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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명균 칼럼] 발전소 마을, 망가키노

[나명균 칼럼] 강, 그리고 사람들(10) Waikato River

어릴 적, 친구네 집이 있는 경상북도 문경 영순면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며칠을 지내던 기억이 있다. 친구의 큰 형님은 서울에서 귀한 손님이 왔다며 토끼를 잡아 백숙을 해 주셨고, 집을 나서더니 어느새 은어를 새끼줄에 한 꾸러미 꿰어 오셔서 맛있는 탕을 끓여 주셨었다. 그 마을은 낙동강 상류가 갈라져 흐르기에 이쪽으로 가도 저쪽으로 가도 나룻배로 강을 건너야 하는 그런 오지였다.

강가의 마을은 참 정겨웠다. 집 모양새도 제각각, 마을 길도 이리저리 꾸불꾸불. 그야말로 자연스러움이 정겹다. 그러나 뉴질랜드의 시골 마을에서는 그런 맛이 없다. 집터의 규모나 모양새, 마을 길도 가지런하고 말이다. 망가키노(Mangakino) 역시 그렇다.

어? 왜 이런 곳에 이렇게 큰 마을이 있지?

와카마루 댐을 건너 계속되는 길은 망가키노 마을 입구에서 90도를 돌아 나간다. 삐진 것은 아니겠지? 하기야 그 길은 지금 내가 갈 길이 아니지만, 마을 입구까지 인도해 준 것만도 고마운 일이다.

나는 처음 망가키노 마을에 들어서면 혼잣말로 내뱉은 말이 기억난다. ‘왜 이런 곳에 이렇게 큰 마을이 있지?’ 정말 그랬다. 부채꼴처럼 펼쳐진 마을의 끝자락에는 그야말로 동네 골프장이 그림 같이 펼쳐져 있고, 그 가장자리로 강물은 유유자적하고, 뒤로는 멀리 프레오라산의 푸른 숲(Pureora Forest Park)이 마을을 품고 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마을의 초저녁, 이집 저집 지붕 위로 올라온 굴뚝에서는 장작을 때는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의 마을이 어디 그리 흔하던가?

와이카토강에서 생산되는 전력의 70% 감당

1946년 카라피로(Karapiro) 댐이 건설된 후, 노동자들은 와이카토강의 상류를 거슬러 댐 건설을 지속해 나갔다. 강가의 작은 마을 망가키노는 인근의 마라에타이(Maraetai)뿐만 아니라, 와카마루, 아티아무리, 와이파파 및 오하쿠리 댐 건설을 위한 인부들의 임시 거주를 위해 건설되었다.

이 다섯 개 댐을 세우는데 있어서 와이카토 물줄기의 총 거리는 불과 50여km에 이르지 않는다. 50~60년대 초, 채 1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건설된 이 댐들은 와이카토강에서 생산되는 전력의 70%를 감당해내어 뉴질랜드 산업화에 큰 동력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마을이 조성되던 초기에는 주민이 5천 명이 웃돌 정도로 제법 큰 규모를 이루었다. 뉴질랜드에서의 5천명 인구는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뉴질랜드에서 맥도날드 햄버거 숍을 여는 기준도 인구가 5천을 넘어야 한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댐 건설 후 노동자들이 떠나고 도시화가 급격히 이루어지면서 이 인근의 작은 사회는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망가키노는 겨우 1천여 명 조금 넘은 사람만이 남아서 생활하고 있다.

뉴질랜드에 살면서 참으로 신기한 장면은 빈집을 트레일러에 실어 팔려 가는 것을 보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어느 해인가 이곳 망가키노는 많은 빈집이 한꺼번에 시장에 나왔다. 가격은 고작 2만 달러라는 소리에 크게 웃을 수도 없고 그야말로 난감해진 표정을 숨기기에 민망했다.

어?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

망가키노에서 강 건너편으로 난 길은 제법 큰 도시 토코로아이다. 인근의 인공 조림대에서 벌목한 목재들의 집산지로 대단한 규모의 제재소가 있는 임업 산업의 중심지이다. 토코로아에 가면 커다란 체인톱을 들고 서 있는 벌목공(Fine man) 동상을 볼 수 있는데, 그 모습은 토코로아가 어떤 도시인가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나는 이곳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정애라 선생님과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음악 교사도 아니면서 풍성한 성량을 자랑하는 그녀의 고운 음성을 다시 듣고 싶다. 그녀는 토코로아의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들의 미래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정 선생에게는 현실을 위해 무엇을 줄 것인가보다 저들의 꿈과 재능을 키워줄 수 있는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그 마음이 보인다.

맞다. 교사는 내심 그러해야 한다. 지금의 토코로아의 어린 학생들에게 꿈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점점 쇠락해가는 도시의 모습은 마치 한국의 70~80년대 지방 도시의 현실과 그대로다. 토코로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미 망가키노에서 먼저 그런 모습을 보았다.

지금 뉴질랜드 대부분의 작은 마을이나 도시들이 그렇다. 어느 도시는 집을 지을 곳이 없을 정도로 인구가 팽창하고 산업과 경제, 도시 시설들을 새롭게 건설해 나가고 있다고 하지만, 와이카토강을 끼고 있는 이곳의 도시나 마을들에는 그 이야기들은 마치 신기루처럼 느끼지는 일이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조금 더 작고, 좁은 길로

나는 어느 날, 로토루아에서 출발해 오클랜드로 올라가면서 가장 작은 길,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길을 선택해 보았다. 그 길은 망가키노 마을을 지나는 길이다. 마을로 들어서면,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그래도 한때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던 곳이기에 마을은 잘 정비되어 있었고, 상점도 제법 규모가 있다. 톰과 제리, 아니 톰과 쇼티(Tom and Shorty)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받아 들고 레이크 로드 끝자락, 강가에 있는 리저브에 이른다.

거기에서 힘차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또 아무도 없는 골프장의 필드를 바라보며 그 얼마간의 시간을 강물에 흘려보내니 어느새 컵이 비어 있다. 조금 아쉬운 듯, 빈 컵을 들고 차에 오른다. 이제 본격적으로 와이파파 로드(Waipapa Rd)를 따라 강줄기와 어깨동무를 하고 새로운 길을 가고자 한다.


나명균_조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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