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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 기자, 두 발로 걷다] 꽃밭에 앉아서, 그대를 보네 🎵


박성기 기자, 두 발로 걷다 (5)

오클랜드식물원(Auckland Botanic Gardens)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오클랜드식물원에 가던 날, 나는 운전대를 잡고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정훈희의 ‘꽃밭에서’였다.

정훈희가 이 노래를 부른 때는 1978년,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그 당시 정훈희는 꽃밭의 장미꽃처럼 예뻤다. 다른 가수와는 달리 약간은 서구적인 얼굴을 띤 그는 이 노래 하나로 뭇 남성의 심금을 울렸다.

“이렇게 좋은 날엔 이렇게 좋은 날엔/ 그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달리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1973년에 조성 시작, 1982년 시민에 개방

오클랜드식물원은 오클랜드 남쪽 마누레와에 자리 잡고 있다. 1973년 단장에 나서 10년 뒤인 1982년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그 사이 묵은 땅을 갈고, 예쁜 꽃을 심고, 멋진 길을 만들어 냈다. 면적은 64헥타르(19만 평), 그중 10헥타르(3만 평)에 자생 수목이 자라고 있다.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식물원이 분명하다.

도보여행은 식물원 뒷문부터 시작했다. 너무 일찍 꽃향기에 취하고 싶지 않았다.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20여 분을 걸었다. 햇살 좋은 토요일 오전 11시, 가족 친지와 친구 그리고 연인의 손을 잡은 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다들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는’, 또 다른 꽃들.

식물원의 대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장미공원부터 들렀다. 하지만 꽃들의 아름다운 자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꽃을 피우기에는 아직 일렀다. 대신 거친 가시만 눈에 들어왔다. 아쉽지만 ‘정원 장미꽃에 감사할 수 없으면, 장미꽃 가시에라도 감사해야’ 했다.

초창기 파케하(유럽계 백인)들이 뉴질랜드에 올 때 빵만 가지고 온 것이 아니었다. 사람은 결코 빵 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1800년대 초반, 아오테아로아에 장미 향이 처음으로 소개됐다. 영국과 유럽에서 장미를 들여와 집 앞뒤와 공원을 빛냈다. 그러다가 1880년대 자체 묘목장을 만들면서 뉴질랜드 전역에 퍼졌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 하나.

장미 열매(hips)는 시럽이나 차(茶)를 만드는 데 쓰인다. 장미 기름으로는 향수나 화장품 원액을 추출한다고 한다.

텅 빈 장미정원에 오래 있을 필요가 없었다. 꽃밭에 꽃이 없으면, 벌도 사람도 찾지 않는다.

미들미스트 레드 동백나무 전 세계에 두 곳만

다음은 동백꽃밭.

내가 둘러본 곳 중 가장 화려한 꽃 춤을 추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자주 멈췄고, 카메라 렌즈를 수십 차례 열었다. 꽃향기까지 담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동백은 뉴질랜드 사람들이 사랑하는 대표 꽃나무다. 예쁜 정원에 반드시 있어야 할 나무이기도 했다. 파케하들은 자포니카 동백을 많이 심었다. 오클랜드식물원에도 그 동백나무들이 시민들의 발걸음을 세우게 한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 둘.

와이탕이조약이 체결(The Treaty of Waitangi, 1840년)된 곳 인근에 미들미스트 레드(Middlemist Red)라는 동백나무가 있다. 이 꽃나무는 1883년에 심어졌는데, 지금은 같은 종을 지구상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전 세계 단 두 곳에서만 자라고 있다. 런던 서쪽에 있는 정원과 와이탕이 정원. 꽃 연구가들에게는 잘 알려진 내용이다.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핀 지역을 지나 이름을 알 수 없는 이런저런 꽃들이 피어 있는 아늑한 곳으로 들어갔다. 꽃물에 물들고 꽃향기에 취한지 한 시간이 훨씬 넘었다. 쉴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나무 의자에 앉아 유심히 꽃을 본다. 또 같은 노래가 입속에서 튀어나온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송이.”

포터 어린이 정원, 정글·사막 축소판 볼 수 있어

어린아이들 교육용으로 만든 포터 어린이 정원(Potter Children’s Garden)에 들어갔다.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나름 아기자기한 정글도 있고, 사막도 있다. 그 사이 미로 숲(maze)도 보인다. 전 세계 식물원의 축소판 같다. 어린아이와 함께 하는 나들이라면 꼭 들러야 할 곳이다.

정보를 얻으러 방문자 센터를 찾았다. 그 바로 옆에 꽃송이 두 개가 유독 반짝거리는 게 보였다. 암술과 수술을 중심으로 수십 마리의 벌(친구)들이 날개를 휘날리며 축하해 주고 있었다. 남태평양 출신으로 보이는 신랑 신부의 결혼사진 촬영이었다. 길거리에 10m는 넘어 보이는 하얀 리무진을 석 대나 빌린 것으로 봐서 평범한 집 자제들은 아닌 듯 싶었다.

‘부디, 꽃처럼 세상에 향기를 내며 살기를.’

오클랜드식물원에는 꽃이나 꽃나무만 있는 게 아니다. 나를 황홀하게 만든 것은 곤드와나수목원(Gondwana Arboretum). 곤드와나 시대는 우리가 사는 지구가 오대양 육대주가 아닌 하나의 대륙으로 이뤄졌던 때다. 적어도 1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중 남부 곤드와나 지역을 소박하게 재현해 놓았다.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그 위엄을 판단하기 힘들지만 ‘곤드와나’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비범함이 내 발길을 오랫동안 멈추게 했다.

파푸아뉴기니산 클링키 나무 90m까지 자라

여러 나무가 곤드와나 시대의 잎사귀 한두 개를 상징적으로나마 내게 보여줬지만 그 가운데 파푸아뉴기니에서 온 클링키(Klinkii)가 유독 눈에 띄었다. 나무 앞에 있는 설명 글. ‘이 나무는 90m까지 자라기도 함’ 때문이었다. 30층 아파트 높이를 훌쩍 뛰어넘는, 그 위용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경외감이 들었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 셋.

침엽수(Conifers)는 3억5천만 년 전에, 은행나무는 2억8천만 년 전에, 공룡은 2억5천만 년 전에 지구상에 나타났다. 그 뒤 1억 년이 지나서야 새(bird)가 하늘을 날았다. 사람(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는 언급하기조차 격에 안 맞는 한참 뒤의 일이다.

그 밖에 볼 것이 여러 곳 더 있다. 길게 언급할 수는 없지만 멸종위기 자생식물(Threatened Native Plants)길과 자생식물 식별 오솔길((Native Plant Identification Trail)이 그중 대표적이다. 오클랜드식물원이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보물이라고 보면 된다.

식물원이 왜 이곳을 따로 만들었는지는 직접 발로 걸으며 체험해 보기를 바란다. 대신 천천히, 꽃 내음 번지는 속도로, 나무 잎사귀 흔들리는 속도로 발걸음을 떼어야 한다. 발걸음 사이사이 ‘해답’이 숨어 있다.

가장자리에 4km 푸히누이 개울물 따라 걷는 길도

참, 눈 밝은 여행자라면 방문자 센터 옆에 아담한 도서관이 눈에 띌 것이다. 1992년에 문을 연 이 도서관은 ‘오클랜드식물원의 친구들’(The Friends of the Auckland Botanic Gardens)의 후원으로 세워졌다. 부럽기 한이 없다. 소장하고 있는 책과 잡지는 4,500권이 넘는다. 더 부러운 것은 오로지 이 도서관이 자원봉사자의 손발로 유지된다는 것. 뉴질랜드가 왜 선진국인지 잘 알 수 있다. 월, 수, 금, 토요일 오전 11시~오후 3시 문을 연다.

나는 명색이 도보 여행자. 꽃 타령만 해서야 되겠는가. 식물원 가장자리는 잘 짜인 트램핑 코스다. 푸히누이 개울(Puhinui Stream)을 따라 4km 걷는 길도 있고, 야자나무와 멸종 위기 식물과 나무를 따라 걷는 길도 있다. 꼭 그 길이 아니더라도 이리저리 꽃과 나무 사이를 의미 있게 헤매며 걷다 보면 10km가 훌쩍 넘는다.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아니 꽃도 보고 길도 걷는 훌륭한 도보 여행지다.

“나에게 두 덩이의 빵이 있으면, 한 덩이는 먹고 한 덩이는 팔아서 꽃을 사리라.”(코란)라는 말이 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날 백만 송이의 꽃 잔치를 즐겼다. 하늘은 푸르렀고, 꽃들은 빛났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소풍이었다.

네 시간이 넘게 걷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도 모르게 또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꽃밭에 앉아서, 그대를 보네. 그님이 ‘다시’ 오신다면 얼마나~ 얼마나~~.”

꽃밭에서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이렇게 좋은 날엔 이렇게 좋은 날엔
그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뒷 부분은 생략)


글과 사진_박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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