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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심의 독서일기] “법은 정의에 관심이 없다…체제 유지가 목표”

평상심의 독서일기(9)

법의 테두리 안에서도 안착하지 못하고,
언론에서도 잊힌 ‘합리적 의심’이
지금 일반 시민의 품에 덜컥 던져졌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너무 늦지 않다는 생각에 다행스럽기도 하다.


단숨에 읽었다. 간혹 외국 소설에서 판사의 삶을 다룬 이야기는 읽어본 기억이 있지만, 우리나라 소설로 내가 접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높은 자리에 앉아 판결봉을 내리치는 그들도 생각하는 동물이고 사회적 동물일 뿐만 아니라 감정을 가진 인간이다. 소설을 통해 그들의 인간적인 고뇌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민사소송 판결을 담당하던 한 판사가 처음으로 살인사건 합의심의 부장 판사가 된다. 그는 한 인간의 죽음의 원인을 피고에게 물어 죗값을 치르게 할 수 있는 판결의 중심에 있다. 판결의 결과에 따라 정의가 세워질 수도 있고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 판사가 느끼기에는 살인자가 분명한 것 같은데 검사가 제시하는 증거는 충분하지 않다. 배석 판사들도 증거가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누가 봐도 유죄인데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2항은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대법원 2017. 10. 31. 선고, 2016도21231, 판결]
형사소송법 제308조(자유심증주의)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
-출처: http://law.go.kr/

판사가 하는 일은 원고(검사)와 피고(변호사)의 주장을 듣고 주어진 규칙에 따라 어느 편의 손을 들어 줄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어쩌면 아주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판결 과정뿐만 아니라 검사나 변호사의 주장이 주어진 매뉴얼(법)에 따랐는가를 검토하는 전문 직업인이 판사이다. 다만 다른 전문직업인의 산출물과는 다르게 판사의 결정에는 토를 달 수 없다는 점이 다르다.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면 피고나 원고는 상급 법원에 항소하는 방법이 있다.

아무리 기계적인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0과 1이나 흑백처럼 명확하게 판단할 수 없기에 판사가 판결을 내림에 있어 ‘합리적 의심’이 생기는 경우,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라고 매뉴얼은 지시한다. 판사는 합리적인 판단을 할 뿐 정의를 심판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 역시 자연과학도이자 의사였다. 증거 없이 단언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우리 판사들과 다를 자 없었다.(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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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부장 판사는 “그녀가 죽였다”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매뉴얼과 배석 판사들과의 합의를 무시하고 단독으로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내려 버린다. 피고는 항소했고, 상급심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진다. 상급심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부장 판사는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자위한다.

“사람들이 자주 오해하는 게, 법이 정의를 찾아줄 거라는 환상입니다.”(183쪽)
“법은 정의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규칙 속에서 예측 가능하게 돌아가는 체제의 유지가 우선 목표입니다.”(184쪽)

그럼 정의는 누가 세우는가? 살인자라고 의심되는 피의자를 특정하여 조사하고 법정에 세우며 죄를 묻는 자는 검사이다. 검사가 정의를 세우는 자인가? 재판정에 제시한 증거들이 합리적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의 여부는 검사가 일차로 물어봐야 할 일이다. 그런데 가능한 감정을 배제하고 자료만으로 판결해야 하는 판사에게도 어려운 문제를, 피의자를 직접 대면하고 조사했던 검사는 가능한가 하는 문제는 제기해볼 만한 것이다.

‘확증편향’,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이다. 쉬운 말로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가 바로 확증편향이다. 우리의 삶에 만연한 사고 형태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가장 대표적인 속담이다. 피의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발생하는 현상들, ‘저놈이 범인이다.’를 증명하기 위해 벌이는 수사의 형태는 영화에서만 발생하는 것일까?

최근 고국에서 이슈가 되어버린 검찰 개혁은 수사와 기소와 관련한 권한이 한 기관에 주어져 발생하는 문제들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다. 과잉조사만 문제일까? 조사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아닐까? 무고한 사람을 법정에 세우는 것만이 문제일까? 조사 결과 유죄가 분명한데 법정에 세우지 않은 경우는 없을까? 형량은 정함에 있어 불편부당한가? 과거 조작된 사건들에 대하여 그들은 자유로울까? 군부독재 시절 안기부, 기무사 등에 견제를 받았던 검찰의 권력은 이미 임명권자를 넘어선 듯 보인다.

젊은이와 백발이 성성한 어른이 다투고 있다. 들어보니 잘못은 어른이 했지만, 사람들은 젊은이를 나무란다. 젊은 사람이 어른한테 그렇게 버릇없이 대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비록 작은 것이라도 힘과 권력 또는 권위를 누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억울한 측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한 사람을 조사하고 법정에 세우는 검사나 판결을 내리는 판사도 사건 정황에 대해 생기는 개인의 감정과 편견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도 안착하지 못하고, 언론에서도 잊힌 ‘합리적 의심’이 지금 일반 시민의 품에 덜컥 던져졌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너무 늦지 않다는 생각에 다행스럽기도 하다.

그나저나 높이 보였던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딱하게 보인다.

평상심_독서가, 오클랜드 교민
뉴질랜드북카페 카페지기

오클랜드 도서관 도서 검색 바코드>
『합리적 의심』
바코드: 9788934984641
도서관바로가기: https://discover.aucklandlibraries.govt.nz/iii/encore/record/C__Rb3636656

*위 책은 오클랜드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습니다. www.aucklandlibraries.govt.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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