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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화의 상담 이야기] “나도 해봤는데 별 도움이 안 돼요”

정인화의 상담 이야기(5)


상담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예도 있고
상담사가 모든 사람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담에 대한 접근 방식, 첫인상과 인생의 경험이
상담을 찾는 사람에게 다른 영향을 미친다.


오늘은 키위 남자 J가 영국에서 캐나다 여자 C를 만나서 살다가 뉴질랜드로 온 부부를 만나는 날이다. J는 건축일을 하는 데 너무 바빠서인지 뉴질랜드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C한테 관심을 둘 시간이 없었다.

C는 혼자라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들은 겉으로 볼 때는 아주 멋있는 부부이다. 생긴 것뿐만 아니라 옷을 아주 잘 차려입고 상담실에 나타난다. 하지만, 이 부부를 만나는 날에는 상담을 어떻게 해야 하는 설렘보다는 뭔가 모르게 불편해서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부부 관계 가설을 검증할 시간을 안 줘

J는 C는 같이 앉아 있어도 얼굴을 보지 않는다. 전형적인 키위 남자라서 그런지 J는 감정 표현을 잘 안 한다. 그는 “영국에서도 상담해 봤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됐다” 라든가 “그런 얘기는 많이 했어요” 하면서 고개를 돌린다. J와 앉아 있으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기가 힘들다. 부부의 문제는 다 C의 잘못이다. 거기에다 술까지 마시고 있으니 C를 한심하게 쳐다본다.

내 말을 계속 끊어내는 J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내가 상담치료사로서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그럴 때는 창피해서 상담실을 뛰쳐나가고 싶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부부 관계에 대한 가설을 천천히 검증할 시간을 그는 주지 않는다. 이해하고 싶어 다가가면 문을 꼭 걸어 잠근 것 같이 가까이 갈 수가 없다.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도 변화가 없으면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해 보라고 비꼬고 싶다.

자신이 느끼는 고통 쉽게 털어놓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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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하면서 J와 C 같은 부부를 만나왔다. 이들 중의 대부분은 관계가 틀어진 데서 오는 외로움과 고통, 살아가는 방향을 잃어버린 후 느끼는 두려움, 심한 감정 기복에서 오는 혼돈, 잠자기 위해 마시는 술의 남용, 또는 누군가와 이야기 싶은 충동 등의 문제를 가지고 상담실에 온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신이 느끼고 있는 고통을 쉽게 털어 놓지는 않는다. 본인에게는 문제가 없고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다고 믿는 J와 같은 피상담자는 자기방어가 심해 자신의 취약한 모습을 표출하지 않으려 한다. 이들하고는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듯한 답답함과 밀고 당기면서 생기는 감정의 소모에서 오는 피로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상담에 실패하기가 싶다.

또한, “해 봤는데 도움이 안 돼요”란 말을 피상담자에게서 들으면, ‘나는 다르다’라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상담사 혼자서 치고받고 빠지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이럴 때도 보나 마나 상담은 실패로 끝난다. 피상담자가 본인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늘어날수록 상담은 성공할 확률이 높다.

피상담자한테 변화 의지를 끌어내는 게 중요

과거의 경험에서 오는 편견으로 상담을 피하면서도 가족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상담실을 찾은 후, 상담의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고 돈과 시간의 낭비라고 하는 피상담자도 있다. 그들에게는 그들 말을 수긍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상담사를 찾는 방법을 설명해준다.

왜냐하면 상담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예도 있고 상담사가 모든 사람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담에 대한 접근 방식, 첫인상과 인생의 경험이 상담을 찾는 사람에게 다른 영향을 미친다.

빙산의 일각만 보고 얘기하면서 상담의 효과에 회의를 표하는 피상담자에게는 변화에 대한 의지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상담은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하고, 더 뜻깊은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되며, 건강이나 생활의 질을 올려 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처럼 근거를 기반으로 한 상담의 혜택을 설명해주면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상담하면서 J는 자신이 힘들어하는 점을 이야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무엇인지 C에게 물었다. C는 관심을 보이는 J가 고마웠던지 술의 양을 줄이려 노력했다. 여섯 달 뒤 그들은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상담실을 떠났다.

상담에 관한 부정적인 생각을 다 얘기해야

일 년이 지나자 성공 케이스라 믿었던 그들이 돌아왔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내려앉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실패라는 생각보다는 무엇 때문에 다시 돌아왔는지 궁금해졌다. 부부관계에서 계속 나타나는 부정적인 패턴을 바꾸면서 생활의 질을 올리고 싶다 했을 때 뛸 듯이 기뻤다. J는 자신의 경험에서 오는 상담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관을 비난 없이 잘 들어준 나에게 고맙다고 한다.

동료들이 피상담자에게 해줄 가장 중요한 한마디를 부탁했을 때, 미국의 유명한 심리분석가인 글렌 가바드는 피상담자가 상담자와 상담에 관한 부정적인 생각을 숨기지 말고 얘기하는 거라 했다. J와 C 부부와 얼마나 오랫동안 상담 관계를 지속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들과 숨김없이 이야기하면서 같이 걸어갈 여정을 상상하니 가슴이 뜨거워져 온다.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의 삶의 더 윤택해지기를 바란다.


정인화 _심리 치료사

021 0262 3579
junginhwa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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