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NZ라이프 여행 공포 영화 촬영장에 들어가는 듯한 모키터널을 지나

[박현득의 사진 더하기 여행] 공포 영화 촬영장에 들어가는 듯한 모키터널을 지나

박현득의 사진 더하기 여행(20)

‘잊혀진 세계길’(2)(Forgotten World Highway, SH43)

밤이 새도록 퍼붓던 폭풍우가 아침에는 멎는가 했는데 ‘지형적 영향으로 인한 국지성 호우’가 우리의 여행길을 더욱 다양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산악 일출 풍경이라도 담을 요량으로 다들 일찌감치 카메라를 들고 나왔는데 보이는 건 시커먼 구름뿐. 저 구릉 너머로 루아페후 설산이 잡혀야 하는 건데∙∙∙. 아쉽게도 첩첩 산중의 벗겨진 구릉지 구경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다음 번 날 좋을 때 다시 와야 할 것이다.

세숫대야로 물을 들이 붓듯이 내리는 비

그러니 어찌하랴. 일단 출발했다. 기껏 모퉁이 하나 돌았을까? 세숫대야로 물을 들이붓는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말이리라. 어쩌다 울타리를 빠져나온 송아지 세 마리가 길인지 풀밭인지 구분도 못 한 채 길 한가운데서 쩔쩔매고 있었다. 우리 역시 같은 입장이라 송아지들을 조심스레 뒤따르는 수밖에. 3,000cc 고속 주행할 수 있는 차든, 디젤 터보 엔진이 붙은 차이든 이럴 땐 그냥 소달구지와 다를 바 없다.

여기서도 지질에 관심이 많은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늙은 토질에선 도저히 엄두도 못 낼 수직 깎음 공법(?). 흙이 단단하여 뉴질랜드 땅이 젊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하수를 품은 청석배기 지형을 통과할 땐 낙석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군데군데 산사태로 길이 반쯤 막혀 있다. 간밤에 쏟아져 내린 것 같은 따끈따끈한 산사태를 가까스로 피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지. 길이 통째로 막혀버렸으면 먼먼 길을 되돌아가는 수밖에. 이런 여행길은 운도 따라야 하는 것 같다.

사극 전투장면으로 적합한 모키터널

빗줄기가 좀 멎고 달릴 만하니 이번엔 또 뭔가? 딱 차 한 대만 통행할 수 있는 만들다 만 것 같이 생긴 좁은 굴을 만났는데 통과하기엔 너무 으스스했다. 저 속을 들어가면 어디론가 깊은 곳으로 빠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일으키게 한다. 꼭 옛날에 가본 할리우드 공포 영화 촬영 세트장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어두컴컴한 미로를 “으아아악” 소리를 냅다 지르며 통과하고 나왔더니 커다란 안내판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 터널이 모키터널(Moki tunnel)이란다. ‘호빗 굴’이라고도 불리는 이 터널을 만든 사람들의 모습과 건설 과정이 소상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여길 통과한 후로는  길고 음침한 계곡 길이 이어지는데 사극의 전투장면 촬영장으로 하면 적합할 듯싶다. 저소공포증이 있는 나에게는 꼭 어딘가 갇힌 기분이다. 잔뜩 찌푸린 날씨에, 다니는 사람도 없고 차도 뜸한 이 한적한 곳에 내부가 컴컴하게 생긴 공중 화장실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들어가기가 좀 으스스했다. 이 협곡 서쪽은 타라나키 생활권이고 이 협곡을 지나면 루아페후 생활권이다.

양을 치는 선한 목자의 표정이 명품

이렇게 고약한 것만 있는 건 아니다. 고속도로가 끝날 무렵 도로를 가로지르는 한 떼의 양 무리를 만났다.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 떼는 흔하게 보지만 이렇게 큰 무리가 도로를 지나가는 광경을 보는 것은 행운에 속한다. 목자와 양몰이개가 휘파람 소리 하나로 척척 양 떼를 잘도 몰아간다.

이 개는 짖지도 않는다. 눈빛으로 양 떼를 몰아간다고 한다. 이런 행운을 어찌 그냥 넘기랴? 다들 차에서 나와 셔터를 누른다. 한 분은 교통정리를 자처한다. 역시 양은 양이다. 순진하고 착하게 생긴 모습들이 우리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더하여 이 깊은 산골에서 양을 치는 목자의 선한 표정이 명품이다. “이야 저분이야말로 진짜 목자네.”

커다란 고개 하나에 더 올라서니 강물의 흐름이 반대로 바뀌고 이제부턴 서서히 내려가는 기분이다. ‘루아페후’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꼬꼬 팬들이 길거리를 가득 메우며 환영 나온다. 후후. 우리가 무사히 통과해 나왔다고 온 동네 닭들이 다 나와 우릴 반긴다. 꼬꼬, 알았으니까 길이나 비켜주렴∙∙∙.

<다음 호에 계속>

박현득_사진작가 겸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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