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이형수 회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故)이형수 회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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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yleys, 그레이스 정의 ‘일상의 습작’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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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편과 제법 많은 나이 차이가 난다. 그래서인가 아니면 시국이 숭숭해서 인가. 철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전해 듣는 부고의 소식들이 요즘 들어 새 생명의 탄생 소식보다 더 비일비재 하게 들린다. 


아마도 남편은 이 표현을 보면 왜 자기하고의 나이 차이를 가져다 붙이느냐 말할 수도 있겠다. 그도 맞다. 이렇게 남편에게 생떼를 부리려는 나를 보니. 나도 이제 주위의 부고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삶을 산 중년의 아줌마가 되었구나란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지난 25년 간 뉴질랜드에서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첫아들이 자랄 때는 예쁘고 영특한 짓만 하면 각자가 “나를 닮아 저런다”며 실없는 고집을 부리며 투닥거리던 우리 부부가, 아들과 7살 터울로 본 늦둥이 딸이 고등학교를 무슨 고시생처럼 시험 기간에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누굴 닮아 저리 공부를 파지?” 란 겸손의 바닥까지 내려온 것도 다 세월의 흔적이리라.


시험으로 얼굴이 까칠한 딸은 내가 해주는 몇 가지 음식과 엄마가 분주한 가운데 시간을 내어 둘만이 하는 오붓한 데이트를 늘 행복해한다. 예측 불허로 부동산 시장이 과열된 요즘, 난 많은 문의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딸 아이 학교 근처에서 마침 하교 시간쯤 미팅이 끝나 도서관으로 데리러 가니 엄마의 깜짝 출현에 아기처럼 폴짝폴짝 뛰며 반가워한다. 까칠한 얼굴을 쓰다듬으며 딸이 좋아하는 알바니로 “우리 둘이 마라탕 먹으러 갈까?”란 말에 딸 아이의 눈에선 하트가 별이 되어 나에게 쏟아져 내린다. 


오래간만에 오붓하게 딸의 손을 잡고 들어선 식당은 한가했다. 덕분에 음식이 빨리 나와 좋았고 정말 맛있다며 행복하게 먹는 딸 아이의 표정이 나의 누적된 피로들을 한방에 날려 준다. 그런 딸 아이를 보는 나도 참으로 행복하다. 그런데 행복은 순간, 지인으로부터 부고를 알리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故)이형수 회장님과 참으로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다. IMF가 터지고 아무 경험이 없던 내가 궁여지책으로 오레와에서 옷가게를 시작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바다 건너 시작된 이민의 삶과 경험도 없이 생활 전선으로 던져진 딸이 불쌍하셨던지 하나님은 우리 가게를 오레와의 명소로 자리 잡게 해 주셨고 마치 사사기의 역사처럼 어리석은 우리 부부는 야멸찬 꿈을 꾸며 시티로 입성을 계획하게 되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세상 넓은 줄 모르고, 그것도 한국의 소공동 뒷거리를 떠올리며, 지금 생각하면 귀엽게 들릴 수도 있지만, 다시 생각해도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그것도 뜬금없이 패션 거리도 아닌 호텔만으로 둘러싸인 앨버트 스트리트에 100평이 넘는 큰 가게를 옷가게로 겁도 없이 계약했다.  


패션으론 당시 참으로 뒤떨어진 뉴질랜드로 찾아온 한국을 위시한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묵는 뉴질랜드 최고급 호텔이 모여 있는 곳에서 난 하루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손님들을 기다리며 곤혹을 치르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매장에 손님은 오지 않고 길거리에 관광객의 인파로 넘쳐나는 알버트 스트리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관광객을 고객으로 하는 비즈니스가 뭐가 있나를 고민하게 되었고, 뉴질랜드 특산품으로 정답을 찾은 나는 당시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계시던 이형수 회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아마도 2000년 초반으로 기억한다. 내 삶의 한 전환점이 되었던 순간이다. 뉴질랜드 건강식품 사업에 첫발을 들여놓게 됐다. 


당시 뉴질랜드 건강식품 업계는 몇 군데의 중국 공장에서 OEM 식으로만 건강식품이 생산되고 있었고 이형수 회장님이 운영하시던 에버그린라이프는 올곧기로 유명한 이형수 회장님의 성품대로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한국 기업으로 정평이 높았다. 나도 이왕 청정 뉴질랜드산 건강식품을 판매할 거면, 당시 술수가 많고 말도 많은 중국 주인이 운영하는 공장이 아니라 한국 분이 유일하게 운영하는 에버그린라이프에서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이 회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한국에서부터 녹용을 취급하셔서 뉴질랜드까지 오게 되셨다는 이 회장님. 건강식품에 대한 남다른 강직한 열정을 가지신 회장님을 만나러 가면 해가 지도록 고향도 같고 취향도 같은 이 회장님과 남편 덕에 창가에 앉은 나는 두 분이 내뿜는 담배 연기에 콜록이면서도 건강식품 업계 이야기, 새로운 제품 구상 이야기 그리고 나중에는 한인 문화회관을 마무리하기 위한 이야기로 한참을 회장님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밤이 으슥해져야 사무실을 나서곤 했었다. 


당시 200mg의 초소량 홍합만이 생산될 당시 좋은 함량의 최고급 홍합을 만들어 주시면 저희 회사에서 독점으로 열심히 판매해 홍합의 명품으로 만들겠다는 내 의지를 어여삐 받아들여 주셔서 홍합으로 최고 명품으로 지금까지 건실히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내츄럴 헬스의 ‘그린 리피드’ 제품이 탄생하게 된 것도 이 회장님 집무실에서였다.


2000년 초반 가짜 꿀로 뉴질랜드가 소란스러울 때도 에버그린만큼은 그 강직함으로 교민들에게 신뢰감을 굳건히 쌓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로도 회장님의 집무실은 비즈니스는 물론 그 이후로 이어질 파란만장한 한인사회의 안가처럼 많은 일과 이야기들이 그 안에서 오고 갔다.


한국서 이민 올 때 가져오신 듯 보이는 웅장하고 세월의 흔적이 뭍은 소파들과 장식장들 그리고 그 안의 소중한 추억으로 보관되어 있던 젊을 적 이 회장님과 가족들의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가족사진. 절대 불의와 타협하려 하지 않으셨던 강직함 뒤엔 늘 사모님과 자식들을 향한 그 부드러웠던 사랑이 참으로 인상적이셨던 분이셨다. 


그 이후 우린 공교롭게 가족들과 함께 한 10여 일의 크루즈 배 안에서 회장님 가족들을 만나 서로의 돈독함이 더 깊어졌지 싶다.


외국에 나와 찾기 힘든 고향 후배를 만났다며 늘 남편을 반기셨고, 또한 현 한인 문화회관의 구매 과정에서 공동 건립 위원장을 어렵게 수락하며 현 한인 회관이 고단한 이민 삶에 둥지 역할을 잘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한인회의 바른 자리매김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셨던 분이셨다. 


딸과의 저녁이 어찌 마무리 되었나 사실 난 너무 황망한 마음에 기억이 없다. 집으로 허둥지둥 돌아와 남편과 지인들에게 부고를 알리며 나누는 마음이 너무나 슬프고 참으로 덧 없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른 새벽까지 잠자리를 뒤척이며 이제는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품으로 돌아간 고인을 위해 고단한 이승에서의 삶이 주님 안에서 편안히 쉬시길 주님께 간절히 간구드리며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며 뒤척여본다. 



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는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리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리 산 자여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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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정     

・ 뉴질랜드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 베이리스(노스 웨스트)부동산 에이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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