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교도소(4)

가족교도소(4)

나명균 댓글 2 조회 1221 추천 8

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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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우리 집 지붕 위에도 쏟아지기 시작한다.

언제부터인가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우리 집에는 정확히 7초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집 주변에 함석 지붕을 한 집이 제법 있나 보다.

오늘같이 굵은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여지없이 그 소리가 들린다.

마치 군화를 신은 군인들의 발자국 소리처럼,

함석 지붕을 소리내어 오는 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그쳤다 내렸다를 반복하는 비 때문에 오늘은 아침 산책을 생략해야 하나 생각해 본다.

우산이라도 쓰고 나갈까?

요즘은 뭘 이리 써야 하는 것이 많은지,

얼굴은 마스크를 써야 하고, 손은 비닐 장갑을 써야 하고, 이제는 우산까지 써야 하다니 ~

그나저나 우리 동네 산책길에 있던 동물들은 이 비를 맞고 어찌하고 있을까 걱정이다.

곰인형을 창가에, 나뭇가지에 올려놓으면 산책하는 아이들에게 즐거움이 될 수 있다 해서

나도 집에 있는 곰머리 탈바가지를 비닐에 싸서 나무 위에 올려놓았는데,

다음 날 동네 숲길을 걷다보니, 글쎄 호랑이가 숲속 나무가지에 있지 않은가?

대단한 열심들이다. 모두 모두가 서로 서로 배려해 주려는 모습이 좋다.

숲속 산책길을 나와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검정색 담벼락에 아기자기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제법 큰 펜스인데, 온 가족이 다 출동을 해서 그린 것인지, 솜씨가 제법 보인다.

거대한 캔바스 위에는 'BRING YOUR OWN CHALKS!'라고 써져 있다.

마침 아빠인듯한 주인이 쓰레기 때문에 나오길래,

너희 아이들이 그린 것이냐 물으니, 그렇다고 대답을 한다.

서로 거리를 유지한 채, 유쾌한 대화를 잠시 나누고 내려왔다.

집에 와서 딸 서랍을 뒤지다가 한 소리 들었다.

잠을 자고 있겠거니 생각하고 살금살금 다 큰 딸의 서랍을 뒤지고 있었으니 한 소리 들을 수밖에 -

"아니! 그냥 ~ 혹시 분필이 있나해서!"

"말씀을 하셔야지요. 막무가내로 남의 서랍을 뒤지면 ~ "

"뭐? 남!" 그렇지 백번 맞는 말이다. 혹시 분필 한 조각이라도 찾으면 가져다 주려는 마음이 앞선 나의 큰 실수였다.

"미안! 미안! 그런데 분필 있니?" 

---

있으면 당연히 꺼내 줄 딸인데, 그렇지 않는 것을 보니, 없는 모양이다.



우리 집의 따로 따로 음악회

내 위치로 돌아와 하모니카를 꺼내 들었다.

머쓱해진 기분을 풀어내리라도 할 심사였는지, 몇 곡을 부르기 시작한다.

조용한 아침에 온 집안을 깨우는 듯한 소리에 1호실에서는 굿거리 장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3호실에서는 바이올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학교 서클에서 사물놀이를 하는 막내 딸이 장구채를 들고 연습을 시작했고,

완전 독학으로 대금 연주를 시작하여 어느 정도에 오른 둘째는

요즘 바이올린에 빠져 제법 바이브레이션이 특징인 바이올린 연습에 몰입해 있다.

아들의 연주곡에 맞춰 나도 하모니카로 따라하는데, 

서로 박자를 맞추기에는 아직 불가능하다.

아내도 재봉틀 돌리기를 시작하고 ---

2호실에서도 곧 피아노 소리가 날텐데.


독서 삼매경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음악소리는 멈추었다.

다만, 고물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는 아내의 뭐라 하는 혼잣말 소리와 함께 멈출 기미가 없다.

책을 보기 시작하는 나를 향해 아내가 말을 건낸다.

"시끄럽지 않아요?"

"걱정 마시고 열심히 하시오!"

각자 자기 일에 몰두하면 남이 뭘 하는지 그것이 방해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나는 책을 보다가 가끔 졸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한다.

아내가 "아이쿠! 내 재봉틀 소리에 시끄러워 잠이 와요? 미안!" 

졸리면 아무 소리 들리지 않고, 책을 보려 할 때도 마찬가지,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는다.

그냥 내 일에 집중하면 된다.

자꾸 '너 때문에'라고 생각하면 남는 것은 쓰잘데 없는 감정만 남기 때문이다.


평소에 누가 딱 한 달의 시간을 마음껏 쓰라고 하면, 

나는 기꺼이 책 한 권을 집필하겠다고 장담해 보았다.

자가력리 4주가 시작되자,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평소에는 책을 산발적으로 읽는 편이다. 

분야가 전혀 다른 책들을 읽는 습관은 내가 인내심이 부족한 것도 한 이유이다.

책을 손에 잡고 읽다가 실증이 나면, 다른 책을 잡는다. 책 읽기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자가격리 기간이 얼마나 중요한 시간인가?

사람들이 다 그런 말을 한다. 

"내 평생에 이런 일을 처음 겪어 본다고 - "

그런 시간을 허투루 쓸 수는 없지 생각하며, 전에 계획해 놓았던 것을 클릭해 본다.

물론 이 일을 4주만에 마치지는 못하겠지만 우선 출발을 해본다.

아내는 오늘도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아빠는 뭐가 바쁜지, 무지 바쁘단다 - "

"여보! 저녁 잘 먹었어요!" 인사와 함께 -


P.S - 오늘 우리집 저녁 메뉴는 짜장밥이었습니다.

        원래는 면으로 먹으려 했는데, 아이들이 밥으로 먹자고 해서 따끈한 쌀밥 위에 짜장 소스와 계란 후라이 하나!

        재료 : 돼지고기, 양파, 양배추, 다진 파 마늘, 춘장, 전분

        1. 웍을 달구어 다진 마늘과 파를 넣고 볶다가 새끼 손톱 크기로 썬 돼지고기를 넣고 볶아 준다.

            소금 한 꼭지, 후추 약간을 뿌려주고

        2. 엄지 손톱 크기로 썬 양파와 양배추를 같이 넣고 볶아 준다.

        3. 물 두 컵 정도 붓고 끓이다가 전분물을 만들어 살살 뿌리며 전체를 고르게 저어준다. 

        4. 계란 후라이를 식구 수대로 노른자가 터지지 않게 조심해서 준비한다.

        5. 접시에 밥을 담아 짜장을 올리고 계란후라이를 올린다.

        6. 오이채가 없어서 생략 - 


- 계속 -

이 게시글에 달린 댓글 총 2
김현 2020.04.20 11:03  
님의 하모니카에 맞추어 아들의 바이올린과 딸의 굿거리 그리고 아내의 재봉틀소리가 함께 울려퍼지는
교향악에 가족의 평화로움이 묻어납니다. 아, 나는 지금 행복해! 하는 소리에 남들의 시기어린 눈총을
좀 받을 것도 같기는 합니다. 님도 저처럼 눈치 코치가 없다고 봐야만 하겠지만 이 말은 귓속 말로만 합니다.
그저저나 책을 읽고 또 글을 하나 쓰시려면 베르나르베르베르의 <나무> 속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참고하시면
무슨 글이든 못 쓸 내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기발한 소재거리가 엄청나거든요. 이 기회에 참고해보세요.
그나저나 국가비상사태도 이제 곧 해제되고 레벌 3으로 낮춰지는 것이 섭섭할 것 같은데...저도 그렇습니다.
이 천국같은 고요함이 곧 깨지다니. 아쉽습니다.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엄지 척 올리고 갑니다.
나명균 2020.04.26 15:26  
좋은 힌트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는 행복은 찾기 위해 김치를 비유하더군요.
맛있는 김치가 우리 입안에서 행복으로 느껴지기까지의, 소위 <김치의 법칙>을 배우라고요,
한 마디로 죽으라는 말입니다.
배추는 밭에서 뽑힐 때, 칼로 베추가 반으로 갈라질 때, 소금에 절일 때, 매운 고춧가루와 젓갈에 머무려 질 때,
그리고 입 안에서 씹힐 때처럼,
다섯 번 죽었다 해야 가정에서 행복할 수 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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