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잘하지 못해도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다

영어 잘하지 못해도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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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임수의 열린 상담이야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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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이 직업인 사람이다. 영어가 ‘말’인 나라에서 ‘말’이 안 통해서 받는 스트레스도 크고, 또 한편으로는 ‘말’이 아닌 ‘마음’으로 통할 때 얻는 기쁨과 보람도 크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말’이 중요하지만 ‘말’만큼(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도 많은 것 같다.


이곳 교도소에서 수감자를 대상으로 ‘분노조절장애’ 프로그램을 운영한 지가 1년이 다 되어간다. 물론 나의 ‘개떡’ 같은 영어로 말이다. 이 교육의 목적은 자신의 감정 흐름을 잘 이해하고 이를 잘 돌봄으로써 충동적인 행동을 줄이는 데 목적이 있다. 수감자 입장에서는 교육수료증(Certificate)을 받아 놓으면 나중에 보석 신청할 때 도움도 되고, 교육시간 동안 다른 수감자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으니 나름대로 꽤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교육수준도 천차만별이고 억양도 각양각색이며, 그들만이 사용하는 속어나 은어(슬랭) 때문에 나로서는 늘 부담스러운 숙제를 치르는 기분이다. 우리 한국어만 해도 서울깍쟁이 말, 각 지방 사투리, 중국의 연변어, 중앙아시아의 고려어 등 얼마나 다양한가. 솔직히 같은 한국사람끼리도 완벽하게 의사소통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코스를 처음 시작할 무렵에는 못 알아듣는 말 때문에 창피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만의 대처법이 생겨났다. 


첫째, 못 알아들으면 일단 웃는다. 둘째, 웃은 후에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충 하고 그 위기(?)에서 벗어난다. 나름의 노하우이다. 가끔은 한국어도 섞어서 한다. '옳지, 굿잡!'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료(물론 영어가 모국어인 친구이다)의 고백도 나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나도 이 사람들 말 다 이해하지 못해!” 


이 프로그램에 가끔은 영어를 전혀 못 하는 사람이 참가하는 경우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참가가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 없으면 잇몸’을 사용한다. 서로 몸동작을 하면서 ‘가족오락관’ 퀴즈 풀이하듯이 깔깔대며 웃는다. 이런 그룹은 교육이 끝나고 수강자들의 피드백도 좋다.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어가 공용어인 뉴질랜드 혹은 외국에서 살아가는 우리 해외 교민들은 현지인과 교류하면서 ‘말’로 천 냥 빚을 갚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미리 낙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짧지 않은 이민생활 중 한국분들이 언어를 초월하여 뉴질랜드인들과 친교와 사랑을 나누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만났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정말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어르신분도 있었다. 70대 중반 한국 어르신의 술 친구 50대 키위 아저씨 이야기이다. 서로 이웃지간인 둘은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함께 술을 마신다. 키위 아저씨가 주로 와인을 가지고 온다고 한다. 사실, 이 모임의 호스트는 할머니이다. 두 남자를 위해 김치전이나 간단한 안주를 꼭 만들어 주시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합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그냥 자기 편한 대로 말하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중간에 내가 어쭙잖은 영어로 통역하는 것이 머쓱할 지경으로 말이다. 키위 아저씨에게 물었다. ‘말도 전혀 안 통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친할 수 있느냐?’ 그 아저씨 왈, “나는 Mr ***이 그냥 좋다. 여기 와서 술 마시는 것이 더없이 행복하다. 다른 이유 없다.”


또, 언어를 초월한 황혼의 로맨스도 있다. 십수 년 전 이야기이다. 70대 한국인 할머니가 키위 영감님을 만나 결혼식을 하고 신혼살림을 꾸리셨다는 교민지 뉴스를 기억하는 분이 계실 것이다. 그야말로 교민사회에 신선하고 훈훈한 뉴스였다. 그 할머니의 절친인 다른 할머니께 들은 바로는 ‘두 분의 신혼생활에 깨가 쏟아진다’는 것이었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는데 까짓것 언어 따위가 뭔 장벽이 되랴. 


우리 한국인들은 수천 년간 동일 문화, 언어 안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2020년 기준으로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250만 명이라고 한다. 이제 한국의 거리에서 외국인들을 만나는 것도 흔한 일이고, 한국어를 징그럽게도 잘하는 외국인들도 TV에 넘쳐난다. 이제는 한국 사회도 이들을 공동체의 일원이요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뉴질랜드에 이민 와서 사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와 다른 생김새,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주변의 키위, 마오리, 퍼시픽 아일랜더 혹은 다른 아시안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고 있는가? 행여나, 나의 어설픈 영어 때문에 인종차별이나 무시를 당하지 않을까 하여 지레 움츠러드는 것은 아닐까. 


영어는 의사소통의 도구이지, 인격과 품성의 평가 기준이 아니다. 영어를 멋들어지게 못 해도, 더듬더듬 말을 해도 운동과 취미 등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부분이 많고, 이를 통하여 그들과 따뜻한 우정을 나눌 수 있다. 인종과 언어가 달라도 사람의 심성은 다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용기를 가지고 먼저 웃으면서 다가가 “헬로” 인사하시라. ‘말’을 넘어선 ‘마음’이 서로를 이어줄 것이다. 


록다운이 끝나면 키위 이웃에게 불고기 한 접시 들고 인사나 가야겠다. 밤새 수시로 짖어대는 강아지 소리 잘 참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꼭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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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임수_아시안패밀리서비스 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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