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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명균 칼럼] 강은 대지를 적시며 숲을 이루고

[나명균 칼럼] 강, 그리고 사람들(5) Waikato River

“여보! 오늘 잔디 좀 깎으면 안 될까요? 다른 집들은 가지런한데 우리만 더부룩해서 좀~.”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랬다. 겨우내 잔디 깎는 일이 많지 않아서 좋았다. 잔디 깎는 일은 적지 않게 내 심사를 건드린다. 그 일이 고되어 그런 것이 아니라, 하얗게 무리를 지어 피어난 데이지를 깎아내야 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고 괴롭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온 세 살배기 하은이도 데이지 꽃밭에서 노는 것이 재미있었는데 할아버지의 속절없는 부지런함 때문에 하염없이 펑펑 눈물바다가 되었단다. 그러고 보니 내가 세 살배기 하은이와 닮은 점이 있는가 보다. 데이지도 꽃이라고 보는 마음은. 나는 오늘도 데이지가 마치 하얗게 내린 눈꽃처럼 보이는 앨버트 공원(Albert Park) 잔디밭을 지난다.

보이지 않는 흔적

타우포 호수가 세계에서 손에 꼽힐 만큼의 큰 규모를 자랑하는 칼데라호라는 이야기는 이미 하고 넘어왔다. 그러나 타우포 호수보다 더 큰 칼데라가 또 있다면 믿어질까 싶다. 뉴질랜드는 참으로 흥미로운 연구거리들을 세계 지질학에 많이 선사하고 있다.

와이카토강이 얼마 흐르지 않아 닿는 와카마루(Whakamaru)라는 곳이 나온다. 이 이름으로 부르는 칼데라의 크기는 엄청나다. 그러나 타우포 칼데라보다 더 큰 크기의 이 칼데라는 우리 눈으로는 아무런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워낙 크기도 하지만, 호수를 이루지 않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와이카토강은 이 와카마루 칼데라의 한복판을 흐른다. 여기서 와이카토강의 가장 특징적인 모습을 보아야 하는데, 그 진정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바로 사람이 만들어 놓은 댐(Dam) 때문이다. 뉴질랜드의 강 특히 와이카토강을 한국의 여느 강에 비교해보면, 확연하게 나는 차이가 있다.

한국의 강들은 뉴질랜드의 강에 비해 강폭이 넓고 깊이는 낮으며, 또한 고운 흰 모래톱이 많이 발달해 있다. 그 고운 모래가 주는 즐거움이라고 할까 참 그런 것이 많았다. 황석영의 『모랫말 아이들』을 보면, 어릴 적 한강 모래사장에서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참 많이도 묻어난다. 한강은 그런 강이다. 아니 한강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강은 어느 강이나 그런 모습이다.

그러나 와이카토강은 강폭이 매우 좁다. 대신 깊이 패인 것이 특징이다. 와카마루 칼데라 지역을 관통하여 흐르던 와이카토강의 실제 모습을 어렴풋이 볼 수 있다면, 후카폭포에서 약 60여 킬로미터를 흘러내려 만나는 와카마루 댐(Whakamaru Dam) 위를 걷다가 댐의 하류 쪽을 내려보는 것이 가장 이해가 빠를 것이다. 강은 마치 속살을 내비치기가 부끄러운 듯 숨어있다.

저녁노을의 아름다움 속에는 비밀이?

와이카토강이 흐르는 와카마루 칼데라의 동쪽으로 갈라티아(Galatea)라는 작은 동네가 있다. 전에 이곳에서 타조농장을 하던 배 사장과의 인연이 기억된다. 그 농장 동쪽 끝자락은 우레웨라 국립공원(Urewera National Park)과 맞닿는다. 농장과 국립공원이 맞닿는 곳에 오르면 갈라티아의 드넓게 펼쳐진 들녘과 소나무숲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곳에서 만나는 일몰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그런데 가만 돌이켜보니 붉게 물든 저녁노을은 여자보다 남자들이 더 즐긴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렇지만, 배 사장도 그렇고, 또 와이우쿠(Waiuku)에 사시는 누운노을(그 분의 닉네임)님도 그러신 것 같고, 어쩌다 손님을 모시고 일몰에 맞추어 무리와이(Muriwai) 바닷가에 가보면 일몰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들 대부분은 남자들이었으니.

아무튼 배 사장이 모는 트랙터 한쪽을 빌어 궁둥이를 붙이고 터덜터덜 길을 지나 그 언덕에 올라 이야기를 나누노라면 서쪽 하늘은 붉은 노을이 그야말로 눕기 시작한다. 그 순간 남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내들만의 마음속에 감추어둔 것이 눈가로 잔잔하게 흐르는 그 모습에 서로 멋쩍어 이야기 주제를 돌렸던 그 기억.

거기서 배 사장은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눈에 보이는 이 넓은 벌판이 옛날에는 호수였는데, 언젠가 호수에서 물이 다 빠져나가고 이렇게 좋은 농경지가 되었다고 말이다. 갈라티아의 들을 파면 모래층이 두껍게 형성되어 있다는 말을 덧붙여 들었다고 말해준다.

강이 만들어주는 풍요로움, 인공 조림대

후카폭포와 지열발전소 지대를 벗어난 와이카토강은 이내 여러 삼림지대와 목초지, 농경지 사이를 굽이치며 흘러간다. 강물이 흐르며 만들어 주는 참으로 풍요로운 모습들이다. 드넓은 초원에는 소와 양이 풀을 뜯고 있고, 다양한 채소 재배지가 펼쳐진다. 그리고 광활하고도 울창한 소나무숲도 볼 수 있다.

타우포호수 인근에서 시작하여 카웨라우(Kawerau)까지 이어지는 카잉아로아 포레스트(Kaingaroa Forest)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면적의 인공 조림대이다. 남반구에서도 두 번째로 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끝이 없을 듯 펼쳐지는 이 소나무숲은 뉴질랜드의 임업 산업의 한 축을 감당하고 있다. 이곳의 소나무들은 더글러스 소나무(douglas pine)와 라디아타 소나무(radiata pine)로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들여온 것으로 우리 한국인들이 흔히 미송(美松)이라 부르는 품종이다.

그러고 보면 뉴질랜드는 정말 이민자들의 나라라는 사실이 실감이 난다. 소나무도 이민을 왔고, 내가 좋아하는 질경이도 유럽인들이 초지를 개간하면서 들여온 것이고, 나도 그렇고.

미국에서 온 소나무, 유럽에서 온 풀 한 포기가 이 땅에 잘 적응해서 모두를 풍요롭게 해주는 것처럼, 우리 이민자들도 이 땅에 잘 적응해서 서로에게 유익한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그런 사명감(?)이 든다.

그러나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난다고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지난 시간 속에 흘린 많은 이들의 땀방울이 저 강물과 함께 흘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타우포 화산이 폭발하며 편서풍을 따라 흩날린 화산재와 수많은 잡목을 걷어내고 마치 우리 한국인의 조각 보자기가 연상되는 드넓은 초원과 농장, 소나무숲이 이루어진 것이다.

나명균_조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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