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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Z Great Walks를 걷다] 1천 개 주황색 삼각형 표지를 따라 걸었다

뉴질랜드타임즈 2020년 특별 기획
뉴질랜드의 위대한 올레길(NZ Great Walks)을 걷다


통가리로 노던 서킷(Tongariro Northern Circuit) 3

뉴질랜드타임즈는 2020년 특별 기획으로 ‘박성기 기자, 뉴질랜드의
위대한 올레길(NZ Great Walks)을 걷다’를 30회에 걸쳐 연재한다.
뉴질랜드가 자랑하는 ‘위대한 올레길’은 북섬에 세 곳, 남섬에 여섯 곳,
스튜어트섬에 한 곳 등 총 열 곳에 걸쳐 있다.
통가리로 노던 서킷을 3회로 나눠 싣는다.<편집자>

화산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덤불 나무가 지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여유 있게 열 시쯤 산장을 나왔다. 어제 흉흉했던 날씨가 오늘은 순한 양처럼 변해 있었다. 도보 여행을 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오늘의 일정은 와이호호누 산장까지. DOC 자료에는 ‘8.1km 세 시간’이라고 쓰여 있다. 게다가 80%가 완만한 내리막길. 날씨도 좋고 구간도 짧아 겁날 게 하나도 없었다. 무릎의 통증도 조금 덜 느껴졌다.

산장을 떠나 10여 분쯤 걷자 고원이 나타났다. 화산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덤불(tussock)이 지천이었다. 바람도 적당히 불어 전혀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제 제대로 된 도보 여행을 하는구나 하는 기분이었다.

한 시간 넘게 그런 길이 이어졌다. 사이사이 맑은 계곡물이 흘렀다. 말 그대로 ‘물 좋고 들 좋고.’ 중간중간 쉬어 갔다. 힘들어서 쉰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자연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세상의 모든 길이 이 길만 같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텐데….

1894년 뉴질랜드 최초 국립 공원으로 지정돼

통가리로 국립 공원은 1894년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국립 공원으로 지정됐다. 전 세계적으로 치면 네 번째인, 국립 공원의 효시 같은 곳이다.

역사를 잠깐 살펴보자.

뉴질랜드 2대 총리였던 윌리엄 폭스(William Fox, 1812~1893)는 1850년대에 미국의 옐로우스톤(Yellowstone)을 방문한다. 20여 년 뒤 ‘세계 최초 국립 공원’이라는 명예를 얻은 옐로우스톤 국립 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이 된 곳이다.

폭스 총리는 다시 1870년대에 요세미티 국립 공원에도 찾아간다. 화가이기도 했던 그는 두 공원을 정성스럽게 화폭에 담았다. 그 멋진 곳을 뉴질랜드에 이식하고 싶어서였다. 폭스 총리는 고국에 돌아오자마자 작업에 들어갔다.

통가리로 지역이 뉴질랜드 최초의 국립 공원으로 적격이라는 판단이 섰다. 마침 그 지역 추장인 테 헤우헤우 투키노 4세(Te Heuheu Tukino IV)가 땅을 기증(?)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마오리와 파케하(유럽에서 건너온 백인) 사이에 벌어진 토지전쟁(The NZ Land War)이 한창이던 그때, 투키노 4세는 조상들의 혼이 스민 성지(聖地)가 사사로이 사용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영국 왕실(Crown)에 “모든 국민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이 되게 해 달라”는 순박한 조건을 걸고 기증했다. 1887년 9월 23일의 일이었다.

해마다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와

처음 2,640헥타르(약 800만 평)였던 공원이 정부가 인근 땅을 사들이며 차츰 넓혀 나가 지금은 79,596헥타르(약 2억4천만 평)에 이른다. 오클랜드 면적의 75%에 해당하는 넓은 땅이다. 통가리로산, 나우로호에산, 루아페후산 그 주위가 다 이 국립 공원에 속한다. 겨울철 스키 애호가를 비롯해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 등산객 등 해마다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통가리로 국립 공원의 절경에 감탄을 하고 돌아간다,

뉴질랜드 정부는 그 뒤 열세 곳의 국립 공원을 더 조성해 국민들에게 삶의 여유와 쉴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미국 국립 공원의 합계 면적이 전 국토의 1% 채 안 되는 반면에 뉴질랜드는 국립 공원 열네 곳의 면적이 전 국토의 11.5%에 이른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충분히 자긍심을 가질 자격이 있다.

통가리로 국립 공원은 1990년에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1993년에는 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복합 유산’(Dual Heritage)으로 올려진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에다 원주민인 마오리의 문화와 역사가 살아 있는 것을 전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조상의 영과 혼과 몸이 깃든 땅을 기증해 통가리로 국립 공원의 기초를 만든 투키노 4세의 흉상이 통가리로 국립 공원 안에 있는 정보 센터(i Site)에 세워져 있다. 그곳에 들를 기회가 있다면 조금은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보아주었으면 고맙겠다.

주황색 표지판만 따라가면 길 잃을 걱정 없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간다.

오투레레 산장을 떠난지 네 시간 만에 기착지인 와이호호누 산장(Waihohonu Hut. 1,150m)에 도착했다. 중간중간 예쁜 들과 개울에서도 자주 쉬었는데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았다. 날라리 도보 여행자가 된 느낌이었다.

이 길을 오는 동안 유독 삼각형으로 된 주황색(Orange) 표지가 자주 보였다. 통가리로 노던 서킷은 이 주황색 표지만 따라가면 절대로 길을 잃을 걱정이 없다. 길이 험하다 싶으면 20~30m 간격으로, 좋고 분명한 길은 50m~100m 안짝으로 꼭 하나씩 세워져 있다.

올레길 여행을 끝나고 정보센터에 들러 이 길에 삼각형 오렌지 이정표가 몇 개나 되냐고 물었다. 직원은 처음 듣는 질문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계산기를 두드리더니 “천 개는 되지 않겠냐”고 답했다. 43km 구간에 50m마다 한 개가 있다고 하면 대충 그런 계산이 나온다.

와이호호누 산장, 호텔 시설 못지않게 꾸며 놓아

뉴질랜드 보존부(DOC)는 왜 빨간색이나 파란색도 아닌 굳이 주황색을 이정표 색으로 했을까. 자료를 찾아보니 그동안 나무에다 하기도 하고, 양철판으로 하기도 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했지만 주황색이 가장 시각적 효과가 높아 그런 결정을 했다고 나온다. 색맹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도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와이호호누 산장은 호텔(?) 시설에 못지않았다. 더불어 나루우호에산이 바로 코앞에 보일 정도로 멋진 장관을 자랑한다. 오랜만에 푹 잘 쉬었다. 같이 머무르던 산 동무들과도 많은 얘기를 나눴다. 다들 색다른 사연을 소개하며 즐거운 이바구 꽃을 피웠다.

오후 늦게 존 할배가 산장에 도착했다. 그동안 파악 못한 그의 신상을 들을 수 있었다. 미국에서 온 은퇴한 교수님이셨다. 나이는 60세 안팎. 키가 껑충하게 큰 데다 허리도 조금 휘었고 힘도 없어 보여 할배라고 지레 생각한 것이다. 뉴질랜드에 사는 장모의 90세 생신 잔치를 축하하기 위해 왔다가 시간을 내 뉴질랜드 최고의 올레길인 통가리로 노던 서킷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옛 와이호호누 산장도 볼거리 가운데 한 곳

다음 날 아침 6시 나도 모르게 눈이 떠졌다. 푹 잘 잔 덕분이다. 신선이 사는 산처럼 근엄하게 앞에 서 있는 나우루호에산을 그냥 두고 가기 아쉬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9시가 되어서야 짐을 꾸려 발걸음을 내디뎠다.

오늘의 일정은 올레길의 끝인 화카파파 빌리지까지. 15.4km를 5시간 45분이면 갈 수 있다고 소개한다. 조금은 높낮이가 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나흘 차 도보 여행가가 못 헤쳐나갈 코스는 아닐 거로 생각했다.

산장을 나서자마자 주위에 볼 것이 있다는 안내문이 떠올랐다. 바로 와이호호누 옛 산장(Old Waihohonu Hut)이었다. 1904년에 세워진 이 산장은 ‘뉴질랜드 첫 산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산장이 문을 연 뒤 60여 년 동안 숱한 등산객과 여행객들의 노고를 풀어주는 안식처 역할을 했다.

진한 빨간 색을 한 이 산장은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담은 채 올레길 순례자들의 경배를 받고 있다. 거룩하고 숭고한 초창기 도보 여행가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어졌다.

2018/2019년 노던 서킷 다녀간 사람은 8,736명

여섯 시간의 반은 평지, 나머지 반은 숲길. 끝없이 펼쳐진 평지를 걷는 동안 만난 사람은 몇에 불과했다. 풀과 나무 그리고 바람 사이에서 올레길의 진수를 만끽했다. 이 멋진 풍광을 나만 보는 게 안타까울 정도였다. 통가리로 국립 공원은 뉴질랜드 최고의 공원임이 분명하다고 믿는다.

3박 4일 동안 모두 합쳐 60km 가깝게 걸었다. DOC 자료 43km보다 17km를 더 걸은 것이다. 뜻하지 않게 ‘첫날’을 두 번이나 반복한 탓이다. 영광스러운 훈장은 왼쪽 무릎의 심한 통증. 산행 마지막 날에는 거의 한 발로만 걷다시피 했다.

통계를 보니 2018/2019년에 통가리로 노던 서킷을 다녀간 사람이 뉴질랜드에서 3,334명, 해외에서 5,402명 모두 더해 8,736명이었다.<2019년 6월 30일 기준> 뉴질랜드 사람만 놓고 따진다면 480만 인구 가운데 0.1%도 안 되는 ‘역사적인’ 발걸음을 내가 디딘 셈이다. 분명히 내년 기록에는 내 머릿수도 포함될 것이다.

완주 뒤 ‘셀프 선물’로 호텔 닭가슴살 요리 먹어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샤토 통가리로 호텔(Chateau Tongariro Hotel)로 들어갔다. 1929년에 세워진, 프랑스풍으로 멋지게 치장을 한 유서 깊은 곳이다. 식당에서 내가 좋아하는 닭가슴살과 포도주 한 병을 시켰다. 가격은 세 자리 숫자가 넘었다. 내가 내게 준 통가리로 노덧 서킷 완주 선물이었다.

“나 이래 봬도 통가리로 노던 서킷을 마친 사람이라고요.”                                                     

  

통가리로 노던 서킷 개요

지역: 통가리로 국립 공원
출발·도착: Whakapapa Village
거리: 43km
기간: 3~4일
시기: 2019년 10월 25일~2020년 4월 30일
인근 마을: Turangi, Ohakune, Waioura
산장: Mangatepopo(매트리스 20개), Oturere(매트리스 26개), Waihohonu(매트리스 28개)

  <통가리로 편 끝.>

글과 사진_박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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