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것

사랑이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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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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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 내 맘에 고독이 너무 흘러 넘쳐/ 눈 녹은 봄날 푸르른 잎새 위에/ 옛사랑 그대 모습 영원 속에 있네” ㅡ 가수 ‘이문세’가 부른 ‘옛사랑’이라는 노래의 한 구절이다.


세상 많은 사람들은 사랑이란 ‘아끼고 위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사람에 따라 사랑에 대한 감정은 다양하다. 사랑은 주는 것, 사랑은 관심을 갖는 것, 사랑은 나누는 것, 사랑은 참는 것, 사랑은 나를 버리는 것 등등 나름대로 겪은 감정에 따라 표현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이 모든 감정들도 결국은 아끼고 위하는 것이라는 가슴 속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 차비 몇백 원이 없어 수 시간을 걸어 집에 갔다는 대학 선배인 가난한 시인을 남편으로 품어 안은 어느 여자 아나운서(지금은 국회의원이지만)의 사랑도 그 사람을 아끼고 위하는 고귀한 영혼에서부터 싹트기 시작했을 것이리라.


단칸 옥탑방에서 화려한 이벤트도 없이 촛불 하나 켜놓고 말없이 청혼 시를 건네받고 눈물을 흘렸다는 감동적인 청혼 스토리는 아끼고 위함이 영혼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겨날 수 있는 사랑 이야기일 터이다.


흔히 사랑할 때는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고 노래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있어야 하고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결혼을 한다고 한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랑으로 함께할 것을 맹세하지만, 사랑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음을 세월이 가르쳐준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고 했던 사람들이 세월이 흘러가자 권태 익숙함 지겨움이라는 괴물 앞에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거칠고 이기심 가득한 속물로 변색되어 간다. 이기심은 아끼고 위함을 밀어내고 미움과 멸시와 싫증과 짜증을 잉태한다.


권태와 미움은 “네가 나를 위해 해준 게 뭔데” “언제 돈이나 제대로 벌어다 줘 봤어” “그런 너는 나 한데 무슨 보탬이 됐는데” “호강 한번 받아봤다면 원이 없겠다”라는 등의 잔인할 만큼 냉소적인 저주의 칼날이 돼 서로의 가슴을 후빈다.


한때 한 쌍의 원앙 같다던 사람들이 너무나도 쉽게 이혼을 내뱉으면서 재산 가르기로 온갖 추한 모습을 연출한다. 인간 본성의 탐욕이 드러나고, 오래된 것에서의 지겨움이 묻어나고, 막연한 것의 유혹을 견디지 못한다.
 

서로의 증오를 제어하지 못해 변호사를 대동해 법정으로 간다. 사랑했던 사람을 아름다운 날들의 옛사랑으로도 기억되길 거부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월이 가면 사랑도 저만치 간다고 하는가. 다들 그렇게 변해가는가. 대체 사랑이란 뭘까. 


내가 아는 그는 아내가 밉고 지겨울 때면 자신의 편협함 옹졸함 이기심을 탓했다. 이별 이혼 같은 단어를 떠올린 적이 없다. 아니 아예 그런 단어가 떠오르지를 않는다. 


여자는 ‘유학생 엄마’다. 시대의 흐름을 좇아 외아들을 데리고 영어의 나라로 왔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국제화 시대 필수인 영어’를 익히는 기회를 아들에게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여자는 남편이 보내주는 돈으로 여유 있고 평온한 날들을 보냈다. 책 읽고 산책하고 몸매를 가꾸기 위해 헬스클럽 다니고 지루함을 덜기 위해 골프도 배웠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모임에도 드나들었다. 나날이 즐거웠다. 서너 달에 한번씩 찾아와 며칠 머무르다 돌아가는 남편에게서는 새로움도 느꼈다. 변화된 삶의 패턴은 인생의 축복 같았다.


그러든 어느 날부터 남편은 사업 등 여러 이유로 2년에 한 번 정도 여자를 찾아왔다. 그렇게 몇 번의 흐름이 되풀이되던 어느 때 여자는 깜짝 놀랐다. 남편은 배도 나와 있었고, 머리숱도 너무 많이 줄어 있었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늘었고, 날카롭던 눈빛도 사라져버렸고, 싱싱하던 젊음도 시들어가고 있음이 보였다.


여자는 아들과 여유와 평온 속에서 근심 걱정 없이 즐거워하는 동안 남편은 삶의 독화살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힘들게 버티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남편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는 공항에서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여자는 참을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남편을 보내고 돌아온 여자는 남편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 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았다. 사랑이란 안타까움 이란 것을.


삶이 아무리 힘들고 세월이 수없이 흘러가도 순수함이 남아있는 가슴 따뜻한 사람은 사랑을 쪼개지 못한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가난한 시인을 사랑한 아내는 그를 보면 늘 안타깝다고 했다. 사랑은 영원 속에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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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_세 손녀 할아버지(오클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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