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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명균 칼럼] 강에서 들려오는 함성

[나명균 칼럼] 강, 그리고 사람들(14) Waikato River

어릴 적, 어머니와 형제들의 손을 잡고 시골집에서 서울로 이사하던 기억이 희미하게 생각난다. 큰 짐은 논산역에서 수화물로 부치고, 작은 살림살이 하나씩 손에 들고 초가집을 뒤로하고 신작로를 따라 족히 십 리가 넘는 거리를 가야 했다.

누이들은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고향을 떠나는 친구를 배웅하러 나온 누이의 친구들이 눈물을 흘리며 연신 손을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지나던 트럭 한 대가 일으킨 뿌연 흙먼지 속으로 그 모습은 가려졌다.

망가키노(Mangakino)를 떠나 그야말로 시골길 와이파파 로드를 따라 길을 나서면서도 뭐가 아쉬운지 자동차는 속력을 내지 못했다. 속도를 내야 할 어떤 이유도 없었지만, 어쩌면 무엇인가 남겨 놓은 것이 있는 것 같은 그런.

그랬다. 망가키노를 그렇게 떠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흐르는 강물과 함께 와카마루 댐에서 계속 이어지는 와이카토 리버 트레일(Waikato River Trail)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물 따라 함께 걷고 달리며

와이카토 리버 트레일은 지난번에 소개했던 와카마루 세션에 이어 망가키노, 마라에타이, 아라푸니 세션으로 계속 이어져 카라피로(Lake Karapiro) 호수에 이르는 거의 100km 가까운 거리이다.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브로슈어 한 장을 집어 펼쳐보니 자전거 타기나 걷고 뛰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별천지나 다름없겠다 싶다. 얼마 전, 정원 일을 직업으로 하는 분을 만나 주말은 어떻게 지내느냐 물었더니 뜻밖에도 온 가족이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이 코스를 이야기하여 반가웠다.

나도 와카마루에서 자동차를 버리고 페달을 밟으며 강바람을 가슴에 안아가며 달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와이카토 리버 트레일 코스는 와이카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강을 따라 걷고 페달을 밟으며, 특별히 출렁거리는 다리(suspension bridge) 세 개와 댐 몇 개 건너기를 반복하면서 함성을 지르며 즐거워하는 모습들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한다.

강물 위를 함께 노 저으며

댐으로 생긴 호수에는 어김없이 보트를 띄우고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송어를 낚으려는지 배 후미에는 가느다란 낚싯대가 꽂혀 있다. 작은 선착장에서는 동네 아이들이 첨벙거리며 다이빙을 하고 무자맥질을 하며 까르르하는 웃음소리는 수면 위로 원을 그리며 멀어져간다.

시원하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워터 스키를 타는 사람도 있고, 카라피로 호수에 이르면 뉴질랜드 조정(rowing)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카라피로 공원(Karapiro Domain)이 나온다. 여기에는 조정, 요트, 수상스키 등 물과 관련한 여러 스포츠 클럽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조정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꿈의 경기장이다.

벌써 10년이 흘렀다. 2010년 어느 따스한 봄날, 나는 마침 그 근방을 지나고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세계조정대회(2010 World Rowing Championships)가 열리고 있었다. 유럽인들의 전유물이다시피 하여 나 같은 아시안들에게는 생소한 조정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도록 나를 깨워주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강가의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함성을 들은 후, 이제는 올림픽 등에서 뉴질랜드 선수들의 선전하는 모습이 비치면 관심을 두고 응원의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뉴질랜드 조정팀은 올림픽, 코먼웰스 게임(Commonwealth Games)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또 어느 도시를 가든지 물이 있는 곳에서는 기다란 조정을 서로 어깨에 들춰 매고 물가로 향하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조정은 팀워크가 매우 중요한 운동이다. 언젠가 와카타네(Whakatane)강에서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 제법 어두움이 깔리기 시작할 시간인 데도 불구하고 콕스(cox, 키잡이)의 구령에 따라 선수들이 기압 소리를 내며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 그대로가 그야말로 금메달감이었다.

한눈팔기에도 좋은 길?

망가키노 강가를 출발하여 와이파파 로드를 따라 천천히 1시간을 달리면 갈래 길이 나온다. 곧바로 카라피로 댐 쪽 방향으로 나아가 1번 하이웨이를 만날 수도 있지만, 나는 다시 여기서 아라푸니(Arapuni) 댐을 향해 갔다.

이제 속도를 늦추며 다시 와이카토강을 건넌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댐 위를 지나야 한다. 여기서 조금 망설여질 것이다. 길을 아는 사람은 이미 망설임이 벌써 발동했을 것이지만, 초행길이라 하더라도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편으로 보이는 아이스크림도 팔고 커피도 파는 푸드 트럭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제법 명성을 얻고 있는 이 푸드 트럭은 땀을 흘리며 달려온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큰 유혹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앞에는 웅장한 댐 위를 자동차로 건너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운전자에게는 그야말로 망설임이다.

여기서 댐을 건너지 않고 바로 발전소 방향으로 갈 수도 있고, 댐을 건너 아라푸니 마을로 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잠시 뒤 두 길은 다시 반갑게 만나게 되고 강변으로 길게 뻗은 호라호라(Horahora) 로드를 따라가게 되는데, 이 길은 놓친다면 정말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길도 곧고 평평하고 오가는 차도 거의 없어 약간 한눈을 팔아도(?) 될 성싶은 그런 길이다. 물론 그러면 아내한테 또 잔소리 들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힐끗힐끗 강을 향해 눈을 두고 달리면 어느새, 와이카토 리버 트레일의 종점이자 시작점에 이른다. 종점이 시작점이고, 시작점이 종점이 되는 이 원리는 또 무엇인가를 깊게 생각하게 한다. 왼편으로 난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넓게 펼쳐진 파노라마에 실컷 젖어보자. 이어지는 길은 이내 1번 하이웨이를 만나 오클랜드로 향하게 한다.


나명균_조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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