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끝자락에 서서

강의 끝자락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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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그리고 사람들(24) Waikato River


그 때가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나와 아내는 지인 부부와 함께 통가리로(Tongariro Crossing)를 돌아온 일이 있다. 그곳에 이 강의 시작점이 있었다. 그리고 로토루아에 살던 덕(?)에 투랑이, 타우포, 그리고 오클랜드를 오가며 이 강과 함께 여러 날을 살아왔다.


오늘은 이 강의 끝자락에 서 있다. 흐름을 멈추지 않는 강물과 모래언덕 넘어 타스만 바다의 거친 파도가 보인다. 겨울 바람이 제법 차갑다. 강 바람이라고 해야 할지, 바다 바람이라 해야 할지 분명하지 않지만, 차가운 바람이 작은 모래 입자들과 함께 뺨을 스친다. 순간 뒤를 돌아보니 모래 위에 남아 있던 내 발자국들이 지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쌓인 모래들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날을 지나 강 하구에 거대한 모래둔덕을 만들어 놓았다.


자연은 그렇게 생명력을 갖고 우리와 함께 한다. 동식물만 아니라, 강물도 모래도 그렇다. 그런데 인간은 그 생명이 자신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에 빠져 사는 것은 아닌가 싶다. 자연 앞에서 조금만 더 겸손해보고자 마음을 다독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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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멀리 길고 흰 뭉게구름 아래는 강물이 바다물과 하나되는 곳이다. 강가의 아마(Flax) 한 무리가 바람결에 손인사를 한다. 


거대한 모래언덕

강과 바람이 이렇게 거대한 모래언덕을 만들어 놓았다. 모래 빛깔만 다를 뿐, 마치 바다와 잇대어 있는 서아프리카 나미비아 사막 어느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뉴질랜드에는 곳곳에 이런 모래언덕을 많이 품고 있다. 여름철 아이들은 보드 한 장으로 물놀이도 하고 모래언덕에서 모래 썰매도 타곤 한다. 북쪽으로 마지막 검은 모래를 볼 수 있는 베델스 비치 모래언덕(Bethells Beach sand dunes)은 여름 내내 가족들과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언덕 위에서 미끄러져 내려가면 곧바로 개울과 호수로 빠지기 때문에, 스릴과 시원함을 동시에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입장료도 없다. 아이들에게는 내려갔던 언덕을 힘들게 다시 올라오는 것이 값이고, 그 엄마에게는 남겨지는 빨래감이 값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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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트 와이카토의 선셋 비치(Sunset beach)는 많은 젊은이를 불러 모은다. 서핑을 즐기기에 좋은 높은 파도가 하얀 포말을 만들어내며 넘실거린다.


젊음과 낭만이 넘치고  

모래 언덕을 나와 바다 쪽에 서니, 물과 바람과 어울려 생동감 넘치는 사람들을 만났다. 낚시대를 둘러멘 사람, 커다란 보드를 옆구리에 낀 사람. 저리도 좋을까? 낚시꾼과 서퍼(Surfer), 그들은 똑같이 바다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날의 기상 상황을 확인하는 순간에는 180도 반대이다. 그런 면에서 그곳에서 거친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 위에 점점이 물개처럼 떠 있는 사람들을 염려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나는 낚시꾼 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긴 서핑은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하겠지. 


저 젊음과 낭만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서핑을 마친 두 사람이 키보다 큰 보드를 들고 주차장으로 나온다. “Hello!” 인사를 주고받으며 깜짝 놀랐다. 서양인 나이를 가늠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내 나이와 엇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랬다. 저 거친 파도를 아랑곳하지 않고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두 젊은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다. 

팔을 뻗어 손가락 세 개가 들어가는 수평선과 태양 사이의 간격을 확인하고 3,40분의 저녁 노을을 기다리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나의 낭만과는 어딘가 분명히 차이가 난다. 


다소 외로워 보이는 작은 포구

와이카토 강이 끝나는 이곳에 항구의 뜻을 가진 포트(Port)가 앞에 붙인 것은 초기 이민자들이 몫이었다. 와이카토 강을 이용하려는 시도를 많이 했다. 실제로 이곳에서 와이카토 전쟁을 위한 선박을 건조했었고, 시드니에서 오는 병사들과 물품 하역기지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세기에 이르면서 항구와 정착지로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강의 끝자락에서 볼 수 있는 모래톱의 모습은 수시로 변한다. 큰 홍수가 나거나, 강한 바람을 동반한 사이클론이 몰아치면, 이곳의 삼각주나 모래언덕에 급격한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지금의 포트 와이카토의 오래된 선착장은 작은 낚시배를 띠우는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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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포트 와이카토 선착장 앞에 있는 마을 도서관이란다.

이렇게 작은 도서관이 있을까 생각하며 책장을 열어 보니,아이들 책부터 소설, 요리, 잡지 등 그래도 제법 구색을 갖추어 놓은 앙증스럽다. 


마침인가, 새로운 시작인가?

포트 와이카토 선착장 끝에 서서 강물을 바라본다. 강물은 동그랗게 작은 소용돌이를 그리며 긴 여행에 지친 모습으로 느리게 움직인다. 고단함인가? 무슨 아쉬움인가? 아니면 마지막 인사라도 하는 것인지.


그 옛날 이름도 없이 흐르던 이 강에 이름을 붙여주었던 타이누이 와카(Tainui Waka) 선원들은 ‘흐르는 물(Waikato)’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 강인들 흐르지 않는 물이겠는가 마는, 이 고유한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분명 특별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강에 이름을 선사했던 마오리들은 이 강을 정말 귀하에 여기며 살아왔다.


그들의 역사는 물과 함께 한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흘린 땀들이 강물에 스며 흐르고, 또 원치 않는 전쟁의 잔인한 역사도 있었고. 자연 앞에 스스로 작아지고 또 그것을 극복하려고 한 강인한 역사도 있었다. 그래서 역사는 강 하구의 복잡한 삼각주 같은가 보다. 어느 역사가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러나 강은 그 모든 복잡한 인생의 모습과 풀리지 않은 논쟁의 여지까지도 함께 하여 바다로 사라진다. 


인종차별이 웬 말? 

존 덴버(Jhon Denver)는 ‘Take Home, Country Roads’에서 셰난도아 강(Shenandoah River)이 흐르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노래했다.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 옛날 버지니아에서 살던 흑인들도 자신들의 고향에 흐르던 강물을 마음에 그리며 그 고단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뉴질랜드에 첫발을 내디뎠던 마오리에게도 그 이후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 역시도. 강은 그렇게 누구에게나 그 마음 언저리를 쉼없이 흐르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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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의 바닷가 검은 모래 해안에는 작은 돌들이 무수히 앉아 있다.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아 보인다. 황토색, 검은색, 흰색, 그리고 회색 등 다양한 색깔의 돌들이 화가의 팔레트처럼 보인다. 뉴질랜드의 자연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보이는 이유가 이것일까?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지구상에는 때아닌 인종차별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이곳에 서면 검은 모래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빨강색, 회색, 하얀색, 검은 색 등의 작은 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조화를 보며, 한 가지 교훈을 얻는다. 피부색, 그것은 구별의 방편이지 차별의 도구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아름다운 조화를 찾아야 할 뿐이다. 


뉴질랜드 역사학자 폴 문(Paul Moon)은 ‘와이카토가 바다에 이르는 곳은 역사가 끝나는 곳’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말을 깊이 있게 새겨보며, 또한 와이카토 강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기를 소망해 본다.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뉴질랜드에 함께 살아가고 있다. 누구도 이 땅의 주인도 아니고, 기득권을 내세울 것도 아니다. 그냥 조금 먼저 온 사람들이 있고, 조금 더 수고하고 열심을 내고 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인종간의 아무런 갈등이 없이 이 평화롭고 아름다는 그림을 그려 나가는 것이 이 땅에 함께 사는 모든 이들의 몫이 아니겠는가?

<마지막 회>



나명균_조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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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글에 달린 댓글 총 3
sunkim 2020.07.23 16:32  
이번이 마지막회 였다니 아쉽네요. 그동안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나명균 2020.08.04 21:59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만,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으로 끝까지 글을 쓸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명균 2020.07.17 11:36  
나명균입니다.
그동안 Waikato River와 함께 해 주신 모든 독자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전문가도 아니고하여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만,
애써 감싸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가운데 애독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부디, 이 작은 글 하나가 뉴질랜드에서의 삶에 작은 보탬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애드 프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