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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화의 상담 이야기] 그 남자는 왜 괴물이 되기를 거부했을까

정인화의 상담 이야기(7)

그러다가 C는 자기 모습을 봤다.
남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으면서 거칠게 이야기하는 행동을 통해
생존하기 위해 괴물이 되어가는 모습이었다.
살아가는 동안에 아무리 두들겨 맞더라도 C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뉴질랜드에 삼십 년 가까이 살면서 오클랜드의 스카이라인만큼이나 나도 많이 변했다. 그중의 하나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다. 무조건 기다리는 성격에서 상황에 따라 적응하는 능동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이 되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소수민족의 일원으로 살면서 겪었던 아픔이 있다.

다른 민족과 부대껴 살며 상처 많이 받아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다른 민족과 부대껴 살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 문화와 개인적인 차이에서 오는 이해의 부족이 주된 원인이었다. 아직도 다 치유가 안 되어 있어서인지, 가끔가다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르면 가슴이 아파온다.

상담을 하면서 나와 비슷한 경험한 피상담자를 간혹 만난다. 그들과 앉아 있을 때는 나의 경험을 투사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또한, 그들의 이야기와 나의 경험을 잘 구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을 보는 게 아니라 그들 속에 있는 나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피상담자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중국에서 온 오십 대 초반의 C라는 남자였다. 그는 치과 의사였던 과거의 경력을 잊고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었다. 사회 정의, 불공정, 불평등 등에 관심을 둔 그는 어딘가 모르게 어둡게 보였다.

C는 주류사회에 속한 사회복지사로 일했던 지난 십오 년 동안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다. 처음에는 동료들이 관심을 가지고 대해 주는  것같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상사가 다른 동료들 앞에서 무안을 줬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처음에는 위로를 해주던 동료들도 피하는 느낌을 받았다. 외톨이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너무 아팠고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처음에는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에 열심히 일하면서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지나도 변화가 없자 C는 생각과 행동이 부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다른 동료들과 눈도 맞추지 않았고, 말도 잘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회의 시간에는 윤리적이거나 전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강하게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

미래 그릴 수 있어야 살아갈 수 있어

C는 공과 사를 구분한다는 마음에서 전문적인 문제에서 본인의 의견을 계속해서 표현했다. 하지만 동료들은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고 나아가 귀찮아하기까지 했다. 그럴 때마다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도덕적인 우월감으로 힘든 시간을 버텼다.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크는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미래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직장에서 미래를 그릴 수 없어 C는 절망하고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니 극단적인 생각이 C를 괴롭혔다.

‘나에게 이런 일이 왜, 왜, 왜 생겨?’

한참 동안 ‘왜’만 생각하다가 자신을 못살게 구는 상사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는 유혹에 빠졌다. 나에게 상처를 준 만큼 상처를 줄 생각을 하다 보니까 상상의 끝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그러다가 C는 자기 모습을 봤다. 남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으면서 퉁명스럽고 거칠게 이야기하는 행동을 통해 생존하기 위해 괴물이 되어가는 모습이었다. 살아가는 동안에 아무리 두들겨 맞더라도 C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살면서 이유 없이 계속해서 두들겨 맞더라도 그에 대한 반응은 C가 선택할 수 있다는 자각이 변환점이었을까.

그는 변하기 시작했다.

집과 직장밖에 몰랐던 C는 생활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달렸다. 영화도 보러 가고 고전 음악을 듣고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을 늘렸다. C는 생활이 다양해지니까 직장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디기가 훨씬 쉬워졌다.

세상을 오랫동안 삐뚤어지게 봤던 C는 긍정적인 모습을 찾는 것을 힘들어했다. 처음에는 내 옷이 아닌 것 같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편해졌는지 쉽게 삶에서 긍정적인 면들을 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없는 것을 메꾸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보다 있는 것을 찾아 넓히는 게 훨씬 쉽다는 것을 C는 느꼈나 보다.

그뿐만 아니라 나도 가진 게 있다는 거를 자각했을 때 그것은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무엇인가를 찾는 자극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그에게 말해 본다.

미운 오리 새끼에서 우아한 백조가 되려면

많은 자기방어기제 중에서도 C는 승화라는 자기방어기제를 통해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욕구와 충동을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행동을 통해 그의 안에 있던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면을 감싸 안았다. 오랜 기간에 걸쳐 받았던 상처가 폭력적으로 표현될 수도 있었는데 C는 승화를 통해 괴물이 되기를 거부했다.

삼십 년이란 세월을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 문화적 또는 개인적인 차이로 인해 이해받지 못하고 왕따를 당한다는 느낌을 제법 받았다. 혼자서 백조인척 고고히 지내려 해도 혼자라는 아픔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럴 때는 괴물이 되어 복수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히곤 했다. 하지만 C처럼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계속적으로 나의 여러 모습을 다르게 표현하고 남들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의식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행동이 나를 미운 오리 새끼에서 백조로 만들고 있었다는 것은 최근에야 깨달았다.

전자기기만큼이나 빠르게 변하는 현대에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속담이 사실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환경이 우리를 힘들게 하더라도 미래를 조금씩 그려 나가면서 우리 안에 잠재해 있는 것을 찾아가는 삶을 산다면 우리가 모두 미운 오리 새끼에서 우아한 백조가 되지 않을까 라고 혼자서 상상한다.


정인화 _심리 치료사

021 0262 3579
junginhwa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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