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인종 차별

정말 무섭고, 조심해야 하는 인종 차별은 지식인들의
생각 깊이 박혀 있는 밖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차별


버스를 타고 대학에 다니면서 즐거웠던 일 중의 하나는 뉴마켓을 지나기 전, 길가에 있던 작은 꽃가게에서 날마다 큰 칠판에 써서 내걸어주는 명언을 읽는 일이었다.

어느 날 그 칠판에 적힌 엘리너 루스벨트가 한 말을 읽고 그때까지도 내게 큰 숙제로 남아 있었던 인종 차별에 대해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지 열쇠를 얻게 되었다.

“어느 누구도 당신의 동의 없이 당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할 수 없다.(No one can make you feel inferior without your consent)”

열등감과 인종차별의 상관관계보다는 주체 의식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인식이 달라질 수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는 것이 큰 열쇠가 되었다. 그동안 차별을 하는 가해자에게만 집중을 했었는데, 사실 열쇠는 나에게 있었다. 또한, 가해자가 있지만, 나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도 터득했다.

뉴질랜드는 호주나 미국에 견줘 인종 차별이 ‘별로 없는’ 나라로 한국인에게 소개되지만, 어느 사회든 차별이 없는 곳은 없다. 소수 민족으로 생활하면서 겪는 인종 차별은 이민자로서 피할 수 없는 부분이면서도, 그 누구도 나에게 인종 차별을 겪으면 어떻게 대처하라고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큰 의미 없는, 짓궂은 십 대 남자 아이들의 장난 정도밖에 안 되는 일들이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내게 중국어로 인사를 하거나, 장난으로 만들어낸 일본식 이름, 중국식 이름으로 날 부르거나, 너희 나라에서는 고양이나 개를 먹느냐는 식의 질문을 계속하는 일을 처음 겪었을 땐 꽤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영어로 시원하게 무어라 쏘아붙일 수가 없어 대답할 수가 없었고, 그 뒤에는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무시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반응이 없어 재미가 없었던 것일까? 나에게 그런 장난을 하는 학생은 금세 없어졌다.

그래도 내가 그런 인종 차별적 놀림에 의연할 수 있었던 것은 영어 선생님 덕이었다. 반에서 나를 놀리는 남학생을 발견하신 선생님께서 그 학생을 야단치시는 대신 반 학생들 전체에게 말씀하셨다.

“말도 안 통하고, 모든 것이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 생활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너희는 아니? 나도 잘 몰라. 그런데 한국에서 온 민정이는 지금 그 어려운 것을 해 내는 중이야. 난 그것이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런 용기는 너희도 배우면 도움이 될 것 같구나.”

안타깝게도 그 말씀이 그 남학생의 생각을 바꾸지는 않았다. 대신 반에 많은 학생이 나의 어려운 처지에 대해 좀 더 이해를 해줬고, 남학생들이 놀릴 땐 내 편이 되어주었다. 이런 식의 미성숙한 아이들의 장난 차원의 인종 차별은 크게 무서울 것이 없었다. 크게 마음 아파할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정말 무섭고, 조심해야 하는 인종 차별은 지식인들의 생각 깊이 박혀있는, 밖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인종 차별이다. 소위 고등 교육을 받은, 대학을 나온 어른 중에도 있고, 정치인이나 대학교수 중에도 인종 차별을 하는 사람을 만나 봤다.

그런데 가장 마음 아팠던 일은 인종 차별이 심한 국가 중의 하나가 한국이라는 것을 깨달은 일이었다. 늘 인종 차별을 받는 입장에서만 생활을 해 봤던 나는 내 입장만을 생각하느라, 한국에서 인종 차별을 받으며 사는 외국인들에 관해 관심을 가질 새가 없었다. 한국도 국민 인식이 성숙해져서 인종 차별이 없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한국인 이민 1.5세대로서 두 나라에 모두 기여할 방법은 내가 만나는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서 서로 간의 이해관계를 쌓고, 인종 차별의 벽을 허물 수 있도록 적극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민정_한인 1.5세대 교사(크리스틴 스쿨)

◼︎외부 필자의 글은 뉴질랜드타임즈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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