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교도소

가족교도소

나명균 댓글 3 조회 1454 추천 14

세상에 이런 일이 ~

정말 현실이 되고 말았다.

4주간의 자가격리라니, 우선 두 가지로 생각이 정리된다.

그동안 쉼없이 일만 해오던 사람을 위한 강제 휴가인가? 

아니면 가족교도소 생활을 하는 것인가? 둘 중 하나로 정의하기가 참 어려웠다.

아들은 이미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벌써 거의 열흘 가까와진다. 

벌써 지친 기색이 조금씩 나타나는데, 4주간의 재택근무가 추가된다고 하니 좀 짜증이다. 

아무튼 4주간의 자가력리가 시작된다고 하니, 뭘 먼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궁리를 해본다.

4주간의 휴가라는 표현은 너무 호사스럽고,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고 일을 못하게 된 업주에게도 그렇고

미안해서 그렇게 표현하기는 내키지 않는다. 

어차피 집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일하는 것은 마찬가지 -

그래서 <가족교도소>라고 정의를 내렸다.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니 나름 괜찮겠다 생각이든다. 


우선, 4주간의 식단표를 작성했다. 

냉장고, 냉동고 전수조사를 통해 4주 동안 먹을 수 있는 것으로 간단 식단표를 작성해 보았다.

물론 그 기간 중에 기독교의 <고난주간>이 들어 있어서, 대부분은 비밀 메뉴로 해놓고 대신 주먹밥, 금식으로 표해 놓았다.

먼저 지인에게 참고하라고 보냈더니, 박수를 치고 난리다. 

우리 집으로 홈스테이를 오면 안되겠느냐는 뜻밖의 좋은 호흥이지만 자가격리라 초대할 수는 없고 ~

그러나 정작 아이들이 강하게 반발을 해온다.

작성해서 냉장고에 붙여 놓은 식단표 글씨 앞에 '아빠 만의'라는 글씨가 추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들, 딸, 그리고 아내를 죄수 취급하는 것이 못마땅하단다.

죄수가 아니라, 죄인이라고 재차 설명하고, 내가 제일 큰 죄인이라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겠단다.

죄수와 죄인의 차이를 모르나 보다. 

자가격리 중에 1호실, 2호실 죄인들은 아무 말이 없는데 저 3호실 죄인 혼자 반발이 심하고

본인은 식사도 혼자 해결하겠다고 한다.

아니, 4주간의 자가격리 기간이 결코 짧지않은데, 

기간동안 모든 식사를 다 해결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간간히 체력관리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좋은 음악도 들려주고, 매일 묵상자료도 제공하겠다는데 불만?

아무튼, 이렇게 옥신각신하며 우리의 가족교도소 생활이 시작되었다.

가족교도소의 목표는 <종간나 세끼가 되지 말자>이다.

하루 세 끼의 식사를 꼬박꼬박 챙겨먹으며 종동 간식까지 곁들여 먹는 사람이 되지 말자는 말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코로나 바리러스로 <확 찐자>라는 말이 최고의 유행어가 되었다고 하는데,

같은 의미이다.


아내의 계획

아내는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의 시간을 재봉틀 앞에 앉아 있다. 

마스크를 만들기 위함이다.

아내도 마찬가지로 집 여기저기에서 이런저런 천조각을 꺼내온다. 

아니, 우리 집이 양장점을 했던 것도 아닌데, 무슨 천 조각들이 저리 많이 나오는지 

그러고보니 내가 꼼꼼히 전수조사했던 냉장고, 냉동고와 다를 바 없다.

유투브를 통해 정보를 들어다 보더니, 하나 하나 샘플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어디서도 살 수 없는 명품 마스크가 나오기 시작한다.

아내가 만든 마스크 한 장을 얻어 마트에 나갔다.

물건을 사러 가는 것은 요식이고, 사실은 마스크 자랑을 하러 나간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니 정작 마스크 쓴 사람들이 딱 2명 밖에 없다.

물론 보여주려고 나간 것이 맞지만, 그야말로 제대로 나만 보여주기가 된 것이다.

집에 돌아온 내 표정을 보고 아내가 뭐가 그리 좋은지 베시시 웃는다.

-계속-

이 게시글에 달린 댓글 총 3
나명균 2020.04.26 15:00  
김현님의 짧은 댓글이 더 재미있고 의미있게 느껴집니다.
서재에 꽃혀있는 존 그레이의 책을 오랜만에 다시 한 번 끄집어내게 하는군요.
아내와 함께 지금까지 함께 한 시간들, 그리고 또 함께 해야 할 시간들 속에서
"! → ? → ---" 시랑의 암호라고 하는 이 암호를 풀어내기 위해 오늘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
김현 2020.04.20 10:24  
이 세상의 모든 여자(아내, 딸, 할머니 포함)들의 상자(가방 등) 속에는 이 세계가 들어있다고 합니다.
아니, 우주가 들어있다고도 하지요. 그런데 그깟 천조각이 좀 나왔다고 놀라는 것은 화성에서 온 이들뿐이지요.
금성에서 온 이들의 주머니 속에는 아무 것도 없지만 가방 속에는 엄청난 것들이 들어있으니 화성인들은
금성인들의 상자나 가방을 들여다 보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 상자를 여는 순간 비극이 생기고 말거든요.
때로는 그 비극이 희극이 되는 상황도 만들어 내기는 하지만.
글을 대충 다 읽고 재미있어 다시 읽으며 한줄 남깁니다.
jejido 2020.04.09 09:36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음글도 기대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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