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타임즈광장 시론 내 말 좀 들어 봐요

[시론] 내 말 좀 들어 봐요

“내가 무슨 말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상대방이 무슨 말을 들었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요즘에 개인적인 모임이나 공식적인 행사에서 누구를 만나면서 자주 듣는 말은 바로 “내 말 좀 들어 봐요”이다. 그들은 내가 신문사에 몸담고 있어서인지 나를 붙잡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일종의 제보라고 볼 수 있는데 어떤 이야기는 듣다 보면 개인적인 하소연이다. 내용은 특정 상대에 대해 못마땅함과 흉이 대부분이다.

교민 신문사가 교민들의 경사는 물론 어려움조차 다 다뤄야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하지만 어떤 때는 상호 간에 충분히 해결 가능한 일도 나에게 털어놓는 거 같아 내가 신문사에 다니는 것이 아닌 ‘신문고(申聞鼓)’ 관리자인 양 착각도 든다.  

나는 듣고 나서 “상대방에게 직접 말하면 해결될 거 같은데, 왜 안 하세요?”라고 그분들에게 묻는다. 그러면 열의 아홉은 “해봤죠. 그런데 내 말을 들을 생각을 안 해요”라고 하신다.  

여하튼 내가 그분들의 말을 잘 들어 줄 것 같아서 나를 붙잡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도 그분들의 의향을 알고 처음에는 열심히 듣는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그분들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듣는 ‘척’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분들의 말에 의미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있을 때가 많다. 그러면서 상대가 말하는 내내 내가 말할 타이밍을 찾고 있다. 급기야 그 타이밍을 찾아 상대가 원하지 않는 내 이야기를 하고 의기양양해지고 있다. 상대방은 소통하려 하는데 나는 설득하려 하고 있다.

제대로 된 소통은 잘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라 잘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소통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즉 “경청하라”는 말이다. 경청의 한자 풀이는 ‘기울일 경’(傾)에 ‘들을 청’(聽)이다. 몸을 상대방 쪽으로 기울여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는 ‘4무론(4毋論)’을 통해 소통을 잘하려면 네 가지를 하지 말라고 했다.

첫째는 무의(毋意)다. 자기 뜻대로 밀어붙이려는 마음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무필(毋必)이다. 어떤 일을 꼭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셋째는 무고(毋固)로,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미리 정해 놓고 그것을 지키려는 고집을 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아(毋我)다. 자신을 내려놓고 생각이나 주장에 사사로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통한다면서 ‘개인적인 욕심’이 있어선 안된다는 교훈이다.

하지만 요즘 오클랜드 한인 사회를 보면 공자가 하지 말라는 것과 정반대로 하는 때가 많다. 자기와 반대 측이라 생각하면 그에 대해서는 소통은커녕 들으려는 시도조차 안 한다. 일방통행적인 이야기로 설득만을 하려 한다. 교차로와 같이 서로 의견이 오고 갈 수 있는 자리를 안 만든다. 불통도 이런 불통이 어디 있을까 싶다.

그러한 행동들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한인들을 한인 사회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한인들은 “어차피 또 그럴 테니까”라는 생각으로 점점 귀를 닫고, 등을 돌리게 된다.

소통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귀를 여는 것에서 출발한다. 자기편인 사람들끼리만 의견을 주고받으면 생각이 발전할 수 없다. 충분한 토론과 비평 없이 나온 대안을 최선이라고 믿는 집단사고의 폐해가 나타나기에 십상이다. 버젓이 잘못된 행위를 저지르고도 합리화하거나 상식에 벗어난 의사결정을 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다. 특히 한국인은 갈등은 회피하고 인간적인 유대감을 강조하는 전통이 강해서 이런 집단사고에 의한 문제가 더 많이 생긴다고 한다.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면 그의 말이 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우리 집단의 판단이 잘못되었을리 없다고 생각하는 무오류의 환상에 빠지면 자신의 잘못을 고칠 수가 없다. 소통 없는 일방통행식 행동이 심해지고 상대와의 대립과 갈등이 그치지 않는 이유이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상대방이 무슨 말을 들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 경영학 석학 피터 드러커의 격언을 곱씹어 본다.

임채원_편집장


저작권자 © ‘뉴질랜드 정통교민신문’ 뉴질랜드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Advertisement -

주간 신규 인기글

[그레이스 정의 ‘일상의 습작’] “야호~ 엄마가 오셨다”

쿠메우의 여인, 그레이스 정의 ‘일상의 습작’(1) “야호~ 엄마가 오셨다.” 열한 시간이 넘는 긴 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박현득의 사진 더하기 여행] 뉴질랜드 초창기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현장

박현득의 사진 더하기 여행(31) 와이탕이 조약 유적지를 찾아 1 원주민과 함께 더불어 살고자...

[김영안 칼럼]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 엘리 위젤

김 교수의 책따라 생각따라(22) 우리는 지금 원하는 것을 얼마나 차지하느냐에 따라 자신과 모든 것을 평가하는 문화에 살고 있다. 그래서...

오클랜드 이외 지역 1백만 달러 이상 주택 거래 큰 폭 증가

작년 오클랜드를 제외한 전국의 100만 달러 이상 주택 판매가 많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부동산협회 자료에 의하면 오클랜드 이외...

[밸런스 영의 건강 읽기] 건강은‘실천’이다

밸런스 영의 건강 읽기(1) 나는 ‘새내기 중의사’이다. 뉴질랜더와 교민을 위해 애쓰는 많은 보건 의료인 중의 한 명이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