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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Z Great Walks를 걷다] 악마의 계단을 넘자 희망의 무지개가 보였다

뉴질랜드타임즈 2020년 특별 기획
뉴질랜드의 위대한 올레길(NZ Great Walks)을 걷다


통가리로 노던 서킷(Tongariro Northern Circuit) 2

뉴질랜드타임즈는 2020년 특별 기획으로 ‘박성기 기자, 뉴질랜드의
위대한 올레길(NZ Great Walks)을 걷다’를 30회에 걸쳐 연재한다.
뉴질랜드가 자랑하는 ‘위대한 올레길’은 북섬에 세 곳, 남섬에 여섯 곳,
스튜어트섬에 한 곳 등 총 열 곳에 걸쳐 있다.
통가리로 노던 서킷을 3회로 나눠 싣는다.<편집자>


다음 날 아침 7시 잠에서 깼다. 열 시간이나 잤지만 도통 피곤이 풀리지 않았다. 물에 젖은 솜옷을 위아래로 껴입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왼쪽 무릎의 통증마저 머리로 전해져 왔다. 전날 무리하게 산행을 한 까닭이다. 과연 나는 계속 올레길을 걸을 수 있을까.

10월 말에 NZ에서 ‘눈님’을 만날 줄이야

대충 아침을 해결한 뒤 배낭을 짊어졌다. 20kg에 가까운 짐의 무게가 막막한 앞길처럼 다가왔다.

오늘 일정은 오투레레 산장까지 걷는 것이다. 뉴질랜드 국립 공원을 관리하고 있는 DOC(Department of Conservation, 보존부) 팸플릿 자료에 따르면 12km, 5시간으로 되어 있다. 한 시간에 2.4km라는 얘기는 길이 무척 험하다는 뜻이다. 나는 전날 무리를 해서 걸은 데다가 초보 도보 여행가라는 점에서 보면 족히 8시간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발걸음을 떼기가 싫어 미적미적거리다 9시쯤 산장을 나왔다. 존 할배도 막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도 나처럼 피곤의 산을 넘지 못한 것 같았다.

30분쯤 걸었을까. 곧고 길게 뻗은 길이 보였다. 마치 눈길 고속도로 같았다. 그 위에는 순백의 눈뿐. 10월 말에 뉴질랜드에서 ‘눈님’을 만날 줄 어찌 알았으랴. 하지만 눈님을 다 쓸어가겠다는 듯 거친 바람이 불었다.

경고 “자신 없으면 여기서 되돌아갈 것을 권함”

눈길 입구에 빨간 간판이 눈에 띄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위험 지역. 자신 없으면 되돌아갈 것을 권함”(Danger. Consider turning back. 내가 임의로 한 의역.)

이 길을 걷다가 다치거나 죽은 사람이 많으니 특별하게 조심하라는 뜻일 게다. 나는 애써 이 경고문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비슷한 내용의(좀 더 강한) 경고문을 또 대하자 마음이 흔들렸다.

그 내용은 “아직도 안 늦었음. 정말로 다시 돌아가도 괜찮음.” 이러했다.

내 눈을 뒤로했다. 삼삼오오 떼를 지은 하루 등산객들이 줄에 줄을 이었다. 이 코스는 뉴질랜드가 자랑하는 하루 등산 코스다.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Tongariro Alpine Crossing. 19.4km. 8시간~10시간 걸림)이라고 부른다. 뉴질랜드는 물론 전 세계에서 이 산길을 걷기 위해 해마다 많은 사람이 찾는다.

크로싱 구간, 여름에는 사람 교통 체증 생겨

이 크로싱(횡단)은 통가리로 국립 공원의 백미를 담고 있다. 에메랄드 호수(Emerald Lakes) 등 세 개의 분화구를 거치며 살아 있는 화산 지역의 신비감을 몸으로 체험하기도 한다.

여름철에는 사람 교통 체증(Traffic Jam)이 생길 정도로 인파가 몰리는 곳이다. 등산객들이 산길을 오가다 예의를 갖춰서 하는 인사말 “하이!”(Hi! 안녕하세요.)를 건너뛸 정도다.

하지만 결코 쉽게 봐서는 안 될 코스다. 통가리로 국립 공원 안에서 일어나는 인명 사고는 대부분 이 구간에서 벌어진다. 제대로 된 등산 장비를 챙기지 않고 온 경우나 자신의 등산 실력을 과신해 생기는 일들이다.

크로싱이 시작되는 망가테포포 입구에 쓰여 있는 안내문이 그걸 잘 설명해 준다. 햇살이 쨍쨍거릴 정도로 화창하던 날씨가 10분 뒤에는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사진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 내용은 상상에 맡긴다. 그저 자연의 변화무쌍함에 일개 사람이 고개를 뻣뻣이 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슬픈 점입가경… ‘눈의 강’ 건너 ‘악마의 계단’으로

수 킬로미터 이어진 ‘눈의 강’을 건넜다. 발이 푹푹 빠질 정도였다. 게다가 바람마저 거세 마치 내가 에베레스트 등반대원처럼 느껴졌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을 생각하면 된다.

조금은 불편한 점입가경이라고나 할까. 강을 건너자마자 거대한 산이 나타났다. ‘악마의 계단’(Devil’s Staircase)에 들어선 것이다. 그 앞에는 “아주 위험함. 돌아갈 기회는 아직 남았음’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나는 지옥 길을 자처했다. 오르고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50걸음 걷고 1분을 쉬었다. 100걸음 걷고 5분 동안 영혼을 돌봤다. 내 마음속 지옥 길은 정말로 멀고 험했다. 반대쪽에서 오던 등산객들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정상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말로 위로했다. 새빨간 거짓말인 것은 그나 나나 다 안다.

산꼭대기에서 ‘지옥의 웃음 사진’ 찍어

악마의 계단을 오르고 올라 꼭대기에 섰다. 이번 올레길에서 가장 높은 곳(1,820m 정도)이었다. 강풍에 구름안개마저 끼여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었다. 옆에는 아름답기가 그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는 ‘레드 크레이터’(Red Crater. 빨간색을 띤 분화구 호수.)가 있었지만 내 눈에는 그저 얼음덩어리 호수에 불과했다. 이곳의 진가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은 여름철에 갈 것을 권한다.

사방에는 기분 나쁜 어둠이 깔려 있었다. 내 뒤에서 엉덩이를 바닥에 깔고 내려오던 일단의 무리가 지옥 사자처럼 느껴졌다. 지옥은 분명 이런 곳일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나도 모르게 생겼다. 통가리로의 산신들은 인간의 접근을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신들의 세계를 침범하는 인간들의 오만을 그런 식으로 막았다고 생각한다.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해 배낭을 풀었다. 뒤에 오던 산 친구에게 부탁했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웃음을 지었다. ‘지옥의 웃음 사진’은 내 컴퓨터 한 곳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그 많던 사람들 다 사라지고 나 홀로 남아

올레길 정상에서 배낭 덮개를 잃어버렸다. 헐겁게 맨 탓이었다. 초보 도보 여행가의 티를 또 드러낸 것이다. 그렇게도 “흔적을 남기지 마세요”(Leave no trace)라고 했건만 나는 무엇이 아쉬워 내가 다녀온 자취를 영산(靈山)에 두고 왔을까. 부디 그 누군가의 잠시 바람막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꼭대기에서 조금 내려와 큰 바위를 병풍 삼아 점심을 먹었다. 큰 고비는 넘겼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나름 자신감이 생겼다.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천’이 지옥의 문을 통과해 천국의 문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산행을 끝나고 나중에 돌아보니 악마의 계단이 가장 힘든 구간이었다.

에메랄드 호수를 옆으로 하고 30분 정도를 걸었다. 그때쯤 경계선이 나왔다. 크로싱을 계속하는 사람과 노던 서킷을 일주하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그 많던 사람이 다 사라지고 나 홀로 남았다. 지옥에서 함께한 동료들이 사라지자 내심 허허한 마음이 들었다. 다리의 통증이 더 심하게 전해졌다.

“도저히 이 멋진 모습을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다음 기착지인 오투레레 산장까지는 5km, 한 시간 반이면 된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오투레레 계곡(Oturere Valley)을 따라 걸음을 이어갔다. 다행히 내리막길이었다. 중간중간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싶을 정도로 신비한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곳이 자주 나왔지만 비바람이 몰아쳐 배낭을 내려놓기 힘들었다.

계곡 주위는 눈과 물과 화산석과 이름 모를 풀로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펼쳐 보였다. 고흐의 작품에 자주 나오는 야릇한 노란 색을 배경으로 한, 자연의 걸작품들이었다. 날씨만 좋았다면 한두 시간 푹 쉬고 싶을 만큼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계곡 길 중간에서 존 할배와 조우했다. 앞서 걷던 그가 뒤로 발길을 돌렸다. 이유를 묻자 사진을 찍기 위해서라고 했다.

“도저히 이 멋진 모습을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어.”

오투레레 산장, 지리산 노고단 산장처럼 느껴져

산장 도착 몇백 미터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날 즈음 비가 멈췄다. 바람은 여전히 거셌지만 한결 위안이 됐다. 한 가지 어려움은 사라진 셈이었다. 나도 모르게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

산장에 거의 다 왔을 때 고운 무지개가 도보 여행자를 반겼다. 완벽한 반원을 한 일곱 색깔의 무지개는 ‘이제 고생은 다 했다. 좋은 일만 생길 것이다’는 환영 인사를 했다.

오투레레 산장(Oturere Hut. 1,360m)은 내가 젊은 시절 하루 머문 적이 있는 지리산 노고단 산장을 닮았다. 함 씨 성을 가진 산장지기는 없었지만 분위기는 비슷했다. 오밀조밀한 공간에 열댓 명이 쉬고 있었다. 단체 등산이라도 왔는지 칼리지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기도 했다. 장작 몇 개를 먹은 난로 옆에서는 따듯한 사람의 온도가 전해져 왔다.

오후 5시 무렵 산장에 도착했다. 5시간 거리를 8시간 ‘만에’ 끝냈다. 막막하게만 느껴졌던 알파인(Alpine. 고산 지역) 구간을 나도 해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초보 도보 여행가의 어깨와 발에 힘이 생긴 것이다.

이밥에다 김치와 김 그리고 참치 캔을 반찬으로 해서 근사한 만찬을 먹었다. 방명록에 “위대한 길, 위대한 사람”(Great Walks, Great People)이라고 써 놓았다.

밤 9시가 되자 한 사람 두 사람 침낭 안으로 들어갔다. 창문 옆으로 별이 반짝거렸다. 내 마음의 별도 그렇게 빛났다.



트레킹 안전 수칙(DOC)

1. 계획을 세워라(Plan your trip)
2. 누군가에게 말하고 떠나라(Tell someone your plans)
3. 날씨를 잘 살펴라(Be aware of the weather)
4. 자신의 한계를 파악하라(Know your limit)
5. 준비물은 여유 있게 갖춰라(Take sufficient supplies

   <다음 호에 계속>

글과 사진_박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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