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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한 사람 웃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어요”

인터뷰_15세 북향민 조원혁 군

북향민들을 위한 한국 사람들의 ‘관심’은 그들을 위한 ‘공감’

글로벌 시대인 지금, 사람들은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자유를 위해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 뉴질랜드에 있는 약 3만 8천여 명의 한인도 다 각자의 이유에 따라 한국에서 뉴질랜드에 왔다.

때로는 1997년에 있었던 IMF 외환위기(국가 부도로 인해 국제 금융 요청을 해야만 했던 상황)와 같은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내몰리듯이 이주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난민들과 같이 더는 자신의 나라에서 살 수가 없어서 이주하는 경우도 있다.

북향민, 김정은 체제 이후 연 1,000~1,500명 수준

탈북자, 요즘에는 북향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또한 자신의 나라에서 나온 이주자들이다. 통일부는 2012년 김정은 체제 이후 탈북자가 연간 1,000명에서 1,500명 수준에 이른다고 밝혔다.

북한에서 나와 중국을 거쳐 태국,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등을 거쳐 한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북향민들. 사회주의 문화에 익숙한 그들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 마치 우리가 뉴질랜드에 이민 왔을 때 이곳 문화와 제도에 적응하려고 애썼던 것처럼 말이다.

문화가 다른 뉴질랜드에서 이민자로서 살아가기란 쉽지는 않다. 1세대 한인들은 현지 사회에 정착하느라고 부단한 노력을 했다. 1.5세대, 2세대 한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뉴질랜드 문화 안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좀 더 ‘현지화’되어 가지만, 때때로 부딪히는 한계들이 있다.

북향민 또한 마찬가지다. 같은 민족이라 하지만 분단된 국가이기에 오랜 시간 다른 문화로 살아왔던 그들이 한국 문화, 또는 이주해 다른 나라 문화에 익숙해지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뉴질랜드에 온 이민자로서, 북향민들과 대화를 해보면 ‘이주민’이라는 점에서 공감대가 일어나는 것 같다.

라오스에서 감옥 생활…먹다 남은 음식 먹기도

오클랜드 북쪽에 있는 롱베이 비치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한 북향민 청소년과 대화를 나눴다. 그와 함께 발을 맞추며 트레킹을 하는 동안 그의 이야기와 그가 경험하고 바라본 뉴질랜드는 어떠한 곳인지 들었다.

그의 이름은 조원혁. 그는 석 달 동안 뉴질랜드를 여행하며 시야를 넓히고 있었다.

“언제 탈북한 지는 기억이 잘 안 나요. 북한에서는 날짜와 시간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북한 사람들은 시간 개념이 잘 없어요. 저 또한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요.”

원혁이는 2004년생으로 올해 만 15살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로 한국에 오면서 한 살을 줄여야 해서 주민등록표 등본에는 2005년생으로 되어 있다. 북향민들은 이렇게 나이와 때로는 이름을 바꾸게 되는 경우도 있다.

원혁이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탈북한 후 한국에 온 지는 6년이 되어간다. 그는 탈북한 과정에 관해 아주 조금 기억이 난다고 했다. 라오스에서 보냈던 시간이 그의 기억에 남아있다. 라오스에는 대부분의 북향민들이 거쳐 가는 감옥이 있다. 원혁이 또한 거기서 지냈는데, 감옥을 지키는 경찰들이 먹다가 남은 음식들을 먹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온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원혁이는 어려서 탈북을 해서 ‘무섭다’라는 느낌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는 아빠가 서라고 하면 서고, 따라오라고 하면 생각 없이 따라갔다.

대안학교, ‘두리하나’에 들어가 기숙 생활 시작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때도 별로 다른 점이 없었다고 말했다. 건물과 풍경을 보면서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계속 지내다 보니 사람들이 하는 말과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점점 느꼈다고 한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하나원에 갔어요. 하나원은 한국이 어떤 곳인지 교육하고 가르쳐주는 곳이에요. 거기서 지내다가, 나라에서 정해주는 집에 거주한 후, 하나원에 있는 선생님으로부터 두리하나를 소개받아서 그쪽으로 가게 되었어요.”

모든 북향민들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하나원에 가게 된다. 거기서 교육을 받고 난 후 나라에서 정해주는 집에서 산다. 하지만 요즘에는 북향민 청소년들을 위한 기숙사형 학교들이 있어서,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두리하나, 여명학교와 같은 대안학교를 골라서 간다.

“북한은 제가 살던 곳이에요. 친척들과 친구들을 보러 다시 가고 싶기도 하지만, 여태 알고 있던 북한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기도 했어요. 북한에서는 김정은, 김일성은 신이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가르치거든요. 그리고 북한이 남한을 도와줘야 한다고, 정반대로 가르쳐요. 북한에서 나온 후에 그 모든 말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는 사람들이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 탈북자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은 부끄러울 수 있겠지만 저는 그런 시선이 부끄럽지 않아요.
개인적으로는 탈북자라는 인식이 있어야 탈북자들도 변할 수 있고,
더 통일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석 달간 영어 공부하고 문화도 경험해

원혁이는 북한에 대한 추억이 많지 않다. 하지만 친구들이랑 놀았던 추억이 남아있다. 학교에 간 기억,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기억. 그 추억들이 떠오르면서 그리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하지만 북한에서 배웠던 그 모든 사상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북한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졌다고 한다.

“저는 솔직히 뉴질랜드에 오면서 전혀 기대를 안 했어요. 하지만 한 가지 하고 싶은 것이 있었어요. 푸른 초원에 누워서 자고 싶었는데,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없었어요. 뉴질랜드에 와서 좋았던 점은 여기서 거주하는 한국 사람들이 저한테 관심을 두는 것이에요. 여기에 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나도 행복해 보여요.”

뉴질랜드는 두리하나에서 만난 한 선생님이 초대해주어서 왔다. 석 달 동안 영어 공부도 하고, 뉴질랜드 문화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에서는 보고, 듣고, 경험하지 못할 환경 속에서 생각과 마음을 넓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했다.

“뉴질랜드라고 하면 사람들은 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생각하지만, 저는 이런 자연은 나라마다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디를 가든지 자연이 예쁜 곳은 하나쯤은 있으니깐요. 제가 여기 있으면서 좋았던 점은 ‘사람들’이에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웃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어요. 석 달 동안 보내면서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폈어요. 재밌고, 행복해 보였고, 즐겁게 살더라고요. 나아가 사람들이 여유가 있었어요.”

원혁이의 뉴질랜드 방문기의 키워드는 ‘사람’이었다. 함께한 사람들과의 시간을 통해 그는 많은 것을 깨달은 듯해 보였다.

원하는 대로 북한 이탈주민 대하지 말아야

그가 뉴질랜드에 와서 생각이 달라진 것이 딱 한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 뉴질랜드에 와서 생활하다 보니 북한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들어가고 싶어요.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의 대답에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원혁이는 딱히 답을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면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어쩌면 뉴질랜드에서 이민자로서 살아가면서 현지 사회에 잘 정착하여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그에게 용기를 준 것이 아닐까. ‘이주자’로서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못할 것이 없다’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았을까.

“저는 사람들이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 탈북자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은 부끄러울 수 있겠지만 저는 그런 시선이 부끄럽지 않아요. 개인적으로는 탈북자라는 인식이 있어야 탈북자들도 변할 수 있고, 더 통일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원혁이는 내가 만나 본 다른 탈북자들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아직 어려서일까, 내가 건네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북향민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을 했지만, ‘그 관심 안에 어떠한 사람이 아픔을 가지면서 살아가게 된다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라는 심오한 말을 건넸다. 북향민들을 향한 우리의 관심이 누군가에게는 아픔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너무 쉽게 ‘관심’이라는 말 아래 우리가 원하는 대로 북한 이탈주민들을 바라보고 대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통일을 위해서 ‘탈북자들이 할 수 있는 일과,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지금처럼 하면 되지 않나”라는 답변을 건넸다. 간단명료했다. 남북 간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북향민들에게 공감을 해주는 모습. 원혁이가 말하는 북향민들을 위한 ‘관심’은 그들을 위한 ‘공감’이었다.

자유롭게 서로 왕래하는 날이 와야 완전한 통일

그는 마지막으로 되려 내게 질문을 던졌다. 자신은 통일이 빨리 되었으면 좋겠는데, 한국에 있는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그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이 질문을 들으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통일을 원하는가, 통일은 왜 되어야 하는가, 통일을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지는, 어쩌면 나와는 상관없다고 느껴지는 ‘통일’이라는 이 단어를 원혁이와의 만남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글로벌한 시대에 뉴질랜드에서 사는 우리와 북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서로 왕래하는 그 날이 오는 것이야말로 완전한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 아닐까.

이송민_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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