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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여행(1) 당신은 지금 가을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습니다

가을 여행, 기차 한 번 타 보실래요?

Waikino-Waihi, 그리고 옛 금광길 걷기

3월 2일(토) 아침 9시 차를 몰고 오클랜드를 벗어났다. 여름과 가을이 막 옷을 바꿔 입으려고 하던 날이었다. 잠깐 사이 반소매 옷을 입을까, 긴 윗도리를 걸칠까 고민했다.
오클랜드의 경계인 봄베이를 지나 2번 국도로 들어섰다. 오클랜드와는 조금은 다른 더 가을 같은 날씨였다.


와이키노-와이히 기차 타면 30분 걸려
오늘의 첫 목적지는 와이키노 역(Waikino Station). 그 기차를 한번 타고 싶었다. 몇 주 전 뉴질랜드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카티카티(Katikati)를 다녀왔다. 내가 돌보는 한솔문화원에 책 수백 권을 기증하겠다는 한 시인의 전화를 받았다.
그때 바로 이 길을 거쳤다. 계곡 사이로 흐르는 시원한 물이 내 눈을 끌었다. 얼핏 본, 기차역이 ‘죽은 사회의 중년 남자’의 의식을 깨웠다. ‘시간을 내 기차를 한 번 타야지.’
그게 이렇게 빨리 현실이 될지는 몰랐다. 맘이 급했다. 빨리 기차에 올라, 옛 추억에 젖고 싶었다. 스무 살 가을 어느 날, 기타와 라디오를 손과 등에 들고 이고 기차 여행을 했었다. 그곳이 춘천이었고, 부산이었다. 기차로 두 시간, 혹은 열두 시간이나 걸리곤 했다. 내 청춘의 가을 기차는 조금은 회색빛이 돌았다. 군사 독재 시대가 주는 중압감도 한몫했을 것이다. 자유가 없던 그 세상, 젊은 영혼은 방황하곤 했다.
기차에는 나이 든 사람이 유독 많았다. 단체 관광객이었다. 더러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도 눈에 띄었지만 가을을 지나, 어쩌면 겨울 끝에 왔을지도 모를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다.


승객 100명 정도 탈 수 있어…자원봉사자 눈길
해맑은 웃음을 띤 자원봉사자의 손길과 발길이 분주하다. 기차가 곧 출발한다는 뜻이다. 승객이 탈 수 있는 차량은 고작 두 개, 많이 타야 100명도 안 되어 보인다. 다행히 지붕 없는 차량이 따로 있어 결코 자리가 없어 못 타는 경우는 없겠다는 안도감이 든다.
‘골드필드스 레일웨이.’(Goldfields Railway)
와이키노(Waikino)와 와이히(Waihi)를 오가는 관광 기차다. 주말이나 공휴일에 주로 운영한다. 가끔가다가 ‘특별히’ 주중에도 기차를 탈 수 있다. 기찻값은 어른 편도에 $15.00, 왕복은 $20.00이다. 시간은 편도로 30분이 걸린다. 거리도 짧고 시간도 아쉽기는 하지만 가을 여행치고는 단풍 한번 보고, 옛 생각에 한 번 빠지고 하는 데 딱 좋다.
참고로 와이히에서 탈 수도 있고, 와이키노에서도 탈 수 있다. 될 수 있으면 와이키노에서 기차를 왕복으로 이용하기를 권한다. 이유는, 기차 여행을 끝낸 뒤 바로 옆에 있는 그림보다 멋진 물과 나무를 벗 삼아 도보 여행을 할 수 있어서다. 내가 그렇게 했다.
뉴질랜드에서 기차를 타본 적이 거의 없다. 오클랜드 교통국(AT)에서 운영하는 기차를 두 번 정도 탄 게 다다. 승용차로 이동하다 보니 굳이 기차를 탈 기회가 없다. 그 아쉬움을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언젠가 시간을 내서 오클랜드-웰링턴 기차 여행을 해보고 싶다. 손에는 스마트 폰 대신에 시집을 두세 권 들고 말이다.


시속 10km~20km, 사람 걸음보다 조금 빨라
기차는 시속 10km~20km로 달린다. 사람 걸음이나 달리기보다 조금 빠른 정도다. 그사이 나뭇잎이 부끄러운 듯 빨개지는 게 보인다. 저 멀리 시냇물이 가을을 맞기 위해 차가워지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내 마음이 더 하늘로 빨려 가고 있다는 서글픔도 몰려온다.
갑자기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1871~1940)가 쓴 ‘가던 길 멈춰 서서’라는 시가 떠오른다. 와이키노 기차 여행 소감은 이 시로 대신한다.


근심에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까?
(중략)


햇살 눈부신 한낮, 밤하늘처럼
별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아름다운 여인의 눈길과 발
또 그 발이 춤추는 맵시 바라볼 틈도 없다면
눈가에서 시작한 그녀의 미소가
입술로 번지는 것을 기다릴 틈도 없다면


그런 인생은 불쌍한 인생,
근심으로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옛 금광터, 카랑가하케 협곡에서 걷기 여행도 즐겨
카랑가하케 고지(Karangahake Gorge)로 들어섰다. ‘Gorge’는 ‘협곡’, ‘골짜기’라는 뜻이다. 주차장에 차를 대기가 무섭게 가을을 알리는 물소리가 나뭇잎 향기를 반주 삼아 노래를 불렀다. 이 지역은 옛 금광터다. 1800년대 말, 수많은 사람이 “금 따러 가세”라는 행진가를 외치며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한때 2,000명이 거주할 정도로, 뉴질랜드에서는 큰 마을 중 하나였다. 호텔이 두 곳이나 있었고, 술집은 사방에 널려 있었다. 금 딴 사람이 힘든 노동 끝에 즐긴 그들의 잔치였을 것이다.
이곳은 걷기 여행(trail) 코스가 잘 짜여 있다. 20분 잠깐 걷기에서부터 한 시간 반 숨 고르며 걷기, 그리고 반나절을 넘게 들숨과 날숨의 행진을 해야 하는 거친 걷기까지. 게다가 자전거(산악용) 길도 잘 꾸며져 있어 뉴질랜드는 물론 전 세계 자전거 동호인들이 즐겨 찾고 있다.
나는 윈도우 트랙(Window Track)을 골랐다. ‘윈도우’(창)이라는 단어가 맘에 들었다. 한 시간짜리다. 얼마 전 도보 여행을 하다가 발을 다쳤는데 그 후유증이 남아 있어 조금은 쉬운 길을 골랐다.
옛 금광의 흔적을 따라 걸었다. 산길이라기보다는 그냥 들길로만 보였다. 10여 분을 걷자 갑자기 동굴이 나타났다. 이 지역을 올 때 반드시 손전등을 가지고 가야 한다는 여행안내가 생각났다. 그런 동굴이 몇 개나 나왔다. 짧게는 몇십 미터에서 길게는 백 미터가 넘어 보이는.


윈도우 트랙에서 본 세상은 ‘딴 세상’
‘윈도우 트랙’이라고 한 이유는 산 위 중간중간 창문형으로 된 전망대가 있어서였다. ‘창에서 본 세상’은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바로 ‘딴 세계’다. 신선이나 살 것 같은. 왜 이곳이 코로만델 지역에서도 손에 꼽히는 ‘꼭 들러야 하는 곳’이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협곡 사이에는 울창한 나무숲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고, 그 아래에는 거친 강물이 땅속까지 뚫으려는 듯 거칠게 흐르고 있었다. 가을은, 숲과 물이 조화를 이룰 때 가장 멋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길 곳곳에 옛 금광터의 발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철길도 그대로고, 그 당시 쓰였음 직한 운반차도 덩그러니 놓여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옛날로 돌아간다면, 나만의 금을 한 움큼 캐낼 수 있을까. 그도 아니면, 내 인생의 황금 같은 추억이라도 되찾을 수 있을까.
걷기 여행이 끝나갈 즈음, 옛 시골 동네의 개울물 같은 게 보였다. 그곳에 선남선녀 몇이 옷을 벗고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아니, 그냥 물장구치며 노는. 사진기를 꺼냈다. 가을을 머금은 그들의 찰나를 영원한 기록으로 남겼다.
하루 가을 여행을 즐겼다. 가을의 속도는 얼마나 될까. 가을의 참 색깔은 무엇일까. 그게 갑자기 궁금해졌다. 오클랜드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 나름의 정답을 찾았다.
가을 속도는 내 마음의 속도와 같다. 가을 색은 단연코 금색. 왜냐. 나는 지금 가장 편한 속도로 살고 있고, 가장 황금 같은 날들을 보내기 때문이다.

가을 여행, 지금도 여름이나 겨울로 착각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권한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무효다.”
부디 시간을 내 하루 정도 자연을, 가을을 즐기길 바란다.

글과 사진_프리랜서 박성기


www.waihirail.co.nz 
전화: 07 863 9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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