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늙어가기

우아하게 늙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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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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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지구촌 어디에서든 종이신문이나 잡지를 읽는 세대는 젊은 세대들이 아닌 흔히 말하는 꼰대 세대들이라고 한다.


젊은 세대들은 종이신문이나 잡지를 ‘꼰대 광고지’ ‘꼰대 소식지’ ‘꼰대 싸움지’ 라며 무시한다는 거다. 젊은 세대들은 온갖 정보와 소식을 인터넷 유튜브 SNS 등을 통해서 보고 듣고 나눈다.


어쩌다 종이신문 챙겨가는 젊은 사람들은 신문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애완동물 오줌 똥 받이로 쓰려고 한다는 거다. 신문 내용은 보지도 않는다. 


아까운 돈 들여가면서 종이신문 발행하는 발행인들에겐 송구스럽지만, 솔직히 말하면 반려견 두 마리 키우는 우리 집도 비슷한 상황이다. 


나는 잘 쓰든 못 쓰든, 내용이야 어떻든, 교민지에 글줄이랍시고 끄적거리는데, 식구들은 교민지에 아예 관심이 없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둘째 셋째 손녀는 한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 설령 읽는다 해도 손녀들의 시대와 동떨어진 꼰대들의 이야기가 기사의 주종이니 무슨 뜻인지도 모를 거다.


우리말이나 글의 이해도가 탁월하다는 큰손녀도 교민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큰손녀는 뉴질랜드 언론 스터프(Stuff)가 취재해 “고양이 불치병 치료법 찾아서 성공적으로 죽을 고양이 살렸다”고 대서특필한 뉴질랜드 사회의 자랑스러운 2년차 수의사다.


할멈은 표현은 안 하지만 교민지에 실리는 기사들은 거의가 취재가 아닌 진부하기 짝이 없는 베끼기라는 눈치다. 할멈은 뉴질랜드 사회를 취재할 수 없는 교민 언론의 한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게다가 이따금 실리는 ‘술 안 사주고 밥 안 사준다고 삐쳐서 내 편이 아니라고 못 박고, 논리의 타당성도 없이 특정인을 마구잡이로 씹어대는’ 꼰대들의 증오와 질투의 글이 전면을 장식하고, 그런 글을 ‘광고’라는 형식으로 게재하는 교민지 라는 것이 수준 이하라는 거다.


더불어 6~70년대 흐름인 글의 패턴도 지루하다고 한다. 논리의 정당성도 전혀 납득되지 않는 순전히 자기 넋두리에 다름 아닌 언어의 성찬을 나열하는 교민지가 식상하다는 거다. 


거기에다 기사라는 것도 인터넷을 통해 이미 다 알고 있는 뻔한 내용일 뿐만 아니라 주관성도 없다는 거다. 그러니 교민언론이란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덕분에 지 영감이 쓰는 칼럼까지도 관심 열외다.


나는 섭섭하고 무안하고해서 혼자 붉으락푸르락해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속상하고 자존심도 상해 한마디 해주고 싶기도 하지만, 숨 한번 크게 쉬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게 다 지당하고 뼈아픈 현실이다. 사실 늙은 할멈도 벌써 오래전부터 모든 정보나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서 습득한다.


종이신문을 주구장창 애독하는 꼰대들에겐 정말 입맛 떫은 이야기다. 그렇지만 사실은 사실이고, 대세는 대세고, 흐름은 흐름인 거다. 


가 살아온 지난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혼자 울분을 토해 봤자 세상의 웃음거리일 뿐이다.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다 알듯이 종이신문이나 잡지가 안녕할 날이 그리 멀지는 않다.


나도 교민신문이나 잡지를 들춰 본지가 꽤나 오래됐다. 교민사회 소식은 풍문으로 접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인터넷에 접속해 세상사를 만나고 있다.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다. 언론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다. 뻔히 알고 있는 쓸데없고 진부한 잔소리라고 하겠지만, 변화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지나친 비유일지 모르지만 자신도 사회도 국가도 정체되면 역한 냄새가 나는 거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늙은이들은 자기 세계에 도취돼 자신의 관념, 이념, 사상이 절대적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제 잘난 맛에 사는 게 인생이라는 말도 있는 것일 거다. 하지만 조금만 냉철하게 자아성찰 한다면 인간의 이성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수긍해야 한다.


살다 보면 별의별 일들과 부딪치지만 세상사 바른 것은 바른 것이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고, 낡은 것은 낡은 것이고, 새로운 것은 새로운 것이라는 단순성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이는 것이 늙음을 편하게 만드는 거다. 나이 먹어 갈수록 무겁지 않은 가벼움의 자세가 늙음을 아름답게 만드는 거다. 


옛것에 집착하는 것은 흉하게 늙어가는 고집이다. 포용과 단순함을 익히는 것이 곱게 늙는 길이다. 자신의 부족함과 모자람을 직시하며 새로운 것들과 타협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멋지게 늙는 것이다.


나를 겸허하고 새롭게 바꾸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으로부터 왕따 당한다. 가정도 사회도 장유유서(長幼有序) 유아독존(唯我獨尊)의 시대는 지났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 우아하게 늙는 길 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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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규(오클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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