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 향수, 화상 장례식

뉴노멀, 향수, 화상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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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스 영의 건강 읽기(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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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Homesickness)

사람들은 약점을 한 두 가지씩은 가지고 살기 마련이고 이민 온 나는 또 다른 약점이 있다. ‘그리움’이다. 가족, 친구, 지인을 보고 싶어도 쉽게 만날 수 없고 갑작스러운 부고가 생겨도 당장 달려가지 못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지금의 팬데믹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일상화되도록 강요받고 있으니 향수가 우울증 같은 병이 되기 쉽다. 이민을 사는 우리의 ‘아킬레스건’일지도 모른다. 


코로나가 가져온 뉴노멀을 거스를 수 없다면 고국과 이곳 사이에 ‘새로운 통로’를 만들어 보자. IT와 SNS 등을 잘 활용하고 유연하게 대처한다면 ‘변화는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길’이 될 수도 있다. 

새길은 향수가 아니라 삶을 향유하는 데 도움이 되고, 우울감에서 비롯되는 통증을 미연에 방지 할 수도 있다. 동양의학은 병이 생기기 전에 ‘예방 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으니, 이만한 예방법이 또 있을까.


뉴노멀 (New Normal)

함께 이민을 살아가는 이웃 또는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정사가 나오기도 한다. 이런저런 사연이 많다. 주로 어려웠던 또는 어려운 관계에 관한 것들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이 칼럼에서는 ‘고국과 관련된 관계’에 집중하겠다.)


특히나, 우울감,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심한 환자들은 자신도 몰랐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진료하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라포(Rapport)가 형성되고 맺혔던 응어리가 풀려 통증도 서서히 사라져 행복해한다.


관계의 문제는 이민자의 것만은 아닐 텐데, 유독 힘들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한국에 살고 있어도 바쁘다는 핑계로 서로 연락 안 하거나 못하고 살기는 마찬가지 일 텐데. 아마도 ‘몸이 멀리 있으니 마음도 멀어진다’는 고정관념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래전 이민 온 1세대는 교환원을 통해 어렵게 연결된 국제전화로 안부를 묻고는 했다. 약간씩 지연되는 상대방 음성에 대화가 어긋나고 일 년에 한 두 번 목소리를 듣는 것이 전부였으니 해가 갈수록 몸의 거리만큼 마음도 멀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몸은 멀리 있어도 버튼 하나로 코앞에서 볼 수 있는 시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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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장례식

지난 금요일 아침 출근길, 클리닉에 도착할 즈음 갑작스러운 아버님의 임종 소식을 들었다. 

다급한 목소리 너머로 “오빠! 흑흑 어떡해! 아빠가 갑자기 숨을 안 쉬어! 돌아가신 것 같아!...” 


차에서 내리자마자, 클리닉으로 뛰어 올라갔다. 거칠어진 숨을 참고 화상통화 버튼을 눌렀다. 온몸 여기저기 꽂혀 있는 주사바늘 사이로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고, 심장박동을 나타내는 네모난 장비 속 선 그래프는 평평하게 늘어져 바닥에 있고 숫자는 ‘0’을 나타내고 있었다. 


2020년 8월 7일 새벽 6시 6분, 아버님은 85년 3개월여 동안 거친 이 세상에 머무시다가, 오래전 먼저 별이 되신 어머니 곁으로 떠나셨다.  


머릿속이 멍 해지고 가슴은 먹먹했다. 

장례식에 맞추어 갈 수 없음이 확인되고, 뉴질랜드에서 한국에 있는 조문객과 가족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스마트폰의 화상통화를 이용해서 실시간으로 장례식에 참여하기로 했다. 아내와 나 그리고 대학생인 두 아들은 장례복장을 갖추어 입고, 장례식장에 있듯이 삼 일을 지냈다. 


새로운 시도에 어르신들은 조금 낯설어 하셨지만, 대부분 조문객들은 차분하고 따뜻한 미소로 위로와 애도를 전해 주었고, 우리도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마치 장례식장에 마주 앉아 있는듯했다. (다시 한 번,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합니다.)


두 아들에게는, 친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낯선 사람들이었다. 조문객을 맞을 때 마다 관계를 이야기해주며 가족의 소중함, 관계의 중요함을 전해주었다. (손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시간, 아이들은 사뭇 진지하고 경건하게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가시는 길을 애도 했다.)


다시 오고 싶다 하셨는데 

지난해 가을, 힘든 수술이라 위험 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비행기표를 끊었다. 

한달음에 아버지 앞에 나타난 아들이 반가우셨는지 눈물을 보이셨다. 정이 많으시고 남을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밴 아버지는, 통증으로 잠 못 이루실 때마다 애써 미소를 지으시며 내게 이런저런 옛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그것이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더 오래 더 많이 귀찮게 해드렸어야 했는데)


일 주일여 동안 병실에서 함께 지낸 시간 동안 아마도 이제껏 부자지간에 나누었던 것보다 더 많은 눈빛과 정을 나누었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건강을 빠르게 회복하셨다. 그리고 다음번에 다시 뉴질랜드에 오셔서 꼭 큰 스내퍼를 잡아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낚시를 무척 즐기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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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민의 단초는 아버지

어릴 적 저녁때마다 들리던 라디오 소리, 영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 아버지가 들으시던 AFKN (American Forces Korean Network)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영어소리였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동두천 미군 부대에서 민간인 군무원(?) 일을 하셨었다. 어려운 집안 살림살이에 어울려 보이지 않는 이런저런 미제 용품이나 라디오가 결혼 전 나름 잘 나가셨던 아버지의 흔적들이었다.


브라운관 앞에 짙은 나무색 여닫이문이 있고 네 발로 서는 큼지막한 금성 텔레비전을 사오시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애국가를 끝으로 정규방송이 끝나도 AFKN은 계속되었고, 내가 사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뭉게뭉게 세상 밖으로 나갈 궁리를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중학생 때 영어공부를 위해 스웨덴 아이와 펜팔을 하게 되고 그룹 아바(ABBA)를 알게 되고 ‘I have a dream’을 들으며 내 꿈을 하나하나 키웠었다.



[밸런스 영의 건강 습관 Tip] 


아버님께 매번 나의 건강칼럼을 보내 드렸었다. 중의사 아들이 권하는 식이요법에 신뢰를 보이셨고, 칼럼도 챙겨 보시는 듯했다.

이제는 더이상 받으실 수 없다. 하지만 당분간 계속 보내 드리려 한다. 아버님 온라인 계정이 사라지기 전까지.

혹시, 멀리 있는 가족, 친지 그리고 친구들과 그동안 풀지 못했던 숙제가 있었다면, 저자의 경험을 거울삼아 해답을 찾아보시길 바라본다.


관계가 유지되려면 ‘표현’이 필요하다. 마음에만 담아두지 말고 표현하자. 표현할 수 있을 때 표현하자.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가슴에 사무치는 날이다.

(원래, 다른 주제의 건강법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했다. 그런데 원고를 넘기기 며칠 전 아버님의 임종을 맞았다. 애도 기간에 건강법을 말하려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양해 바랍니다.)



김영철

027 630 4320  ㅣ  tcmykim1218@gmail.com

Balance Young Clinic Ltd.

◼나누고 싶은 건강 노하우가 있으시면 연락 바랍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칼럼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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