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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명균 칼럼] 오라케이 코라코(Orakei Korako)

[나명균 칼럼] 강, 그리고 사람들(8) Waikato River

“아빠! 이거 개나리예요?”

남섬에 여행을 간 딸이 퀸스타운의 어느 산자락을 덮고 있는 가시금작나무(Gorse)의 사진을 보내왔다. 지중해 연안과 서유럽이 원산지인 이 나무는 유럽인들이 목장의 울타리용으로 뉴질랜드에 들여온 것이다. 멀리서 보면, 노란색 꽃이 군락을 이뤄 마치 한국의 개나리동산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가보면 촘촘하게 나 있는 가늘고 긴 가시에 놀란다. 나도 교회당을 둘러싸고 자란 이 가시나무를 잘라내다가 수 없이 찔린 고통을 기억한다. 잘라내도 또 나고, 뿌리까지 처리해야 하는데, 뿌리가 뽑혀 마른 나무에도 가시는 그대로이다. 번식력 또한 대단해 산책길 양옆으로 번져 나와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뉴질랜드에서의 초창기 축산업을 위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그것은 앞날을 생각하지 못한 결과이다. 오늘날 뉴질랜드의 산과 들에는 온통 이 가시금작나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런 면에서는 인동초(Japanese Honey circle)도 마찬가지다. 넝쿨 식물인 인동초 역시 유럽인들이 울타리용으로 들여온 식물이다. 요즘도 농장지대를 지나다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뉴질랜드 대부분의 시청 홈페이지 ‘유해식물’(pest plants) 목록에 보면 어김없이 올라있다. 원래 한국이 원산지인 인동초는 금은화(金銀花)라 하여 노란색, 흰색의 꽃이 한 쌍으로 피어난다.

오라케이 코라코에 가려면

오라케이 코라코. 마오리 말이 아닌 경상도 사투리처럼 들린다. ‘오라카이 코라코?’ 오라니 가봐야지? 강물은 오하하키 지열발전소 곁을 흘러 와이오타푸 냇물과 만나 왼편으로 크게 굴곡을 그리며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다시 북쪽으로 향한다.

그즈음의 강변에서 오라케이 코라코(Place of Adorning as white)를 만난다. 오늘날 이곳을 찾기 위해서는 5번 하이웨이에서 갈라지는 작은 길 투투카우 로드(Tutukau Rd)를 따라가야 한다. 와이카토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다시 하나 건너면 오른쪽으로 오라케이 코라코 로드(Orakei Korako Rd)가 나온다. 막다른 길에 있는 강변 주차장에 이르러 작은 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

개발의 이면에는 아쉬움도

앞날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 현실의 이익만을 생각한 것은 가시금작나무, 인동초만이 아니라 와이카토강의 역사에서도 고스란히 묻어 나온다. 1840년 와이탕이조약 이후, 뉴질랜드에서는 본격적으로 자연 탐사가 시작되었다.

퍼디낸드 박사를 단장으로 한 일행은 1858년부터 광범위한 연구를 위해 북섬 중심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로토루아, 타우포 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행은 수십 곳이 넘는 크고 작은 간헐천(geysers)이 산재해 있는 오라케이 코라코에 도착했다. 높이 90m까지 솟구치는 밍기누이 간헐천(Minginui geyser,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것에 버금가는 세계에서 두 번째 규모), 200여 개의 온천 샘과 온천동굴 등이 군집해 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보고 퍼디낸드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Not the least beautiful site in the district.”

무슨 말인가? 말 그대로 “이 지역에서는 가장 아름답지는 않다”는 말이다. 물론, 로토루아의 와카레와레와(Whakarewarewa), 와이망구(Waimangu)를 비롯하여 와이오타푸(Wai O Tapu), 또 인근에 있는 와이키테 밸리(Waikite valley) 등을 다 살펴본 퍼디낸드 박사 일행의 눈에는 오라케이 코라코 이 한 곳 정도는 없어도 그만이요, 오히려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실이익에 대한 셈이 더 빨랐을 것이다. 그렇게만 보면 분명 맞는 판단일 수도 있었다.

급류가 흐르고 폭이 좁은 와이카토강은 타우포에서 지금의 케임브리지까지 어느 곳이든 발전용 댐을 만들기에 최적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자연 파괴(?)에 이르렀다. 댐이 건설되고 강물의 깊이가 수십 미터가 높아지면서 그 많은 간헐천과 온천 샘, 폭포들은 그대로 물속에 잠기고 말았다. 지금의 오라케이 코라코는 극히 일부분만 남아 있게 된 것이다. 그마저도 1886년에 있었던 타라웨라산의 대규모 화산폭발로 이곳의 루아타푸 동굴은 무너져 내리며 모양새가 크게 변형되기까지 했다.

목적이 다르면 달리 보이는데

동시대에 이 지역을 여행한 또 다른 한 사람인 리차드 테일러 목사는 “one of the most remarkable streams I ever saw” 즉 “나는 가장 경이로운 강 중에 하나를 보았다”는 말을 남겼다.

만약 와이카토강에 댐이 사라지고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테일러 목사의 말에 공감했을 것이다. 그만큼 와이카토강은 뉴질랜드의 독특한 지질학적 환경이 빗어낸 최고의 절경에 감탄을 금하지 않았을 것이다. 후카 폭포에서 느끼는 그것과 같은 느낌? 

똑같은 사물이라도 누구의 입장에서 보느냐가 중요하다. 건설업자의 눈으로 보면, 와이카토강은 발전소 건설을 위한 천혜의 장소였음은 틀림없다. 하여, 와이카토강에는 아라티아티아(Aratiatia)로부터 카라피로(Karapiro)까지 8개의 댐이 세워지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뉴질랜드 경제산업의 동력이 되었음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시대적 차이를 얼마나 이해하면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실만 보고 앞날을 보지 못한 것은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삶의 애환이 남아 있는 곳

그런 발전이 있기 전부터 마오리들은 오라케이 코라코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았다. 우선은 따듯한 물과 지열이 있어서 음식을 조리하는 일과 목욕 등의 생활의 편리성이 있었다.

1886년의 어느 날, 타라웨라산(Mt. Tarawera)의 폭발은 대단했다. 그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그 거대한 분화와 함께 사람들은 이곳을 떠났다. 물론 거주지를 떠나야 했던 가장 큰 원인은 채집이나 수렵이 전부였던 그들에게 음식물을 확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남은 사람들은 로토루아와 타우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와카(Canoe)를 이용하여 강을 건너 주는 일을 했다. 일종의 나루터에서 뱃사공의 일을 한 것이다. 혹시 이곳에서도 정선의 아우라지에 남아 있는 아리랑 같은 애환이 담긴 노래가 또 전설로 남아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명균_조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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