옛날의 그 ‘연’을 생각하며 걸었다. 10분도 안 걸리는 짧은 거리라 옛 추억에 젖기에는 적당한 길이다.

노파심으로 한 마디.

그 길을 걷다가 연인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거든 부디 애써 외면해 주시기를. 그게 여행자가 지녀야 할 예의라고 생각한다.

오클랜드 도메인, 1차 대전 참전 행사 열리기도

땀을 조금 흘리다 보면 윈터 가든(Winter Garden, 겨울 정원)이 나타난다. 인도네시아 등 더운 나라에서 온 각양각색의 꽃이 나그네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준다. 아담한 연못 앞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호사도 충분히 누릴 만하다.

오클랜드 도메인 길의 끝은 럭비나 크리켓 구장으로 쓰이는 넓은 잔디밭이다. 바로 앞에 오클랜드 전쟁 박물관(Auckland War Memorial Museum)이 있다. 수천 명은 너끈히 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넓은 잔디밭에서 제1차 세계대전 뉴질랜드 참전 행사가 열렸다. 수많은 젊은 생명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내주었다. 전쟁 박물관이 그곳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참고로 오클랜드 도메인은 1880년 처음으로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오클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다. 총면적은 200에이커(22만 평)에 이른다.

그다음 길은 오클랜드 그래머 스쿨(Auckland Grammar School)로 이어진다. 뉴질랜드 최고의 공립학교로 불리는 곳이다. 올해 설립(1869년) 150주년 기념행사를 한, 역사도 오래되고 뉴질랜드의 주요 인물을 많이 배출해 낸 명문 학교다.

다시 오르막길이다. 코투코 길 가운데 제일 난이도가 높다고 보면 된다. 산 정상은 거의 200m(196m)에 달한다. 여기까지 세 시간을 걷고 있다. 오클랜드 도메인 안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신 시간을 빼고 내내 발걸음을 이어 왔다.

정상에서 잠시라도 쉬고 싶었지만 쉴 수 없었다. 바람이 너무 거칠었다. 깊게 파인 분화구는 옛날의 열정을 다 어디에 숨겨 놓았는지 오로지 초록의 빛으로만 남아 있다. 그저 산꼭대기 한쪽에 고목 한 그루가 바람에 흔들릴지라도 넘어지지는 않는 고귀한 자태로 그 옛날의 자존심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시길, 물길, 숲길, 집길 등 다양하게 펼쳐져

산길을 내려와 주택가로 들어섰다. 헐벗은 겨울나무에 봄옷의 보풀털이 일고 있었다. 코투코의 묘미는 도시길, 물길, 숲길, 집길, 언덕길 등 다양하게 펼쳐져 있다는 점일 거다. 심지어 학교길도 있어 학문의 세계에 잠시 잠기는 맛도 즐기게 된다.

오클랜드대학 교육대 캠퍼스길은 에둘러 가지 않고 건물 사이사이를 걷게 만들어 놓았다. 코투코 길을 만든 사람의 뜻을 알 수는 없지만, 기분이 썩 괜찮다. 마치 다시 대학생이 된 듯한 느낌이다.

캠퍼스길과 주택길을 한참 걷다 보면 큰 길이 나온다. 마누카우 로드(Manukau Road)다. 그 앞에는 거대한 동상이 떡 버티고 서 있다. 콘월공원(Cornwall Park)을 오클랜드 시민에게 기증한 존 로건 캠벨 경(Sir John Logan Campbell, 1817~1912)이다. 콘월공원 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 뒤 원 트리 힐(182m) 정상까지 걸어 올라가면 된다. 코투코 화산지대 흔적 중 두 개는 죽은 상태로 있고, 하나는 조금은 산 상태로 남아 있다. 정상에서 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캠벨 경의 무덤이 보인다. 그가 제일 좋아하던 곳이다. 비석에는 라틴어로 이렇게 쓰여 있다.

“si monumentum requiris circumspice.”(이 글을 읽는 이여. 그의 유적을 찾거든 주위를 둘러보라.)

캠벨 경의 발자취를 콘월공원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산 아래 길로 10여 분 걷다 보면 아이들의 놀이터가 나온다. 원 트리 힐의 끝이다. 그다음부터 코투코 길은 조금은 밋밋한 길로 이어진다. 30~40분은 족히 걸어야 한다. 그 사이 기록에 남기고 싶은 곳은 젤리코 공원(Jellicoe Park).

이 주위는 유럽계 백인이 뉴질랜드로 오기 전 고구마(kumara) 경작지로 사용하던 땅이다. 마오리의 오래된 터였다는 의미다. 또한 카누를 타고 들어오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서해안의 끝으로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코투코의 끝은 오니헝아만이다. 사방을 둘러봤지만 아쉽게도 종착지 표지가 없었다. 마라톤 선수가 완주를 한 뒤 400m 트랙을 몸풀기 삼아 한 바퀴 돌듯이 만(Bay) 주위를 걸었다.

고속도로를 관통하는 구름다리(Taumau Reserve Bridge)가 보였다. 거기를 넘어서자 붉은 노을에 물든 마누카우 항구가 보였다. 뉴질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로, 코투토의 실질적인 끝이었다.

20km(원래보다 4km 더)를 여섯 시간에 걸쳐 걸었다. 걸음 수는 3만 보.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렸고, 길을 잃어 자주 헤매기도 했다. 하지만 저 멀리 호주로 가는 태즈먼 해협이 눈앞에 나타나자 ‘내가 동해에서 서해까지 걸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그 기쁨을 같이하겠다는 뜻인지 새 몇 마리가 노래를 부르며 내 주위를 날았다. ‘백로나 학 등 섭금류(조류를 생활 형태로 분류한 한 무리)의 땅’이라는 뜻과 어울렸다. 오래전 마오리나 초기 정착민처럼 오로지 두 발로만 40리 먼 길을 걸어온 나그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힘찬 날갯짓으로 다가왔다.

▣ 뱀의 다리(사족, 蛇足)

코투코 길은 동(와이테마타 항구)에서 서(마누카우 항구)로, 혹은 그 반대로 걸을 수 있다. 동-서 길은 노란 화살표 표시를 따라 걸으면 되고, 서-동은 파란 화살표를 따라 걸으면 된다. 내 생각에 노란색 표시는 해가 지는 것(노을 색)을, 파란색 표시는 해가 뜨는 것(파란 하늘)을 뜻한다고 본다.

미리 말해 두지만 종종 길을 잃을 수 있다. 내가 그랬는데, 그 누구(당신이라고 꼭 집어 말하는 것은 아니다)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글과 사진_박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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