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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 기자, 두 발로 걷다] 다음 세대를 위해 ‘더불어, 숲’을 일궈 나갑시다


박성기 기자, 두 발로 걷다 (9)

리버헤드 숲(Riverhead Forest)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새벽 공기를 가르며 차를 몰았습니다. 40분 정도 걸려 도착한 곳은 오클랜드 서북쪽(코츠빌, Coatesville)에 있는 리버헤드 숲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또 다른 도보 여행자와 만나기로 했습니다.(Robinson Road 끝, 막다른 길)

그 여행자를 기다리는 사이, 백인 노부부가 차에서 내렸습니다. 한평생 착하게 살아왔을 것 같은 곱게 늙은 분들이었습니다. 오래전 영국에서 온 노부부는 아침마다 한 시간씩 이 숲을 걷는다고 했습니다. 무려 스무 해가 넘게 그렇게 해 왔다고 합니다. 한결같은 그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어졌습니다.

제 길벗은 내년이면 예순이 됩니다. 그분은 시간만 나면 산과 길을 걷습니다. 리버헤드 숲에도 셀 수 없이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길벗은 숲길을 걸으며 옛날 고향을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 부른 동요도 흥얼거리고, 나무와 얘기도 나누며 치유를 받는다고 합니다.

아침 7시, 우리 두 사람은 숲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이삼 분도 안 돼 호젓한 숲길이 나왔습니다. 맑은 초록 공기가 제 영혼을 깨웠습니다. 간밤에 비가 왔는지 솔방울과 솔잎에는 물기가 촉촉했습니다. 바람도 적당하게 불어, 도보 여행하기에는 딱 좋은 날씨였습니다.

리버헤드 숲을 이루고 있는 땅은 19세기 중반 영국 왕실이 마오리로부터 사들였습니다. 1925년 이 땅을 소나무밭으로 쓰자는 의견이 나왔고, 두 해가 지난 1927년 소나무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숲의 면적은 4,846헥타르, 1,460만 평이나 되는 넓은 땅입니다. 다섯 평마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고 하면 무려 300만 그루를 심을 수 있습니다. 코츠빌부터 쿠메우까지 길게 걸쳐 있습니다.

‘오십구비’(五十九非)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예순이 된 어떤 분이 ‘오십 구세까지의 삶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으로 쓴 말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은 예순부터’라는 말일 겁니다.

제 길벗은 한평생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중고등 학창 시절도, 군 복무도, 사회생활도, 이민살이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돌아봐도 아쉬울 게 없는 성실, 그 자체의 삶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는 조금 쉬엄쉬엄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숲을 즐겨 찾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고 했습니다.

리버헤드 숲은 195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나름 성공했다는 확신에 들어섭니다. 스무 해가 넘도록 숱한 실패를 한 결과입니다. 소나무를 심기에는 흙의 질이 좋지 않다는 점을 몰랐기 때문이지요. 그 문제를 해결한 뒤 리버헤드 숲은 오클랜드 인근을 대표하는 소나무 숲이 됩니다.

일찍이 뉴질랜드 정부는 1960년대 후반쯤 되면 건축용 목재가 많이 부족할 거로 예측했습니다. 리버헤드 지역을 개간해 소나무 숲으로 만든 이유입니다. 다음 세대, 다다음 세대에게 더불어, 숲을 만들어 주겠다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이 한 권 있습니다. 만약 제 서재에 백 권의 책만 남겨 두어야 한다면, 두 번 생각할 필요가 없는 책입니다.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가 쓴『나무를 심은 사람』입니다.

이 책은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한 늙은 양치기에 관한 실화입니다. 프랑스 프로방스 황무지에다 날마다 나무를 심어 훗날 숲을 일구고, 그 숲 덕택에 마을이 활기를 찾게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심어야, 누군가는 열매를 딸 수 있다는 점을 감동적으로 그렸습니다.

소나무 숲을 계속해 걸었습니다. 어린 소나무부터 곧 수확을 앞둔 늙으신 소나무까지 다양하게 볼 수 있습니다. 생을 다해 길에 떨어진 솔잎은 마치 양탄자처럼 느껴집니다.

참, 숲속의 공기는 대도시 공기보다 이백 배나 맑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가요. 나무에서 나오는 항균성 물질, ‘피톤치드’(phytoncide)라는 것이 있습니다. 몸에 아주 좋은 물질이지요.

그런데 소나무에는 이 물질이 다른 나무에 견줘 훨씬 풍부하다고 합니다. 소나무 숲을 걸으면 피톤치드로 샤워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의 날숨이 우리의 들숨이 되어,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놀라울 뿐입니다.

정부는 1986년 리버헤드 숲의 관리권을 카터 홀트 하비(Carter Holt Harvey)에 넘겨주었습니다. 이 회사는 뉴질랜드 최고의 부자, 그레엄 하트(Graeme Hart)가 대표로 있는 곳입니다.

개인 회사가 숲을 맡은 뒤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그 공간을 우리도 즐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시민들에게 소나무 숲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걸을 수도 있고, 개와 산책할 수도 있고, 승마를 할 수도 있고, 생존 게임 놀이도 할 수 있고, 산악자전거 경주도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숲이 된 것입니다.

제 길벗은 한때 목수로 일을 했다고 합니다. 자기 집도 손수 지었으니까, 실력 있는(?) 목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길벗 말에 따르면 소나무는 H1~H6 등급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H’는 ‘hardness’(나무의 ‘강도’)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땅속 깊이 들어가야 하는 나무는 H6를, 집 안 칸막이 용도의 나무는 H1을 쓴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순간, 내 삶의 강도는 과연 어떤 단계나 될지 궁금해졌습니다.

제게는 세 아들이 있습니다. 이름 끝이 다 ‘솔’로 끝납니다. ‘큰 소나무’, ‘예쁜 소나무’, ‘진짜 소나무’가 되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입니다. 아시다시피 소나무는 솔, 솔나무, 소오리나무라고도 합니다. 세 나무(아들, 삼솔)가 서로 힘이 되어 줘 삼림(森)처럼 든든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소나무의 평균 수명은 500~600년, 그래서 꽃말이 ‘불로장생’이라고 합니다. 잎은 소화불량, 꽃은 이질, 송진은 고약의 원료로 쓰입니다. 송편을 찔 때 솔잎을 솥 밑에 까는 이유는 따로 얘기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겁니다.

리버헤드 숲은 아주 넓고 큽니다. 들어가는 입구도 여러 곳입니다. 큰길도 있고, 작은 길도 있습니다. 어린나무, 젊은 나무, 늙은 나무, 그리고 죽은 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더불어, 숲’을 일굽니다. 25년을 앞뒤로 해서 벌어지는 삶의 순환입니다.

앞세대가 잘 살아야, 뒷세대도 잘 살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심지 않으면, 결코 열매를 딸 수 없습니다. 자연은, 소나무는 그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꽃을 피우고, 방울을 맺고, 땅에 떨어져 거름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삼대를 생각하고, 중국인은 이대를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어떨까요?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네 시간을 걸었습니다. 제 길벗과 그사이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오십구비’의 삶을 털어놓은 겁니다. 저는 한 ‘사람’(나무)이 걸어온 길에 경의를 표합니다. 제가 또 ‘한 사람’(나무)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숲’(林)이 될 것입니다. 사람 둘, 나무 두 그루만 있으면 ‘숲이 된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으신가요.

리버헤드 숲은 도시 사람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곳입니다. ‘쉴 공간’이라는 말입니다. 힘들지만, 울더라도 뿌려야 합니다. 우리 세대로만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서로 기댈 수 있는 나무로 서야 합니다.

우리 모두 다음 세대를 위해 더불어, 숲을 일궈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글과 사진_박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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