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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화의 상담 이야기] 내 덩치가 어때서

정인화의 상담 이야기(6)


내면의 소리는 어떤 형태라도 존재하면서, 우리를 조절한다.
그 소리 속에는 힘든 세상에서 다치지 말고
안전하게 살아가려는 의도를 담았을 거다.
하지만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면,
내면의 소리는 파괴적이거나 방해꾼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몇 해 전에 송해 씨가 진행하는 ‘전국노래자랑’을 유튜브에서 보다가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를 들었다. 내용이 재미있어서 구글에서 누가 이 노래를 불렀나 찾아봤다. ‘금과 은’의 오승근이었다.

오승근과 임용재의 ‘금과 은’은 내가 칠십 년 대에 좋아했던 듀엣이었는데, 트로트 곡을 혼자 부르는 그가 조금은 낯설었다. ‘사람이 변할 수도 있겠지’ 하며 ‘내 나이가 어때서’를 흥얼거린다.

처음에는 가사가 재미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노래는 나를 억눌러 왔던 내면의 소리에서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주었다.

남들의 기대에 못 미치면 난 어떻게 될까

어릴 때 나는 또래에 견줘 몸집이 무척 컸다. 아버지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장군감’이라고 불렀다. 장군처럼 살려고 노력했는데, 술을 얼큰하게 드신 후에는 아버지는 뜬금없이 ‘덩칫값도 못하는 놈은 필요 없으니 나가.’라고 소리도 지르셨다.

나이가 들면서 ‘나잇값’ 좀 하란 소리를 자주 들었다. 직장 동료 중의 몇몇은 “나잇값도 못 한다”고 하면서 나를 깔보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덩칫값과 나잇값이란 이야기만 나오면 지금도 쉽게 얼어버린다. ‘남들의 기대에 못 미치면 난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항상 달고 살았다.

이런 내면의 소리 때문에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은 하는데, 상대방의 반응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면 자동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 날에는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는 했다.

내면의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아

삼십 대 아들을 둔 J 때문에 상담실을 찾아온 R은 대학에서 강의하는 오십 대 후반의 백인 여성이다. 그는 키는 작지만 후덕하게 생겼다. 그를 보는 순간에 어른들이 좋아하는 전형적인 엄마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J는 교통사고로 잃어버린 동생에 대한 죄책감으로 술과 마약으로 이십 대를 보냈다. 삼십 대에 들어서는 돈을 벌어 자립할 생각은 안 하고 엄마에게 손이나 벌리는 아들이었다. 십 대 말에 술에 젖어 하룻밤 사랑으로 얻은 아들은 J의 엄마가 키우고 있었지만, 그 자신은 아버지의 역할을 아주 잘해 왔다고 믿고 있었다.

상담하면서 R의 생각과 행동이 따로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는 내면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J를 향한 그의 희생은 하나님이 알아줄 거라는 아주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잘해줘도 변화가 없는 J를 보면서 R은 지쳐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힘들어하는 그를 보면서 나의 가슴이 아프다고 털어놓았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내려놔도 괜찮을 것 같다고도 얘기했다. 그는 멍하니 나를 쳐다보다가 울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완벽한 사람이 되면

‘내가 상담이 필요한 사람이 아닌데’라면서 한동안 아들에 관한 이야기에서 그에게 초점을 맞추는 상담을 껄끄러워했던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릴 적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쉽게 만족하지 못하고 작은 일에도 큰소리치는 엄마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그는 눈치 있게 행동을 하면서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혼자 다 했다고 한다.

의존해야 할 나이에 혼자 생존하는 법을 배웠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원하는 것을 감추거나 의식 밖으로 밀어냈던 그의 어린 시절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완벽한 사람이 되면 모든 사람이 좋아하지 않았을까?’ 하는 내면의 소리에 짓눌려 살아온 시간이 아깝다고 하면서 그는 눈물을 떨군다. 말과 행동이 하나로 일치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과거의 상처로부터 치유되어가는 증거라는 생각을 한다.

내면의 소리의 장단점을 구분해야

내면의 소리는 어떤 형태라도 존재하면서 우리를 조절한다. 그 소리 속에는 힘든 세상에서 다치지 말고 안전하게 살아가려는 의도를 담았을 거다. 하지만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면, 내면의 소리는 파괴적이거나 방해꾼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어릴 때 좋은 뜻으로 어른들이 던졌던 덩칫값이나 나잇값을 하라는 얘기 때문에 나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다른 모습으로 살려고 한 적이 많다. 이런 모든 면을 다 끌어안고 싶다. ‘내 나이가 어때서’와 ‘내 덩치가 어때서’를 부르면서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앞으로 살아갈 날도 많이 남았다. 내면의 소리의 장단점을 구분하고 나의 모든 면을 포용하면서 살아간다면 인생의 마지막 날에 어떤 평가를 할지 궁금해진다.


정인화 _심리 치료사

021 0262 3579
junginhwa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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