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운의 동유럽 여행] 카프카, 눈먼 시계공 그리고 에밀레종소리

[석운의 동유럽 여행] 카프카, 눈먼 시계공 그리고 에밀레종소리

뉴질랜드타임즈 댓글 0 조회 275 추천 0


석운의 동유럽 여행(1)_체코 프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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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하 나로드니 트리다 지하철역 광장에 설치된 카프카의 얼굴. 모두 48개의 금속층으로 꾸며져 있다. 


프라하는 오랫동안 가보고 싶은 도시였다. 10년 전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방문했을 때 프라하와 부다페스트를 가보려 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스위스 쪽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을 때의 아쉬움이 늘 가슴속에 남아있었다.


천 년의 역사를 뽐내는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도시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블타바(Vltava, 독일어로는 Moldau)강을 중심으로 퍼져있는 프라하는 음악과 문학 분야에서도 뛰어난 인물들을 탄생시킨 문화의 도시다.


“어르신 환영합니다”…모든 대중교통 무료


비행기가 프라하에 도착하자 여행안내소부터 찾았다. 동유럽 여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기에 안내소 직원에게 가장 효율적인 교통권을 사는 방법을 물었다.


직원은 나이를 물었다. 약간 의아해하며 나이를 밝히자 직원은 70세가 넘는 노인에게는 모든 대중교통이 무료이며 65세가 넘은 노인은 사진 한 장과 20 코루나(한국 돈 8천원정도)를 내고 신분증을 발급받으면 역시 무료라고 말했다.


나는 체코 시민이 아니고 여행 중인 외국인이라고 말했다. 그 직원은 국적에 상관없이 체코에 들어오는 모든 나이 드신 분들은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작은 감동이었다.


나로드니 트리다(Narodni trida) 지하철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자 우리를 맞아준 곳은 조그만 광장이었다. 광장 중앙에 커다란 조형물이 보였다. 사람들은 그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형물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모습이 바뀌었다. ‘아하’ 하는 다음 순간 나는 그 은백색의 물체가 카프카의 조형물일 것으로 생각했다. 조금 있다가 그 조형물은 커다란 얼굴의 형태를 빚어내었다.


언젠가 책에서 보았던 체코의 아티스트 데이비드 체르니가 만들었다는 그 유명한 조형물이 바로 내 눈앞에서 층층이 움직이며 카프카의 얼굴을 만들고 있었다. 고뇌하는 카프카의 지성을 상징하듯 은빛 차가운 금속의 42개 층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의 층들이 계속해서 움직였다. 카프카의 얼굴을 형성했다가 곧 다시 다른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보며 나는 어느덧 젊은 시절 읽었던 카프카의 소설 《변신(變身)》을 생각했다.


괴짜 조각가 체르니, 《변신》염두에 둔 듯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눈을 떠보니 거대한 벌레로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한 그레고르 잠자는 몹시 당황하면서도 비로소 그때까지의 자기 삶을 뒤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영업사원으로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 왔던 그였지만 막상 벌레로 변해버린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멸시의 눈초리뿐이었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혀 고통을 받고 유일하게 그를 돌보아 주던 여동생마저도 그를 포기해버리자 옛날을 회상하며 땅바닥과 벽을 기어 다니던 그는 쓸쓸히 죽어간다.


소설 속의 주인공을 생각하며 조형물을 바라보다가 나는 어느덧 그 커다란 은빛 조형물이 벌레로 바뀌어버리는 것 같았다. 42개의 금속층이 돌아가면서 만들어내는 형태가 카프카의 얼굴이 아니고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로 변한 뒤 외로움에 지쳐 마지막 숨을 거두며 어쩌면 최후로 허공을 향해 곤두섰을 법도 한 커다란 은빛 벌레라고 생각되었다.


괴짜 조각가 체르니가 《변신》의 마지막을 간과했을 리가 없으니 틀림없이 그것을 염두에 두고 이 조형물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내 나름대로 결정을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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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하 거리에 있는 데이비드 체르니 작품. 


벌레는 하나의 상징…방황하는 가장 그려

“참 대단한 작품이네요”라고 말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다시 숙소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조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사이를 헤쳐 나오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벌레로 변한 인간이 비단 그레고르 잠자뿐일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변신》에 나오는 벌레는 하나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카프카의 시대에서나 오늘 이 순간에나 그레고르는 경쟁 사회에서 도태된 청년이자 무능력한 가장이다. 한국 사회에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고시촌을 떠도는 청년들이나 때 이르게 직장에서 밀려나 거리를 방황하는 가장들은 그레고르와 같은 벌레가 되어 현실의 응달진 구석구석을 기어 다니고 있다.


사회는 그들을 도와주기보다는 짐이 된다는 이유로 백안시하고 있다. 아버지가 미워하며 던진 사과가 등에 박혀 고통 속에 죽어간 그레고르와 마찬가지로 우리 현실의 곳곳에서는 가정과 사회로부터 던져지는 차가운 눈초리에 주눅이 들어 죽어가는 소외당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지난 몇백 년 동안 아무런 자연재해를 입지 않았고 세계대전에서도 참화를 면할 수 있었던 아름다운 도시 프라하, 그 프라하는 자기를 처음 찾는 나를 여행안내소에서부터 따뜻한 마음으로 환대해주었다.


지하철에서 나와 우연히 발견한 카프카의 조형물은 허공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긴 역사를 외상(外傷)없이 견뎌낸 프라하지만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내상(內傷)이 도시의 으늑한 곳곳에서 숨 쉬고 있다’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런 카프카를 뒤로하고 우리는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오를로이 천문시계…“삶은 계속돼야 한다”

프라하에 온 다음 날 먼저 찾은 곳은 프라하의 옛시가지 광장이었다. 이곳 광장에는 언제나 인파가 흘러넘친다. 광장으로 향하는 작은 골목골목마다 즐비한 가게들이 여러 눈요깃거리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광장에는 오를로이(Orloj) 천문시계와 얀 후스(Jan Hus) 동상 등의 굵직굵직한 프라하의 명물 볼거리가 모여있기 때문이다.


구시청사(舊市廳舍) 근처에 도달했을 때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벌써 많은 사람이 모여서 천문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1410년에 만들어진 이 시계는 만들어지기는 세계에서 세 번째이지만 아직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천문시계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게다가 이 시계는 시간마다 흥미로운 공연을 벌이기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매시간 정각이 되면 시간을 알리는 소리와 더불어 시계의 공연이 시작된다. 위 시계 판의 해골이 줄을 당기고 종을 치면 인형들은 고갯짓을 한다. 위의 두 창문이 열리면 예수의 열두 제자가 돌아가면서 아래를 내다보고 마지막에는 황금 수탉이 울며 공연이 끝난다.


죽음 앞에서 인간의 부질없는 존재를 묘사하면서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공연이라지만 이십 초도 안 되는 짧은 공연에 바라보던 사람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오히려 우리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사람들은 또 다른 볼거리를 찾아 흩어지고 또 다른 사람들이 모여들어 시계탑 아래 공간을 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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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얀 후스 동상. 그는 교회의 부패를 비판하다 화형을 당했다. 



에밀레종소리가 오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내 귓가에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눈먼 시계공의 마지막 손길이 닿은 뒤 사백 년이나 침묵했던 시계가

드디어 원한을 풀고 움직이기 시작한 슬픈 사연을 에밀레종이 모를 리가 없다.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비극의 주인공들에게는 시간과 공간의 거리가 문제 될 수 없다.



시계 제작한 시계공 눈멀게 만들어

이 천문시계는 거의 600년 전에 만들어졌다. 그 아름다움과 신기한 작동이 소문이 나자 이 시계를 보러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람이 구경을 왔다. 또한 이 시계를 보고 감탄한 이웃 나라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도 이런 시계를 만들고 싶어 했다.


프라하 시의회는 이 시계를 제작한 시계공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다른 시계를 만들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눈먼 시계공은 더듬더듬 시계탑에 올라가 시계에 손을 댔고 그때부터 시계는 작동을 멈췄다. 그 뒤 400년이 지나서야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슬픈 전설을 품고 있기에 이 시계의 아름다움은 더 빛이 나고 시계 아래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이 모여든다.


시계탑을 뒤로하고 다음 볼거리인 얀 후스(Jan Hus) 동상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나는 과연 눈먼 시계공은 남은 생을 어찌 살았을까 궁금해졌다. 인간의 탐욕은 그의 눈을 빼앗았지만 그의 영혼까지 빼앗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눈이 먼 뒤에 엉금엉금 시계탑에 올라가 자기가 그렇게 정성을 쏟아 만든 시계의 작동을 멈추게 한 그의 손길은 죽지 않은 그의 영혼의 꿈틀거림이었다. 그만한 장인(丈人)이었다면 결코 슬픔을 미움만으로 허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잠깐은 미움과 원한 속에 몸부림쳤겠지만 장인의 위대한 영혼은 비극으로부터 승화하여 더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구도자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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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를로이 천문시계. 1410년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시계다. 


아름다움은 왜 비극을 초래하는 것일까

아름다움은 왜 비극을 초래하는 것일까? 아니 진정한 아름다움이 꽃피기 위해서는 늘 누군가의 처절한 희생이 필요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름다움을 독차지하기 위해 시계공의 눈을 멀게 한 그 당시 권력자들의 추악한 탐욕도 밉기 그지없었지만 그런 탐욕과 눈을 잃은 시계공의 아픔을 묵묵히 그 아름다움 속에 담고 오늘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와 춤사위로 사람들 위에 우뚝 서 있는 시계의 존재가 서럽게 보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접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 내 귓가에 그때 희미한 종소리가 들렸다. 아니 벌써 시계가 다시 울리나 하고 쳐다보았지만 아직은 시계가 울릴 시간이 아니었다. ‘잘못 들었겠지’ 하며 다시 돌아서는 내 귀에 이번에는 더 선명히 종소리가 들렸다. 참으로 아름다운 종소리였다. 어딘가 슬픔이 묻어나는 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환청이었는지 이명(耳鳴)이었는지 종소리는 멈추었다. 옆에 있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보는 아내에게 뜬금없이 말했다.


“당신 에밀레종(鐘) 알지? 나 방금 에밀레 종소릴 들었어.”


그런 나를 보며 아내는 잔잔한 웃음을 보냈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부드러운 미소였다.


아기를 제물로 바친 에밀레의 종소리를 듣다

그렇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 만들어도 제소리가 나지 않다가 끝내 아기의 목숨 하나가 희생 제물로 바쳐진 뒤에야 천상의 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에밀레종소리가 오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내 귓가에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눈먼 시계공의 마지막 손길이 닿은 뒤 사백 년이나 침묵했던 시계가 드디어 원한을 풀고 움직이기 시작한 슬픈 사연을 에밀레종이 모를 리가 없다.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비극의 주인공들에게는 시간과 공간의 거리가 문제 될 수 없다.


그렇기에 그 아름다움 속에 응어리져있는 슬픔을 느끼는 사람에게 소리는 하나가 되어 흐느낌으로 들렸을 것이었다.

시계 소리인지 종소리인지 다시 가슴속에서 아련히 울려 퍼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얀 후스 동상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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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하의 옛시가지, 1000년의 역사를 뽐내고 있다. 


글과 사진_석운

화요음악회 운영자, 오클랜드 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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