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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화의 상담 이야기] 소통하는 기술을 가르쳐 드릴까요

정인화의 상담 이야기(13)

인생은 마라톤이니까 너무 빨리 가려 하지 말고 천천히 가자.
조급해서 빨리 뛰다 쉽게 지칠 수도 있다.
출발이 빨랐다고 먼저 성공한다는 법칙은 인생에 없다.
마라톤과 마찬가지로 소통은 어렵고 오랜 인내를 요구한다.
인간관계와 소통 방법에 있어 정답은 없다.
무한한 노력이 있어야 성공할 것 같다.


지난해 말, 크리스마스 선물로 넷플릭스를 신청했다. 볼 것이 너무 많아 처음에는 신이 났다. 이것저것 조금씩 맛보다가 결국에는 한국 드라마에 꽂혀 버렸다. ‘미생’과 ‘미스터 션샤인’를 다 보고 지금은 ‘초콜릿’을 거쳐 ‘사랑의 불시착’을 기다리고 있다.

하루에 몇 시간씩이나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으니 식구들은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재밌어”와 “같이 보자”는 말로 그들을 달래려 노력했다. 진정성이 없어서인지 무슨 말을 해도 안 먹힌다. 이들을 한 방에 조용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하다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야”라고 웃자고 말을 던졌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불편한 이유는

‘소통’하면 그룹 상담 시간에 만나는 A가 생각난다. 그는 키가 제법 크면서도 마른 체형을 가진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삼십 대 중반의 유러피언이다. 광고 회사에 다니는 그는 아이들 양육 문제로 일 년 넘게 전처와 협상 중이었는데, 그 과정이 힘들다고 털어놓으며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한다.

하지만 그룹 상담 시간에 남들을 관심 있게 쳐다볼 뿐 그가 먼저 말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어쩔 수 없이 말을 하게 될 때 그는 논리적으로 흑과 백이 뚜렷하게 자기 생각을 표현한다.

A가 펼치는 논리 전개에 고개를 끄떡이면서도 불편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른 그룹 구성원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복종하듯이 아무 말도 선 뜻 내뱉지 못하는 내 모습이 싫어진다. 그러면서도 조금은 공격적이면서도 차갑게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에 쫄아서 몸을 사리면서 내 행동을 계속 정당화시킨다.

변화 이루는 과정에서 늘 장애물 만나

변화를 이루어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늘 장애물을 만난다. 개인적으로는 장애물을 없애기보다는 포용하는 것에 더 끌린다. 포용하는 능력을 기르는 게 앞날에 만날 또 다른 장애물을 이겨내는 데 더 도움이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관계 개선을 위해서 좋고 효과적인 소통을 원하는 A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무엇일까?’를 상상해 본다. 논리로 포장된 그의 소통하는 방식을 잘 살펴보면 상하가 구분되어 있는 것 같았다.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라는 믿음이 상대방을 무시하는 듯이 훈계하고 설교하는 그의 말과 멀리 떨어져서 상대방을 관찰하는 듯한 행동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하듯이 논리를 펼치다가도 상대방이 불편해하면 농담이라고 발을 뺀다. 가만히 있으면 모자란 느낌이 들고 가까이 다가갈 때는 뒷걸음치는 그와 가까워지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자 내 가슴이 아파진다. 더불어 살고 싶으면서도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할지도 모르는 그를 연민의 눈으로 쳐다봤다.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없지만, 우리에게 경고를 한다. 안전을 위해 감정이 주는 경고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그룹 상담을 통해 느껴왔던 A에 대한 느낌이나 경험을 되돌아봤다. 그에게서 가장 많이 받았던 감정은 두려움과 연민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행동의 패턴을 특별히 부각하지 말고, 내가 느꼈던 무서움이란 감정을 다스리면서 연민이란 내 경험을 안전하게 나누는 방법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내 경험을 공유했던 날, A는 울먹였다. 다치지 않기 위해 말로써 남을 밀어내고 멀리 거리를 두고 말을 돌 던지듯이 뱉었던 패턴을 바꾸고 싶다고 한다. 구박받으면서 자라온 그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들으니 내 가슴 한구석이 멍이 든 듯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 아픔을 많은 그룹 구성원들이 느꼈는지 그의 행동을 이해한다는 응원의 말을 한마디씩 던졌다. 이를 꽉 문 A의 눈가가 심하게 떨렸지만, 그들의 응원을 무시하지 않았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가 고맙다고 얘기한다. 소통을 통해 하나가 되어가는 이들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소통, 어렵고 오랜 인내를 요구해

사람들은 남들과 말할 때 수동적이거나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거나, 관계를 맺는 데는 안정형과 불안전형과 같은 패턴을 보일 수도 있다. 이것들을 좋고 나쁜 이분법적인 눈으로 보지 말자.

예전에는 생존에 도움이 되었던 패턴이 나이와 환경이 바뀌어 감에 따라 불편해지는 때가 있었다. 이럴 때는 과감하게 성향과 패턴을 바꿔야 하는데, 친숙하고 안전하다는 사실로 계속 아는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결론은 같고 힘이 더 드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인생은 마라톤이니까 너무 빨리 가려 하지 말고 천천히 가자. 조급해서 빨리 뛰다 쉽게 지칠 수도 있다. 출발이 빨랐다고 먼저 성공한다는 법칙은 인생에 없다. 마라톤과 마찬가지로 소통은 어렵고 오랜 인내를 요구한다. 인간관계와 소통 방법에 있어 정답은 없다. 무한한 노력이 있어야 성공할 것 같다.

A는 공격적으로 소통하려 했던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자존심을 버리고 용감하게 도움을 청했다. 오랫동안 친숙해져 있던 패턴에서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더 고통받지 않고 남들과 더불어 살겠다는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소통 방법 배우니 삶의 질 더 나아져

내게도 상대방이 싫어할까 봐 거절도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빌려주고 나서 돌려달라고 말도 못 했다. 그 시절에는 상대방이 알아서 해주기를 바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웃음이 나오지만,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 했던 나를 구박하고 싶지는 않다.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며 남들과 원만하게 살려 노력하다 보니 삶의 질이 예전보다 나아지는 것 같다.

다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오늘도 드라마를 통해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자라는 생각으로 넷플릭스를 켰다.




정인화 _심리 치료사
021 0262 3579
junginhwa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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